2008년 6월 12일 목요일

삼립욕 숲으로의 여행

삼림욕, 숲으로의 여행 지은이: 차윤정 출판사: 동학사
제1부 아름다운 우리 숲 산이란 무엇인가? 산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산의 정의는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에게 흰 종이와 물감을 주고 산을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김없이 삼각형의 구조물을 그린다. 파란 하늘, 녹색의 나뭇잎, '나무색' 줄기, 회색바위, 횐색과 파란색이 어우러진 계곡, 언어로 구체화된 개념상의 산은 없을지언정 일상적으로 대하는 산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 산은 무의식적인 산의 일부로 새삼스런 해석이 필요없는 존재일 것이다. 산의 정의는 그것을 다루는 학문적 영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주변의 토지 지면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산이 주변으로부터 다소 높이 솟아 있다는 것은 지표면이 불연속적인 경사를 가진다는 뜻인데 지표면을 구성하는 물질의 불연속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좀 과장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산이라 할 수 있다. 서남해안의 완만한 구릉은 바로 산맥들의 지락인 셈이다. 산에서 흘러내린 산지락들이 서남해 푸른 바다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형상이 있다. 높이 솟아 오르기 위해서는 산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강한 물질이 필요한데 흔히 산은 딱딱한 암석층으로 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산은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소위 백두대간의 척량산맥(척추뼈 산맥)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지류산맥들이 뻗어 있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의 지형적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백두대간의 산맥을 따라 많은 한반도의 생물종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강수에 의해 형성된 계류는 한강이나금강, 영산강과 같은 서해로 흘러드는 커다란 젖줄기를 이루고 이 젖줄기와 산줄기를 따라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배산임수. 촌락의 발달에 있어 풍수지리의 가장 기본적인 산을 등에 지고 앞내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산을 이루는 기본요소로서의 지질은 같은 시기에 형성된 것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다른 형상을 가진 산으로 발달한다. 우리 나라의 국토는 좁은 면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복잡다향한 지질을 갖고 있다. 거의 모든 지질시대의 암석이 분포할 뿐만 아니라 여러 차례의 지각변동으로 단층과 습곡이 잘 발달하였으며 여러 차례의 화성활동에 의해 다양한 종류의 화성암이 산출되고 있다. 시생대 및 원생대의 암석뿐만 아니라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퇴적기원의 암석과 더불어각 시대별 화성암도 산출되고 있다. 지각변동과 동시에 일어난 단층작용과 습곡작용에 의하여 지반이 이동했고 주름잡혀 있다. 우리 나라의 아기자기한 경관은 복잡한 지질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결국 산은 같은 모습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산의 높이, 산의 경사, 산의 방향, 산의 구조, 산의 구성물들이 모두 다르다. 다양한 산의 모양들만큼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다. 숲은 하나의 유기적인 집합 산이 지형적으로 딱딱한 표현이라면 이것에 생명이 들어 있는 표현이 '숲'이라는 단어이다. 숲은 나무를 이루는 수와 풀이 어우러진 말로 여겨진다. 즉 불연속적인 경사와 고도와 방향을 갖는 산이 지표면에 살아 있는 생물적 요소인 나무와 풀이 더해져 풍요로운 생명을 갖게 된다. 결국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대하는 산은 딱딱하고 무거운 지형적인 조건과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 존재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 집단인 것이다. 흔히 이를 산림생태계라고 부른다. 생태계의 기본적인 구조는 물지을 생산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이 모든 생명들을 분해하는 분해자를 포함한 생물과 생물과 이를 둘러싼 환경으로 이루어 진다. 생산자는 탄소동화작용 즉 광합성이라는 작용을 수행하는 녹색의 식물들로 이들은 무기물인 태양에너지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토양속의 이산화탄소, 토양 속 수분을 이용하여 탄수화물이라는 유기물질을 만들어 낸다. 소비자는 이들 생산자인 식물을 먹는 토끼나 얼룩말,사슴, 다람쥐 등의 초식동물과 이들 초식동물을 먹는 독수리, 사자,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이 있다. 이들이 죽으면 그들의 사체는 썩어 토양의 주요한 자양분이 되는데 이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곰팡이, 박테리아 등의 미생물이다. 바다생태계든, 육지생태계든 생산자-소비자-분해자의 이 구조는 모든 생태계를 끊임없이 이어사는 순환의 고리다. 그 중 숲이란 이 지구상에서 가정 복잡하면서도 놀랄 만한 생태계 고리가 진행되는 육상생태계의 대표적인 곳이다. 다양한 숲의 얼굴 숲의 구성과 형태는 숲이 존재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아주 다른 모습을 가진다. 뜨거운 열대의 밀림, 독일이자 북부 유럽을 채우고 있는 침엽수림,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의 한 대림 등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나나의 숲은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성 기후 특성에 적응한 숲으로 주로 낙엽활엽수들이 자란다. 온대낙엽활엽수림의 대표적인 나무라 할 수 있는 참나무류, 단풍나무류, 서어나무류, 벚나무가 웬만한 산에는 다 있다.그러나, 완도나 남해안의 섬지역, 제주도를 돌아보면 상당히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나무들은 잎이 넓고 두꺼우며 유난히 색이 짙고 광택이 난다. 한편 겨울이 되어도 잎이 지지 않고 심지어 꽃까지 핀다. 붉은 꽃을 아주 소담스럽게 피우는 동백나무를 생각해보라. 짙은 초록의 잎과 붉게 타는 꽃송이, 완벽한 조화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빳빳한 가시를 가진 호랑가시나무는 또 어떤가. 이로한 수종들을 난대성 수종이라 한다. 난대지역은 겨울철의 온도가 식문이 생육할 수 있는 정도여서 낙엽이 지지않고 늘 푸르름을 유지한다. 우리 나라의 남해안 일대와 제주도가 여기에 속한다. 또한 북으로 올라가면 북방요소를 지닌 나무들이 주로 나타나는데 잣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등이 대표적인 수종이다, 한라산이나 지리산의 정상부분에 자라는 구상나무나 가문비나무 등과 같은 북쪽의 수종들이 아마 빙하기 때 따뜻한 남쪽으로 밀려왔다가 빙하기가 물러남에 따라 저지대의 것은 북으로 퇴각하고 고지대는 단절된 채 섬처럼 고립되어 있던 까닭에 이들 수종이 살아남지 않았나 싶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위도라고 하더라도 산의 높이가 올라감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온도가 하강하여 서로 다른 수종으로 구성된 숲의 구조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의 열대기후 속에서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킬리만자로산을 한번 상기해보라. 일반적으로 100m씩 위로 올라갈 때마다 기온은 0.5도씩 낮아져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결과적으로 위도상 북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진다. 우리 나라에서눈 제주도 한라산이 그 예이다. 해발 600m까지는 제주도의 난대성 상록수림을 형성하고 있는데 600m에서 1200, 1300m까지 올라가면 기온강하가 일어나 낙엽활엽수림대가 나타나고, 다시 1500m까지는 낙엽수와 침엽수의 혼효림이, 1700m까지는 상록침엽수림이 나타나고 그 이상으로는 키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관목림이 나타난다. 위도상 한 지점에 위치하는 산이 고도별로 난대림에서 한 대림까지의 특색을 보이는 것이다. 고도가 특히 높은 곳에는 기온 강하가 심하게 일어나 키 큰 나무들은 사라지고 대신 키가 작은 관목들이 나타나는 경계를 볼 수가 있다. 이를 수목한계선(Timber lin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산지역은 기온이 너무 낮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키가 큰 나무들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산지역에는 특이한 나무들과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다. 특히 고산에서 자라고 있는 꽃들은 저지대에서 자라는 꽃들에 비해 유난히 아름다운 색상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열악한 기휴조건 때문에 여러해에 걸쳐 몇 센티미터밖에 자라지 않으며 꽃의 개화기간도 아주 짧다. 따라서 꽃이 피어 있는 짧은 기간 동안 수분이 되어 종자를 생산하기 위해 곤충을 유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따라서 꽃은 최대한 몸치장을 하여 곤충을 유인하는 것이다. 등산을 할 때 단순히 위로만 향하지 말고 주위를 둘러보고 수목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색다른 등산이 될 것이다. 지구 생물을 분양하는 식물 숲을 결정짓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들이다. 물론 이 식물들의 분포를 결정짓는 것은 온도지만 같은 온도 안에서도 다른 식물종이 분포한다. 이는 오래전에 식물종의 이동과 분포가 지구의 지각운동이나 기상변화에 의해 서로 다르게 발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숲을 구성하는 식물상이나 식생형은 목본식물인 나무에 의해 결정되는데, 나무는 그 나름대로의 성질에 의해 몇 가지 일관된 구분방법을 갖는다. 우선 나무란 다년생 식물로 목부조직을 가진 줄기를 가지며 2차 생장인 부피생장을 하는 생명체이다. 먼저 나무는 높이에 따라 관모고가 교목으로 나뉜다. 관목은 키 4m이하의 나무로 장미, 개나리, 진달래처럼 중심줄기가 뚜렷하지 않고 여러 개의 굵은 가지들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교목은 키가 수미터까지 자라는 하나의 커다란 중심줄기를 가지는 것은로 소나무, 버즘나무, 느티나무 등이다. 미국의 동부 해안지대에 자라는 세콰이어라는 나무는 키가 112m에 달하는 거대한 교목이다. 한편 이들은 잎의 모양에 따라 침엽수와 활엽수로 나뉜다. 침엽수는 소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잎갈나무 등 바늘처럼 뾰족한 잎을 가진 나무를 가리키며, 활엽수는 상수리나무, 벚나무, 느티나무와 같이 잎이 넓은 나무를 가리킨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침엽수일까 활엽수일까? 일반적으로 은행나무는 침엽수로 분류된다. 은행잎은 분명 넓은데 왜 그럴까? 배주가 자방 속에 있지 않고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는 식물을 나자식물이라 부르는데 대부분의 침엽수가 나자식물에 속한다. 은행나무 역시 나자식물에 속하기 때문에 침엽수로 분류되어 온 것이다. 한편 잎의 지속기간에 따라 상록수와 낙엽수로 구분된다. 소나무는 흔히 잎이지지 않아 상록수라고 한다. 그러나 소나무도 잎갈이를 한다. 소나무 숲에 들어가보면 바닥에 바늘 같은 잎들이 누렇게 깔려 미끈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매년 봄이 오면 솔가지에는 새로운 잎이 돋는데 이들은 1년생 잎으로 전년도에 돋아난 잎과 같이 자라게 된다. 즉 2년생 이과 1년생 잎이 1년간 같이 자라고 다음해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면 1년생 잎과 2년생, 3년생 잎이 한 나무에 있게 된다. 그러나 3년생 잎은 사람으로 치면 수명이 다한 노쇠한 잎이다. 이것은 광합성을 수행하여 생산하는 양보다 생명유지를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량이 더 많아 나무로서는 반갑지 않은 존재다. 그래서 이 3년생 노엽은 나무에서 떨어져나간다. 이렇게 소나무는 잎이 지는데도 전년도 봄에 자란 푸른 잎이 달려 있어 늘 푸르게 보인다. 참나무나 느티나무같이 가을에 잎이 지는 나무를 낙엽수라고 하는데 이들은 가을이 되면 잎이 생장을 정지하고 스스로 잎을 떨어뜨린다. 이때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잎이 지기 전에 나무는 잎이 가지고 있는 필요한 영양소들을 나무줄기로 다 이동시킨 후 영양가 없는 상태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질소, 인산, 칼륨이 대표적인 이동성 영양소인데, 특히 질소는 수분과 더불어 식물생장에 없어서는 안될 영양소이다. 이유있는 변형 소나무는 잎이 침엽이고 상록성이라 상록침엽수라 부르며 참나무는 잎이 넓고 잎이 떨어지므로 낙엽활엽수라 한다. 이들 나무의 잎이 침엽 혹은 활엽으로 진화되거나, 잎의 수명이 낙엽성 혹은 상록성으로 진화되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 따른 나무들의 훌륭한 생존 전략인 셈이다. 나뭇잎의 형태는 광합성작용이나 수분전달 작용, 잎의 온도조절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데, 자라는 환경조건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즉 열대나 온대같이 비교적 따뜻하고 수분이 덜 제한적인 곳에서는 잎이 넓게 발달한 반면 춥고 수분이 다소 제한적인 환경에서는 침엽수가 발달했다. 한편 잎은 광합성과 함께 계속 호흡이라는 활동도 하게 되는데 이 것은 힘들여 생산한 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소비과장이다. 따라서 나무는 항상 생산과 소비에서 이익이 많은 쪽으로 발전의 방향을 맞추어왔는데, 기온이 낮아져 광합성작용을 활발하게 할 수 없을 때에는 호홉을 하는 기관을 떨구어 호흡에 드는 에너지를 줄인다. 이렇게 발전한 것이 낙엽수다. 상록수의 경우는 잎이 겨울 동안 붙어 있더라도 광합성작용을 하여 생산하는 양이 호흡에 의해 소비되는 양보다 많기 때문에 겨울에도 잎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잎의 수명이 2년 이상 되면 잎은 노쇠하여 상록수라 할지라도 이 노엽을 떨구어낼 수밖에 없다. 침엽수 중에서도 낙엽이 지는 나무가 있는데 낙우송과 낙엽송이 대표적인 것이다. 특히 낙엽송은 고산지역이나 북부지역에서 자란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고도가 높은 지역은 고도가 낮은 지역보다 온도가 낮아서 아무리 침엽수라 할지라도 겨울을 견디기에는 너무 힘이 들어 잎을 떨구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산의 매력 우리 나라의 숲은 제주도와 남쪽 해안을 따라 상록활엽수가 자라는 난대성 숲에서부터 낙엽활엽수가 자라는 온대의 중부지역을 거쳐 잣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한 대성 수종이 자라는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다양한 숲과 다양한 수종을 가지고 있다. 좁은 면적에 상대적으로 급경사를 이루는 험준한 지역이 많고, 계곡이 많으며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사시사철 자라고 있어 더없이 아름다운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백두산의 경우, 우리 나라 쪽에서 보는 백두산은 험준하고 웅장하지만 중국에서 보는 백두산은 그 자락에 인구 2천만명을 품을 정도로 품이 넓고 완만하다. 금강산 봉우리는 일만이천이라고 하니 그 봉우리마다 험준한 지형과 봉우리를 경계짓는 계곡이 있어 절색이 안 될 수가 없다. 지리산은 능선 길이가 45Km나 되는 민족의 영산으로 그 긴 능선 마디마디에 위치하는 다양한 숲과 봉우리가 전혀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폭은 1.5Km여서 골골이 급하게 The아지는 계곡물이 또한 세계 의뜸이다. 결코 지루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산, 어느 한 곳이라도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산,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산, 이것이 우리 나라 산의 가장 큰 매력이다. 비록 모두에게 알려진 유명산은 아닐지라도 우리 주위에서 늘상 접하는 산도 그 성격을 이해한다면 아주 아름답고 독창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숲이 베푸는 혜택 '치산치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한 나라를 통치하는 가장 기본은 그 나라의 산과 물, 즉 국토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는 것돠 다음으로 '치산을 잘하면 치수는 저절로 된다.'는 의미다. 전자의 개념은 우리가 익히 들었던 터라 이해가 가지만, 후자의 경우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산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게 된다면 치산과 치수의 개념은 물론이거니와 숲이 '천연댐'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될 것이다. 숲은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그 문명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 나라의 숲은 바로 국력 그 자체였다. 청동기나 철기 문명도 바로 이들을 녹이고 틀을 만들 수 있는 주된 연료인 목재의 힘 ㄸ문에 가능했다. 고대 로마는 '숲의 시민'이라 불릴 정도로 숲의 기능과 혜택을 잘 활용하였는데 대중 목욕탕을 만들고 물을 데우는데만도 엄청난 목재가 소요되었을 것이다. 삼림자원이 거의 없는 이집트는 풍부한 삼나무를 자랑하는 페니키아인과의 관계유지에 왕조 대대로 노력하였다. 비단 고대 사회뿐만 아니라 중세유럽에서도 식민지 사업의 가장 큰 목표는 그 나라에 없는 자원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 남미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목재가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흔히 숲에서 나는 것 하면 목재가 떠오른다. 과학이 발달하여 멋진 첨단소재가 개발된다 하더라도 자연 목재만큼 매력적일 수는 없다. 목재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열젼도율이 낮아 급격히 뜨거워지거나 차지지 않는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은 특별히 난방을 하지 않아도 그리 차지가 않다. 또한 목재는 촉감이 좋으며 탄력성이 있어 충격에 대한 완충력이 뛰어나다. 한편 목재의 그 고운 무늬결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무에 새겨진 자연적인 결은 아름답고 쉽게 싫증나지 않는다. 오늘날 숲은 목재 이외에도 다양한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각종 임산물과 식물에서 추출된 천연물질이 의학원료로 각광받고 있다. 물푸레나무라는 나무는 잎이나 줄기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당연히 천연 염료로 사용될 수 있다.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쪽빛, 치자색, 남색은 우리 산야에서 자라는 식물에서 염료를 얻은 것이다. 정말 아름답고 정겨운 우리 색이다. 이밖에도 산에서 나는 약초, 버섯, 향신료, 모두가 고부가가치 상품들이다. 우리 나라처럼 우량목재 생산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이를 제외한 부산물에 대한 가치가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그러나 숲은 이러한 물질적인 혜택보다 더 중요한 혜택을 베푸는데 요즈음 널리 인식되고 있는 공익적 기능들이다. 공익적 기능은 숲이 건재할 때 자연스럽게 베풀어지는 숲의 혜택으로, 오늘날 세계 산림의 가치는 지구 환경에 대하여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이 최우선이라 하겠다. 치산치수와 같은 숲의 수자원 보호기능은 숲이 갖는 공익적 기능 중의 하나이다. 공익적 기능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숲이 자연적으로 베푸는 혜택으로 숲이 울창할 때는 그 효과가 크지만 숲이 파괴되면 그 기능들은 가차없이 파괴된다. 인간이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게 된다. 물의 저장고 우리는 장마 때마다 겪게 되는 물난리와 홍수를 알고 있다. 또 숲이 황폐했던 시절 비만 오면 하천이 붉은 황톳빛으로 흐르던 것도 기억할 것이다. 나무가 없는 운동장의 토양과 수목이 우거진 숲의 토양은 아주 다르다. 숲의 토양 속은 각종 나무와 풀뿌리, 낙엽물질, 토양 미소생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손으로 눌러보면 푸석푸석하다. 이것은 마치 스펀지와 같아서 같아서 한꺼번에 비가 많이 오더라도 물을 토양에 가득 머금을 수 있어 빗물이 땅 위로 쏟아져 내리는 일이 없다. 오히려 일시적인 강우를 땅 속에 가두었다가 지속적으로 물을 흘려보낸다. 그래서 산에는 항상 물이 있다. 숲은 물을 가두어 급작스런 물난리를 방지하고 지속적으로 물을 흘려 보내는 수량의 조절 역할뿐만 아니라 물의 맛을 좋게한다. 숲의 토양은 천연 여과장치로 흙 속을 흐르고 흐르면서 물은 정화되고, 뿌리와 토양으로부터 흘러나온 각종 미네랄 성분이 녹아들어 말 그대로 맛있고 살아 있는 물이 된다. 결국 울창한 강원도가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이제까지 서울 시민에게 값싸게 공급하던 물을 고가에 판다고 생각해 보아라. 서울시는 무엇보다 물세 때문에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김삿갓이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뿌리에 고정된 토양 각종 식물뿌리와 낙엽물질, 동물의 사체, 토양 미소생물이 얽혀 있는 것은 토양을 단단히 얽어놓은 역할도 한다. 이들에게 부착되어 있는 흙은 강우에 의해 쉽게 씻겨내려가지 않는데 이러한 기능이 약화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산사태이다. 산사태와 같은 큼직한 사건보다 사실 더욱 심각한 것이 표면토양의 유실이다. 흙 혹은 토양은 지각구성물질인 암석이 오랜 시간 동안 풍화작용을 거쳐 생물이 서식할 수 있도록 발달된 것인데 강우에 의해 씻겨내려가기 쉽다. 특히 산림의 토양은 앞서 얘기한 각종 생물사체가 분해된 풍부한 양료를 가지고 있어 생산성이 아주 높은, 살아 있는 토양이다. 만일 흙에 뿌리를 내린 식물이 자라고 있지 않다면 흙은 빗물이 아니라 약한 바람에 의해서도 유실되는 것이고, 이것을 다시 형성하는 데는 이간의 잣대로 볼 때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오늘날 지구 사막화는 바로 삼림벌채에 따른 토양유실의 결과이다. 숲이 파괴되면 토양은 햇빛에 노출되고 온도가 올라가 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져 토양 속의 생물잔재들, 즉 토양유기물이 급격히 분해된다. 토양 속의 암반층이 드러나고 풍화되어 서걱서걱한 모래땅으로 변한다. 숲의 수자원 함양기능이나 토사붕괴 방지와 같은 역할은 그 나라의 국토보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숲의 파괴는 생존기반의 파괴로 연결된다. 지구의 부패 한편 숲은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산소의 공급처다. 식물은 광합성을 할 때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대신 산소를 방출한다. 지구가 생성된 지 얼마 안된 태초의 지구는 암모니아 가스, 이산화탄소 등 유독가스로 뒤덮여 있었다. 이러한 대기는 지구상에 녹색식물이 출현하면서 드디어 오늘날과 같은 대기를 형성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녹색식물들이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유기물을 만들고 대신 산소를 방출함으로써 지구의 대기는 현재 와 같은 많은 양의 산소를 가질 수 있었다.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발생시캔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인데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로 인한 지구 온난화 방지의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알고 보면 사실 문제의 시작도 여기에 있다. 지나친 화석연료의 연소에 의한 과다한 이산화탄소 흡수-산소 배출의 균형을 이끌어 오던 숲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숲만큼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고정 창고는 없다. 1ha의 숲에서 흡수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연간 16톤이나 되며 동일 면적의 숲에서 흡수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연간 12톤에 달한다. 잎 표면적의 합이 100평방미터에 달하는 나무가 한여름날 공급하는 산소의 양은 성인 40명이 호흡할 수 있는 양이다. 한편 나뭇잎은 대기중의 먼지나 아황산가스등 각종 오염물질을 흡수하여 공기정화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는 플라타너스의 커다란 잎을 한 번 들여다 보아라. 잎의 뒷면에 밀생해 있는 솜털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털 하나하나 사이에 붙어 있는 먼지들을 볼 수 있다. 아주 크고 많은 잎을 가진 플라타너스는 도심의 훌륭한 청소꾼인 셈이다. 야생동물들의 은신처 숲은 그 속에 각종 야생동물들을 품고 있어 이들의 주요한 생활터가 된다. 숲 속의 야생동물은 숲의 생태계가 올바로 유지되는데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이들은 생산자인 식물의 수준을 조절하고 연속적인 먹이사슬을 이룬다. 특히 야생조류의 번식은 숲 속의 곤충이나 벌레의 밀도를 조절해 대단위 해충의 창궐을 막아준다. 숲에서 야생동물이 사라지는 것은 숲이 건전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최근 야생동물의 수렵 혹은 낚시를 할 수 있게 시설을 갖춰 또다른 스포츠로 주목되고 있는데 이는 숲의 간접적인 생산이 될 수 있다. 이렇듯 중요한 숲의 혜택이 전문가들에 의해서 그 가치가 평가된다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소용없게 된다. 만일 숲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어 잠시나마 우리 숲을 이디오피아나 수단과 같은 사막에 옮겨놓는다면 그때야 우리는 숲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가 TV에서 본 그런 사막이나 아프리카 지역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현실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다행이 우리는 부족함을 느낌으로써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금수강산-상전벽해-오염강산 산림자원의 풍요는 또다른 풍요를 낳았다. 전국을 가득 매우고 있는 산은 개발의 기반이다. 산을 무너뜨림으로써 실질적인 국토가 확장된다. 산이 무너져 새로운 대지가 나타나고 산만큼 높은 건물이 세워지고 산으로 길이 열린다. 도로 보수작업중이고, 지하철 공사중이고, 수도관 공사중이고, 아파트 건설중이다. 기존건물이 해체되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또다시 새로운 공사가 계획되고 ......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가 그렇게 건설되고 또 팽창되면 사람들은 편리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편리함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모든 생활이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여유가 없어지고 머릿속에 파고들어 위윙대는 기계소리가 더욱 긴장되고 초조하게 한다. 분당과 일산등 신도시를 지날 때 우리는 황폐화된 인간의 도시가 외계인에 의해 파괴되는 우주전쟁과 기계화된인간, 표정없는 인간을 떠올리며 몸서리치게 된다. 우리가 동경하는 주거공간은 푸른 전원도시다. 따라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마다 도심녹화에 열을 올린다. 도시사람들은 주말이면 너나없이 그들이 무너뜨린 산을 찾아 떠난다. 기막힌 아이러니다. 현대사회는 우리가 추구하는 질 높은 생활공간을 마련해 주지 못한다. 오히려 개발되고 발전될수록 생활환경은 삭막해 진다. 편리를 위해 이용하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이 우리 스스로의 숨통을 조인다.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그 매연가스는 우리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교실로 스며든다. 오늘날의 찌든 생활을 이야기 하는 것 조차 이제는 공해다. 이제는 사람들이 열병처럼 자연을 갈망하고 외친다. 몸과 마음이 모두 오염되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요즈음 사람들은 십 년이 아니라 일년만 지나도 변한다고 한다. 근대화 50년동안 우리가 이뤄낸 변화는 기적적이다. 그런데 이 변화는 이제 여기서기서 그 골은 환부를 드러내고 있다. 그 아름답던 강산이 없어지고 똑같은 모습을 한 인공의 구조물들이 대신 들어서고, 융자적 흐르던 물길이 댐속으로 가두어져 밑으로 바닥을 내보인다. 도시의 색깔은 회색으로 뒤덮이고, 공기는 뿌옇게 흐려지고 뜨거운 태양볕에 달아 오른다. 물이 말라가고 악취가 나며 죽은 물고기가 떠오른다. 푸른 산대신 썩어 흘러 내리는 물이 흘러 내리는 쓰레기산 투성이다. 어느새 금수강산이 오염강산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숲은 인류의 영원한 안식처 국토만큼 몸살을 앓는 것은 그 속에 사람들의 마음이다. 우리 나라는 어딜 가나 산을 볼 수 있다. 드넓은 평야에서도 우리는 산을 볼 수 있다. 지평선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의 단아한 능선을 우리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지배해온 것이 바로 우리의 산수였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마음의 고향은 숲이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숲은 인간 정서의 근원적인 배경이었다. 그것은 인류문명의 발생이 숲에서 유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숲을 노래한 문학과 예술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발전의 속도만큼 강하게 사람들은 예전의 고향을 그리워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숲과 인간의 관계는 안간 역사의 변천사만큼이나 역동적으로 변해왔다. 처음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 숲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숲에서 나는 온갖 자원은 인류를 먹여 살리는 모체와 같은 반면 숲 속의 사나운 야생동물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드디어 농경문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도 인간은 숲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숭배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숲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무한한 착취의 대상이 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의 대부분을 숲은 제공했으며 인간은 거의 무한대로 이용했다. 집을 짓고 배를 만들고 연료를 만들고 의약품을 만들고. 이용의 속도가 숲의 생산 속도를 앞질러 숲은 이제 생산 능력을 잃고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숲이 없어지는 것은 비단 자원의 고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숨쉬어야할 산소를 공급하고 안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거두어 가고 구름을 발생시키고 대류를 일으키고 물을 생산하는 모든 환경조절기능을 상실해 버리는 것이다. 이제 다시 숲이 인간에게 위협을 가한다. 가뭄이 발생하고 토양이 모래로 변하고 열사의 태양광이 사람의 머리 위로 내리꽂힌다. 뿌릴 씨앗마저 말라비틀어지고 논밭은 모랫바람에 묻혀버렸다. 한 동이의 물을 긷기 위해 십리를 가고 최소한의 식량으로 겨우 살아간다. 지금의 레바논이나 이스라엘, 이디오피아, 중동의 사막지대가 과거에는 울창한 삼림지역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숲의 파괴가 인간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숲은 인간이 이용하기에 따라 은혜이거나 위협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 민둥 모래산에 나무를 심어놓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온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가꾸는 모습과 아이들이 학교가는 길에 학교 지을 돌을 하나씩 가져다 모으고, 옆으로 나무를 심어 새들이 뜯어먹는 것과 과도한 햇빛을 방지하기 위해 가시덤불로 가려놓은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다. 현대사회에서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친자연적인 문화를 우리는 숲에서 이룰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한결같은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이다. 우리 민족만큼 산을 의지하고, 산을 좋아한 민족이 있을까. 산은 세속에서 떨어진 깨끗한 무념의 별천지였다. 선은 산에 사는 사람이다. 동시에 산은 백성을 품는 어버이다. 풍수지리에서 산은 사람이 사는 동안 거처하는 양택이며 동시에 죽어 안주하는 음택의 중심지다. 우리가 산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산을 벗어나려 산에 오르니 발 아래 온통 또 산이다. 산이 없어진 도시인이 산을 찾아 헤매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한 귀결인지 모른다. 왜 숲으로 가는가 왜 숲으로 가는가. 숲에서 무엇을 구하는가. 푸른 숲, 맑은 공기, 깨끗한 공기, 우리가 산을 찾는 이유이다. 생활환경이 찌들면 찌들수록 산에 대한 욕구는 커진다. 사람들은 숲을 마음 속으로 그리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숲은 푸르다. 그러기에 눈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푸르러진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색깔 중에 이렇듯 깨끗하고 싫증이 나지않는 색이 있을까. 푸른색이 주는 이미지는 우선 청량함이다.이것이 회색처럼 탁한 색과 대비될 때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인간의 끓어오르는 욕구를 가라앉히는 이지적인 색이다. 한편 푸른색은 희망이다. 겨울을 이기고 돋아나는 파란 싹은 자연의 희망이다. 따라서 푸른 숲은 우리에게 오염을 씻어주고 감정을 삭여주며 희망을 준다. 숲은 고요하다. 숲속은 모든 인위적인 소음이 제거된 곳이다. 겹겹이 쌓인 나무는 소리를 전달하는 공기의 진동을 교란시키고 흡수함으로써 소음을 없앤다. 알퐁스 도에의 마지막 수업에서 펜이 굴러가는 소리를 실감나게 들을 수 있다. 여기저기 울려대는 자동차 소리, 전화벨 소리, 쉼없이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음악소리,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로 혼란스러운 숲 밖의 생활. 사람의 말소리까지 높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쓰러뜨리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쓴다고 한다. 톱으로 나무를 베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나무를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모든 주민들이 쓰러뜨릴 나무 주위에 둘러서서 3일 밤낮을 나무를 향해 고함을 쳐댄다. 그러면 나무 속에 깃들여 있던 혼이 빠져 나가면서 나무가 쓰러진다고 한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고함소리가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는 우리말과 통하는 이야기다. 그만큼 사람들의 소리는 사람에게 위협적인 것이다. 아우성치는 도시속 에서 사는 사람들이 매일 얼빠진 생활을 한다는 것도 지나친 말이 아닌 듯 싶다. 그러나 숲속에서는 풀벌레가 날개치는 소리처럼 아주 섬세한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쾅'이 아니라 '바스락'대는 소리다. 소리를 지르면 모든 나뭇잎이 움직일 것 같아 조심스러운 숲속이다. 거친 소리는 사람을 거칠게 한다. 혼잡한 도시에서는 언성이 높고 말씨가 거칠지만 숲속에서는 스스로가 다스려 진다. 숲의 고요는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 숲은 깨긋하다. 도심은 온갖 매연물질로 오염죈 공기를 갖고 있지만 숲은 신선한 공기로 충만해 있다. 그래서 숲의 공기는 탁하지 않고 맑으며 숲 속의 시야는 넓다. 공기중에 오염물질은 나무가 거두어 가고 대신 신선한 공기를 내놓는다. 도시에서는 숨쉬기 조차 어렵다고 하는데 숲속에서는 심호흡을 할 수 있다. 숲에는 맑은 물이 있다. 비싼 정수 시설로 걸러진 수도물도 그냥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생수라고 사먹지만 역시 믿기 어렵다. 물이 없어 난리, 물이 갑자기 불어 난리, 물에 악취가 나서 난리, 물에 이물질이 있어 난리, 온통 물난리다. 전국의 약수터는 이른 새벽부터 또 난리다. 그러나 숲의 물은 모두가 약수다. 공해물질이 녹아 있을 리도 없고, 가정폐수가 흘러들 리도 없고, 중금속이 있을리도 없다. 산소가 풍부사게 녹아있고 ㅎ이라는 여과장치에 의해서 천연적으로 걸러지며 또 어디에선가 자라고 있는 약초의 성분이 녹아 있는 물이다. 숲을 흐른는 물은 소리마저 맑다. 숲에는 향기가 있다. 소나무의 솔향이 있고 찔레꽃의 달콤한 냄새가 있다. 방안에 놓여있는 인공방향제의 냄새와는 전혀 다른, 생명이 느껴지는 냄새이다. 숲에선는 흙조차 향기가 있다. 숲의 향기는 사람의 기분을 맑게 한다. 낙엽의 냄새는 어떠한가. 낙엽이 썩는 냄새는 도시의 쓰레기가 썩을 때 나는 악취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부양하기 위한 물질순환의 냄새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잡힐 것 같은 실체로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숲은 살아 있다. 어느 순간도 똑같은 것이란 없다. 소동파가 노래한 봄마다 다시 피는 꽃도 예전의 꽃이 아니다. 흐르는 물도 그때의 그 물이 아니다. 예전의 것들은 모두 지금 있는 것 속에 깃들여 있을 뿐이다. 나무도 해마다 마디를 더해가고 땅 속의 토양도 해마다 낙엽을 보듬는다. 지금 보는 잎은 새 봄에 필 잎을 위하여 가을이면 스스로를 떨굴 것이다. 이 순간 나무기둥 속은 물즐기가 기운 차게 솟아오르고 나뭇잎의 작은 구멍은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고 있으며 뿌리는 열심히 물과 양분을 찾아 줄기로 옮기고 있을 것이다. 가려진 나뭇잎의 뒷면에는 곤충의 알이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무기둥에 붙어 있는 번데기는 화려한 날개짓을 꿈꾼다.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가 떨어진 낙엽과 죽어 누운 동물을 썩히고, 새는 벌레를 찾아 날아오르고, 벌레는 날개를 퍄기 위해 두꺼운 집속에서 스스로를 살찌우고, 벌은 꽃을 찾아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씨앗은 싹을 틔우기 위해 햇빛과 수분을 기다리고, 꽃은 꽃가루를 옮겨줄 손님을 기다린다. 신선한 공기, 깨끗한 물, 숲의 향기는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해주고 숲의 고요함과 푸르름은 사람의 정신을 다스려 준다. 심신이 숲에 서 맑아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숲으로 가는 것이다. 숲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숲에 대한 욕구가 크다. 숲에서 멀어질수록 앞서가는 문명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원래의 품, 숲으로 찾아드는 것이다. 숲에서 회복한 생의 활기는 도심의 일상을 활기차게 하기 때문이다. 분명 숲의 효용이 이제는 사람들에 대한 물질적인 제공에서 심신의 안정을 도모하는 휴양과 보건의 기능으로 기울고 있다. 숲의 보건적 가치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들이 제시되고 이를 이용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 중에서 최근 사회적인 관심과 수요가 증대되고 있는 것이 삼림욕이라는 것이다. 삼림욕은 숲에서의 활동을 건강과 연결시킨 직접적인 건강요법이 될 수도 있다. 숲을 잘 이해하고 숲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일들을 체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은혜로운 숲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가꾸어가야 할 것인가를 깨단게 될 것 이다. 제 2부 숲이 베푸는 또하나의 혜택-삼람욕 숲속에서 건강을 마신다. '삼림욕' 과학적 근거의 충분, 방향성 물질 피톤치드 인체에 매우 유익, 소나무 숲 1ha에 연 18t의 엄청난 산소배출<동아일보> 기상전쟁, 삼리욕, 관광, 건강증진 등 일석이조, 탄화수소로 살균효과.... 일선 캠페인도, 부작용 많은 일광욕 제치고 안기 높아 <한국일보> 이상은 1983년 7월 29일자 두 산문에서 처음으로 삼림욕을 소개하는 머릿기사 들이다. 이틀 후인 7월 31일 이 두 산문은 또 한번 같은 주제인 삼림욕을 다룬 기사들을 실었다. 다음은 1983년 7월 31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삼림옥에 관한 기사의 일부이다. 건강은 숲에서 찾아라-삼림욕 상륙, 서독, 일본 등에서 각광받고 있는 삼림욕이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울창한 산림이 그 나라들보다 적어 모든 국민에게 충분한 기회는 주기 어렵지만 삼림욕 적지가 적은 것도 아니어서 산림청 소유의 숲을 일반에게 공개한다는 것....(중략)... 숲에서 느끼는 상쾌함은 공기가 맑다는 등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라 나뭇잎이 발산하는 화학적 성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소련의 B.T. 토킨 교수는 15년전 나뭇잎에서 피톤치드라는 항균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인체에 해로운 균을 죽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중략)... 또 숲속엔 방산성 물질인 테르펜이 식물 속에서 생성되어 상쾌한 향기를 안겨준다. ...(중략)... 삼림욕은 중환자의 병을 고쳐주는 것은 아니지만 테르펜의 농도가 높으면 거담, 강장 및 통변의 효과가 크며 공기중의 작은 먼지가 테르펜과 함께 호흡될 경우 80%가 정화되는 등 심폐기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벌써 십수년 전의 일리소고 제 우리 산도 그 십수년의 연륜을 껴입고 있을 테니 비록 울창하지는 않지만 하늘은 대충 수목으로 가려졌을 터이다. 한편으로 46개의 자연휴양림이 이미 개관되어 일반인에게 삼림욕이 보편화된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림욕전문프로그램을 적용한 전문코스나 이를 사회적으로 적극 응용하는 전문프로그램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싶다. 다음은 같은날 동아일보에 실린 글인데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삼욕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여름 건강레저- 삼욕. 여름 휴가철이 되면 시원한 바다와 숲을 찾아 일광욕, 수욕, 삼림욕 등을 즐길 기회가 많아졌다. 최근 일본 등에서는 자연의 3대 요소인 햇빛, 공리, 물을 이용한 소위 삼욕이 스트레스나 운동부족등으로 반건강상태에 있는 도시인의 건강화복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산과 숲과 바다를 이용하는 삼욕은 다른 건강법에 비해 무리가 따르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광욕, 공기욕, 수욕은 우리 몸의 자율신경과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계의 기능을 조절해 주어 인체의 자연치유력, 면역력, 체력을 높여주는 작용을 한다. ..(중략)... 삼림욕을 하는 데는 별다른 규칙은 없다. 삼림 안에서 자신의 체력에 알맞게 거니는 것 자체가 삼림욕의 기본으로 시원한 숲속 반터에서 긴장을 풀면서 독서를 하거나 한기롭게 누워 숲속의 공기를 한껏 마시면 된다. 수욕은 냉수욕과 온수욕으로 크게 나뉘는데 냉수욕으로 차가운 자극을 받은 인체는 자율신경과 한가지안 교감신경이 긴장해 정신적인 상쾌감과 일의 능률을 높여 준다. 42도 이상의 뜨거운 온욕도 마찬가지로 교감신경을 긴장시켜 정신적으로 상쾌감을 준다. ...(중략)... 삼욕을 하면서 햇볕을 지나치게 쬐는 것은 피부화상 외에도 면역력을 약화시키는등 몸에도 해로우므로 피해야 한다. 이건 여담이지만, 지금의 신문들의 발행 면수가 자율화되어 각종 기획기사가 보강되어 사회, 문화 전반에 관한 기사들이 많아졌고, 특히 환경관련기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식물을 포함한 자연 생태계도 산당한 문화자원이 될 수 있다. 식물원이나 수목원, 자연사박물관 등과 같은 자연을 학습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설이나 자연을 탐방, 학습하는 문화형태, 생태기행, 생태관광등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이를 즐기는 문화가 세계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한편 자연을 찾는 동호인이나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연구하는 모임도 다시 생겨나고 있다. 다시 이야기를 원래 줄거리로 돌아오자. 이미 세계적으로 삼림욕에 관한 과헉적인 근거들이 많이 제시되어 자연건강요법의 하나로 인정받았으며 국내에서도 삼림옥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다. 국민보건휴양에 대한 사회의 역할이 중요해 졌고 국민들도 이에 적극 가담할 의사가 있으니 삼림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올바른 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미력하나마 이제부터 삼림욕에 대한 정보를 다루려고 한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대사상가 칸트의 지팡이와 발소리가 딱딱 숲속 사색길을 두드리고, 인간의 온갖 고뇌를 담은 듯ㅎㄴ 얼굴의 베토벤이 숲을 서성인다. 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새벽의 엷은 빛줄기가 내려오고 어스름한 안개가 깔려있다. 사람들이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군데군데서 몸돌리기와 팔뻗기, 목운동을 하고 있다.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가 페부터 깊숙히 꽂히고 얼굴은 상기되어 붉은 혈관이 역동적으로 뻗어 신선한 산소를 이동시킨다. 몸과 마음이 일시에 건강해 지고 생기가 피어 오른다. 사람들이 기합소리로 새벽의 숲이 잠을 깬다. 삼림욕에 관련 TV광고를 찍는다면 대충 이런 모습들이 멋지게 중첩되어 나타날 것이다. 삼림욕이란 무엇인가. 삼림욕이라는 말은 일본의 임야청장관이었던 추산지영씨가 처음으로 사영했었는데 이것을 설명하는 내용들이 여러 갖가 있지만 가장 공통적인 내용은 울창한 산림안으로 들어가 숲의 신선한 공기와 접촉하여 휴양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산림욕이라하지 않고 '삼'자를 붙인 것은 아마 '신'이 가지는 단순한 토지로서의 의미보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행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 같다. 삼림욕은 해수욕, 일광욕, 공기욕을 이르는 삼욕중 공기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삼림욕은 특히 일본에서 큰 호응을 받고 있는데, 온천 휴양지가 발달된 산림에서 온천욕과 더불어 행하는 삼림욕은 건강비결의 요체라고 하고 있다. 실제 일본 국민의 72%가 삼림욕이 건강을 증진한다고 생각하여 최고의 건강법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임업관련 기관이나 국민보건 당국에서는 삼림욕에 대한 전문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각종 단체나 시설을 지원히고 있다. 삼림욕의 역사 삼림욕의 역사는 안간이 숲과 더불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라고 해도 크게 틀리진 않다. 1840년 독일의 슈발츠발터에 있는 온천 휴양지인 바덴바덴에서는 사람들이 높은 지대의 숲을 거닐면서 요양하는 기후요법이라는 것을 시행했다. 1865년에는 과학자들이 삼림지형요법이라는 것을 주창하였는데 이것은 숲이 울창한 경사진 삼림지역을 보행하는 건강요법이다. 삼림자형요법이 더욱 발전하여 1880년대에는 자연건강조양법으로 전개되었는데 현재는 전국 산간 계곡의 작은 마을 단위로 수십개의 자연건강요양지가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연구와 실험으로 자연회복의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자연건강요법은 독일뿐만 아니라 산림이 발달한 유럽에서 아주 중요한 사회적 보건행위로 인식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삼림욕은 알본건강개발재단이 자연환경, 온천의학, 산람보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온천휴양시스템을 연구하고 온천휴양의 중요한 요소인 유산소적 운동으로서 삼림보행의 이용프로그램과 시설을 개발, 설계하면서 구체화하였다. 이들은 방문단을 매년 독일로 연수 보내 독일의 자연건강법을 익히고 이를 연구해 왔다. 그러던 차에 1982년 일본 임야청에서 삼림이란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삼림욕을 발안하였다. 숲의 향기를 흠뻑 마시고 심신을 단련하고 청소년의 비행을 방지하고 노인들의 보람있는 삶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이 구상을 내 놓은 것이다. 일본의 임야청은 환경청이나 문부성 그리고 그 고장의 마을들과 협력하여 국민적 삼림욕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일부 산림지역의 호텔이나 관련업소에서는 이미 삼림욕 프로그램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삼림욕이라는 것과는 관련이 없지만 영국에서는 공동도보로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가정파티, 정원손질과 더불어 영국인들의 3대 여가활동에 속한다. 이것은 지정된 공공도로를 산책하는 운동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개를 데리고 런던의 푸른 도심공원을 산책하는 런던 시민의 모습을 우리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산책을 즐기기 위해 데리고 오는 개들에게 물려죽는 양의 수가 연간 5,000마리를 헤아리고 보행중 불행하게 사망하는 사람도 연간 250명 정도라고 한다. 산책로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스가 산림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표시된 보행자 도로를 따라 숲에 들어가 하루종일 것는 게 보통이다. 중국의 경우 삼림에서의 양생은 약 3세기 경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갈홍은 포박자엥서 불로장생의 조건으로 자연과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꼽고 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안빈낙도적, 은둔자적 삶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숲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건강법으로 채기술이라는 것이 오늘날까지 행해지고 있는데 이것은 수목이 뿜어내는 공기를 조용히 들이마시고 이것을 단전으로 보내고 곧이어 발바닥의 용천으로부터 공기를 빼내는 수법이다. 우리 나라에서 삼림욕이 일반 국민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1983년부터인데 주요 일간지들이 삼림욕의 효능을 알리는 데서부터이다. 신문, 잡지, 방송을 통하여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자 학계에서도 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산림청에서도 국민의 여가문화와 휴양을 위하여 경관이 뛰어난 국공유림을 대상으로 1988년부터 자연휴양림을 조성하고 각 휴양림마다 삼림욕장을 개설하였다. 이후 숲과 관련된 모든 시설물에서 삼림욕장은 기본시설이 되었다. 한편 1989년에는 광릉수목원 안에 삼림욕장을 개설하여 주말이면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삼림욕의 목적이 초기에는 숲속의 특수한 공기로 병을 치유하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차츰 숲이 국민 일반의 여가활동의 주요 대상이 되면서 이제는 건강과 휴양이라는 목적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울창한 산림에 들어가 맑고 신선한 숲의 향기를 가슴 가득히 호흡하고 인간의 오감을 발현시키며 녹음 속에 몸을 맡기고 마음과 몸의 긴장을 풀고 몸을 움직이거나 즐겁게 놀면서 심신을 단련하여 일상생활의 피로를 제거하는 자연활동의 연장이 된 것이다. 결국 삼림욕이란 숲이 주는 혜택을 최대한 이요하는 것으로 숲의 맑은 공기, 맑은 물, 조용함 등을 접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하는 자연 건강휴양법인 것이다. 숲의 신비 (산장의 여인)이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중략)...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끌어안고 혼자 재생의 길 찾아 외로이 살아가네.' 이 노래는 병든 몸을 치유하기 위해 숲에서 요양하는 내요이다. 과거 우리 나라 국민은 영양상태가 나쁘고 국민보건이 열악하여 폐병환자들이 많았을 때 깊숙한 산속이나 절간에서 요양하는 것도 치료의 중요한 방법이었다. 이 당시의 우리 나라 대기의 오염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미루어 비단 깨끗한 공기 때문만은 아니고, 직접적인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 그 무언가가 있음을 시사한다. 독일의 유명한 흑림지대 근처의 요양소에는 실제로 콜레라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등의 대도시에서 찾아와 3-6주씩 체재하면서 건강을 회복해 간다고 한다. 수도를 행하는 주요 사찰이나 수도원 등은 모두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잔병이 없고 피부는 아무 치장을 하지 않아도 맑고 투명하다. 자연 속의 산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도 숲으로 많이 들어온다. 비단 숲속의 조용함뿐만 아니라 숲에서는 집중이 잘되고 잡념이 없어지며 머리를 맑게 해주는 구체적인 무엇을 찾아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늘고 있는 노년층을 위한 실버타운건설 붐이 일 조짐이 보이는데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춘 곳으로 삼림이 손꼽히고 있다. 산지의 맑은 공기, 아늑한 분위기, 아름다운 풍광은 노인의 건강과 복지에 아주 좋은 입지조건으로 이런 곳에서의 생활은 삼림욕 그 자체가 될 것이다. 삼림욕의 숨겨진 비밀 그러면 실제로 폐병을 치유하고 머리를 맑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숲에서 들이마시게 되는 공기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가. 숲에서는 다양한 향기가 나는데 이것은 수목에서 분비되는 휘발성 물질들 때문이다. 우리가 숲속에 들어설 때 우리의 코를 자극하고 가슴 속을 파고드는 향기의 실체는 바로 테르펜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이는 특히 소나무 가지를 꺾거나 솔잎을 문지를 때 더욱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자연의 향이라고 광고되는 방향제, 탈취제, 세정제와 같은 대부분의 생활용품이 숲에서의 향기를 모방하고 있다. 테르,펜은 식물에 의해 생성되는 것으로 많은 이소프렌이 모여서 된 탄화수소의 일종으로 이소프렌이 2개 혹은 3개, 4개인 모노테르펜, 세스퀴테르펜, 디테르펜 등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약 140종류의 테르펜이 있다. 이 중 정유, 수지, 카로틴, 스테롤, 라텍스, 고무 등은 우리에게 친숙한 것들이다. 테르펜류는 박테리아, 곰팡이, 기생충, 곤충 등을 죽이거나 발육, 증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살충제, 살균제, 방부제등으로 이용된다. 테르펜은 휘발성이고 액화시킬 수 있어 몸 깊숙한 곳까지 흡입할 수 있으며 자체의 독성이 적기 때문에 실제적인 이용가치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테르펜게 물질의 약리효과는 피부자극제, 소염제, 소독제, 혈압완화제로 이용되고 있므며 거담제, 항히스타민제, 강장제, 피로회복제 등의 복합적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구체적인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지만 뉴질랜드, 호주 등지에서 주요한 수종인 유칼리 나무에서 추출한 장뇌유,. 치몰, 규피산 등은 폐렴, 결핵, 나병 등의 치료에 이용되고 쥐손이풀에서 추출한 제라늄산은 폐결핵 치료에 그리고 큐마린은 박테리아 특히 대장균의 발육을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정유라는 물질 테르펜 종류 중 2개 내지 3개의 이소프렌이 모여 만들어진 정유는 초본이나 수목의 잎, 꽃 또는 열매에서 독특한 냄새를 유발하는 휘발성 물질로 특히 소나무나 녹나무 그리고 탱자나무, 귤나무 같은 운향과 식물의 기공을 통해 밖으로 나가 숲속의 향기를 만들어낸다. 귤나무의 경우 귤껍질에서 71가지 휘발성 물질이 발산될 만큼 정유의 종류는 많다. 우리 나라의 소나무 숲을 빨갛게 불태우는 솔잎혹파리의 방제 실험에 귤 종류의 나무에서 추출한 정유가 사용된 적도 있다. 정유는 향료로 쓰이며 소나무과 식물의 잎, 목재 또는 뿌리에서 정제한 정유는 터펜틴이라 하여 경제적 가치가 크다. 정유의 생리적 기능은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가 추측되고 있다. 우선 타감작용을 일으켜 경쟁이 되는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는 것이다. 타감작용이란 한 식물이 특수한 화학물질을 분비해 경쟁이 되는 다른 종의 생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미 학문적으로 증명되고 발견된 타감물질은 아주 많은데 곰팡이가 생산하는 항생물질이 대표적인 것이다. 우리가 소나무 숲에서는 그 밑에 풀이 자라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소나무의 낙엽에서 분해된 탄닌과 같은 물질이 토양 속에 스며들어 풀의 생육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정유의 기능은 꽃의 수분을 시켜주는 매개곤충을 유인하는 역할을 한다. 식물에게 있어 최대의 관심은 종자를 생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수분을 시켜줄 매개물이 매우 중요하다. 식물마다 독특하게 발달된 정유를 휘발시켜 고유의 수분매개 곤충을 유인한다. 마지막으로 정유의 주요한 생리적 기능은 포식자의 공격을 억제하는 역할이다. 식물들은 나름대로 초식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수단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양귀비꽃에 들어있는 모르핀이나 담배의 니코틴, 커피의 카페인 등은 이들을 공격하는 초식동물이나 곤충들을 방어하는 데 쓰이는 독이다. 또 정유의 일종인 알파피넨의 함량이 많은 소나무는 소나무 좀벌레의 공격을 거의 받지 ㅇ낳는다. 편백나무로 집을 지으면 수십년간 벌레가 먹지 않는다는 것도 바로 정유가 포식자에 대항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정유성분 중에는 피층 또는 점막과 접촉하게 되면 이를 자극시키거나 흥분시키는 것이 많다. 또한 피부의 염증을 방지하거나 치료하는 효과도 있어 소염제로 사용된다. 유칼리 잎에서 생성되는 시네올이라는 성분은 심장 등의 순환계 계통에 영향을 주어 혈압강하 작용을 한다. 한편 정유는 중추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흥분작용을, 또는 진정작용을 한다. 숲속에 들어가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정유의 이러한 작용 때문이다. 결국 숲이 가지는 치유능력은 이러한 물질
숲의 살충제-피톤치드 식물들이 발산하는 테르펜이 항균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사람은 구소련 레닌그라드 대학의 토킨박사다. 1936년 토킨 박사는 약 240가지 고등식물의 잎, 수피, 꽃 등을 이용하여 테르펜의 항균작용 실험을 했다. 아카시아 꽃과 떡갈나무의 잎을 폐병균과 함께 뚜고 잠시 뚜껑을 덮어놓았다가 얼마후 관찰한 결과 폐병균이 완전히 죽어 있었던 것이다. 즉 아카시아 꽃과 떡갈나무 잎에 존재하는 방향성분의 살균 효과를 입증한 셈이다. 토킨 박사는 이러한 물질을 피톤치드라고 이름붙였는데 이것은 식물을 의미하는 피톤과 다른 생물을 죽인다는 뜻의 치드가 합성된 말이다 따라서 피톤치드는 어떤 특정한 화학성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숲의 식물이 만들어내는 정유를 포함한 테르펜 물질과 살균성질을 가진 모든 화합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토킨 박사에 의하면 인간에게 생기를 주는 물질이다. 피톤치드는 원래 식물이 가지는 방어 및 치료기술이다. 식물이 야생동물에게 상처를 받으면 상처 부위로 각종 병원균이 침투하게 된다. 상처 부위로 침입한 병원균은 식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데 식물은 스스로 방어물질을 생산해 이런 위험을 제거한다. 소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면 소나무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송진을 분비하여 상처 부위를 감싸 침입하는 병원균을 죽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무 줄기에서 불거져나온 옹이나 돌출부는 대부분 상처 부위의 치유 흔적들이다. 이들 숲에서 천연적으로 생성되는 피톤치드가 일반 항생제와 다른 점은 다양한 식물로부터 생성되기 때문에 각각의 균에 대해 선택성이 있어 의약 항균제가 어느 특정한 균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내성개체의 발생을 유도하는 것과 같은 부작용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천연물질로 인간의 몸에 무리없이 흡수되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방어능력을 촉진시킨다. 더불어 공기 중에 테르펜 물질이 섞여 있으면 공기의 응결핵 밀도가 상대적으로 희박해져 호홉할 때 폐로 들어가는 먼지의 양이 줄어들게 된다. 도심에서 마시게 되는 먼지나 오염물질 대신 숲에서는 피톤치드를 마시게 되는 셈이다. 생활 속의 피톤치드 테르펜, 정유, 피톤치드 등과 같은 전문용어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즉 이들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전부터 우리는 숲이나 식물의 살충효과를 실생활에 이용한 예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민간 치료법의 과학적 입증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솔잎을 깔고 찌는 송편은 향긋한 솔향이 배어 맛도 일품이지만 송편을 오랫동안 변질되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솔잎 속에 함유되어 있던 정유성분이 고열로 휘발되어 송편에 묻어 송편을 변질시키는 곰팡이 등의 미생물의 생육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실제 고온 증기로 찌는 방법은 정유 정제의 한 방법이다. 색색의 경단을 솔잎이나 대나무 잎에 싸는 이유도 다 이 때문이다. 한편 산촌에서는 송림 부근에는 퇴비장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송림에서는 지렁이나 미생물이 살지 못해 풀을 썩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나 일본에서 즐기는 생선회는 삼나무 잎이나 무채, 차조기 잎 그리고 겨자가 함께 나온다. 이것은 이들의 향기로 입맛을 돋우는 역할도 하지만 그것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살리실산이라는 방부성 물질이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마늘에 들어 있는 알리신이라는 성분은 최근 여러 의약품으로 상품화되어 이요되고 있으며 여름에 생선을 먹을 경우 마늘과 함께 먹으면 식중독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한다. 무좀을 치료하는 민간요법 중의 하나는 다진 마늘을 발에 싸는 방법이 있다. 이것도 무좀곰팡이를 죽이는 마늘의 효과를 확인하는 것이다. 또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는 커다란 오동나무 잎이 놓여 있었는데 이것도 오동나무가 살충작용을 해 화장실에 벌레가 생기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었다. 뽕나무 잎을 따면 흰색의 즙이 나오는데 이것을 상엽즙 또는 상엽자라 하여 상처를 치료하는 데 이용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입술에 난 종기에 잘 듣는다. 고대부터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한 각종 향신료는 비록 테르펜계 물질은 아닐지라도 단순히 미각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약리효과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항암 효과가 있는 식물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다소 자극적이기도 한 독특한 맛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피톤치드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들 독특한 향이 나고 초식자들에 대해 독해를 나타내는 식물들은 열대림에서 풍부하게 자라고 있는데 이는 전세계에서 후시발되는 정유의 총량 중 열대의 산림에서 휘발되는 양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테르펜 물질의 발산량 전세계적으로 테르펜의 생산량은 연간 약 14억 톤이라고 한다. 그러나 테르펜 발생량은 수종에 따라, 동일종에 대해서도 계절별, 일별, 시간별로 큰 차이가 있다. 피톤치드를 구성하는 것이 테르펜 물질이라고 하면 테르펜 생산량이 많은 숲이 그만큼 피톤치드의 효과도 크다고 하겠다.일반적으로 테르펜 물질 특히 정유 물질은 활엽수보다는 침엽수에서 많이 방출된다. 숲의 향기가 소나무 향기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테르펜의 주요 발생원이 우리 나라 숲의 경우 소나무류이기 때문이다. 침엽수림 1ha에서 발생되는 피톤치드의 양은 하루 약 30kg정도인데 비해 활엽수림에서의 하루 발산량은 약 2-3kg정도가 발생한다. 수종별로 테르펜의 약리작용을 살펴보면 소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 잣나무 등과 같은 소나무과의 식물은 동맥경화예방과 디프테리아 치료에 그 효과가 크다. 편백나무, 나한백, 화백나무 그리고 우리에게 드라이 진으로 유명한 노간주나무등이 속하는 향나무과 식물은 요로소독과 소염, 진정, 진해에 효과가 있다. 아름다운 향기를 주어 운향과라 이름붙여진 식물 중 밀감나무나 탱자나무 등은 건위제로 효과가 있으며 녹나무는 중추신경 흥분제로 효과가 있다. 활엽수인 밤나무나 구실잣밤나무는 소독제, 가려움증 지료제로이용되고 혈관을 유연하게 하여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된다. 타르펜의 발산량을 계절별로 살펴보면 일사량이 온도높으며 습도가 높을 때 상대적으로 발산량이 많다. 수목의 생육이 왕성한 시기인 초여름이나 여름의 더운 날씨에 발산되는 양은 겨울철에 발생하는 양의 5-10배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삼림욕이 여름철 레저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일별로 발생조건을 살펴보면 새벽인 오전 6시와 12시 전후에서 발산량이 절정을 이룬다. 새벽에 숲속에 들어가면 더욱 상쾌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건 단순히 기분만의 문제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새벽에는 공기 중 테르펜 함량이 높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생산량은 많은 반면 공기의 이동이 적고 기온이 낮아져 공기 중의 수분포화눙력이 떨어져 수분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지게 되어 발산된 테르펜이 휘발되지 않고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기온역전이 일어나게 되면 테르펜의 농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한편 바람과 같은 공기의 이덩은 테르펜의 발산량 자체를 증가시키는데 이는 식믈의 잎을 인위적으로 회전운동을 시켜보면 알 수 있다. 정지 상태의 잎에서보다 회잔시킨 잎에서 더 많은 휘발물질이 생성되고 회전수가 증가될수록 더욱 늘어난다. 결국 숲의 나뭇잎에서 발산되는 테르펜의 양은 맑은 날씨에 바람이 강히게 불고 기온이 높을 때가 가장 많다. 식물체가 기공을 열어 기체교환이 활발할 때 테르펜의 발생량이 많다는 것은 기공의 개폐 자체가 맑고 기온이 높고 바람이 부느 날 활발하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습도가 높은 날은 테르펜 발생량이 적지만 공기의 이동이 적어 농도는 오히려 높을 수 있다. 또한 스관이 은폐된 곳이 소개된 곳보다 공기의 차단이 쉬워 테르펜 농도는 높을 수 있다. 결국 맑고 기온이 높으며 바람이 불면 테르펜의 발생량이 최대가 될 수 있으며 숲내에서도 계곡 근처가 습도가 높아 테르펜의 농도가 촤고가 될 수 있다. 흐르는 물이 지속적으로 소규모의 공기이동을 유발시켜 테르펜의 발생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책의 효과 삼림욕과 관련하여 중요한 운동은 산책이라는 보행운동이다. 산책은 삼림욕의 피톤치드 효과와 더불어 신체를 건강하게 2대 요인이다. 산책이 신체족 은동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심박동수, %HRmax(최고 심박동수의 비율), 산소섭취량, 최대산소섭취율, 에너지대사율, 혈압 등이다. 이러한 신체적 은동은 삼림욕 코스의 설체조건, 산책하는 사람의 보행방법, 기상조건, 산책시간 등에 따라 그 효과의 폭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건강상의 이유로 삼림욕을 실시ㅎ라 때는 자기 진단을 하고 적절한 코스와 강도를 적용해야 최다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보행은 사람이 평생을 걸쳐 기본적으로 행하는 운동으로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운동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보행운동을 하게 되면 최대산소흡수량이 증가하는데 이것은 심장의 용적과 근육의 산소함유량을 증대 시킨다. 보행시의 호흡조절은 폐의 호흡효율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지속되면 결국 폐활량을 증가시킨다. 또한 운동량의 증가에 따라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고 혈압이 상승한다. 그러나 수축기 혈압(최대혈압)은 상승하고 확장기 혈압은 거의 상승하지 않는다. 보행운동에 의해 혈관은 광대한 조직의 말초혈관에 많은 혈액을 순조롭게 흘려보내고 혈관 자체도 유연성을 증가시켜 혈관이 젊어진다. 섭취하는 산소의 증가는 근육세포의 대사활동을 촉진시키고 중가된 근육 모세혈관으로부터 산소와 탄산가스의 교환이 보다 용이하게 이루어져 불필요한 지방을 제거시켜주고 근육의 양을 늘려준다. 보통 산림욕을 하는 동안 산책을 하면 보행이 낳는 효과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맑고 깨끗한 산소가 많이 포함된 공기, 신경을 안정시키고 해로운 잡균을 죽이는 피톤치드, 쾌적한 환경, 자연스러운 숲길, 다양한 경관, 이 모든 것이 걷는 것 자체를 매우 즐겁게 하여 그 효과는 배가 된다. 그러나 실제로 %HRmax나 산소섭취량, 에너지대사량, 혈압 등을 숲속에서 간단하게 측정하기란 어렵다. 특수하게 고안된 장비를 가지고 매번 측정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 최근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개인의 신체적인 조건을 관련 병원이나 운동 센터 등에서 간단하게 검사받을 수 있다. 가족들의 건강을 주기적으로 검사하여 건강관리를 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각종 내과 검진과 더불어 신체적 운동능력을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현대는 스포츠 분야에도 첨단의 과학장비들을 투입하여 인체의 운동역학을 밝혀내고 그 기능들을 최대한 향상시키고 있다. 100m 단거리 육상은 이제 인간이 낼 수 있는 기록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기록향상의 최대 관건은 신체의 운동성을 최대한 높여 줄 장비를 개발하는 것인데,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 하는 의복, 땅표면과의 충격을 최소화할수 있는 운동화가 그 요체라고 한다. 이와 더불어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측정하는 간단한 방법들이 다양하게 고안되고 있는데, 산림욕이 전문건겅 프로그램으로 개발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특히 이 분야가 눈에 띄게 발전했다. 일본에는 현재 백여 군데의 전문 삼림욕 코스가 개발되어 있는데 각 코스별로 코스 자체의 강도, 내리막길, 오르막길, 노면 특성 등이 전문적으로 설계되어 있거나 자연적인 코스의 상태도 잘 분석되어 있다. 한편 매 코스마다 살제 이용한 사람들의 신체적 조건을 분석하여 혈압, 심박동수, 에너지 대사량 등 보든 항목에 대해 실측한 자료들로 추정식을 만들어 기준표를 작성해 놓았다. 이 표에 의해서 삼림욕 참가자가 직접 측정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항목들의 추정값을 구할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삼림욕장이나 휴양림 안에 간단한 운동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한 켠에 신체조건에 따른 운동기준표가 마련된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개가 삼림욕에 필요한 것이기 보다는 윗몸일으키기, 오래매달리기, 팔굽혀펴기 등의 운동시설을 사용해 자신의 비만정도를 체크하는 것들이어서 국민건강이나 체력관리면에서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연구와 지원이 요구된다. 산책로의 조건 삼림욕에서 산책을 할 때는 산책하는 사람의 보행조건과 산책로의 조건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이상적이다.일본의 일본건강개발 재단 이사인 가 추천하는 일반적인 산책로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즐거운 산책이 가능할 것,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것, 정신적인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것, 상쾌한 산소 운동이 가능할 것, 행위자가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을 것, 건강도 및 연령층에 따른 다양한 산책로의 선택이 가능할 것, 언제든지 산책을 중지하고 휴식할 수 있을 것, 미리 코스의 보행 강도가 측정되어 추정치가 나와 있을 것, 그 산림의 특성을 살릴 것. 그러나 이상의 조건들은 사실상 숲이 제대로 되어 있으면 대부분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개개조건에 부응하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자연스럽게 갖추어 져야 바람직하다. 이상의 조건을 만족시킨는 설계상의 요점을 그는 다음의 7가지로 꼽았다. 보행로의 곡선형 배치. 완만한 경사, 급경사. 평지의 상호조화. 강한 바람과 빛의 차단. 명암과 고저의 변화. 호수, 연못, 늪, 습지, 시냇물의 배합, 숲의 방향의 고려. 산책로의 코스는 기존의 숲길을 개발하는 것이니 자연적인 자연적인 모습을 잘 보존하면 산책로의 조건을 만족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산책의 보행방법 100m 단거리 육상 경기에서는 최대한의 속도로 질주해야 한다. 그러나 마라톤은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여 달리는 사람의 호흡을 잘 조절해야 한다. 아침운동으로 인기있는 조깅은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빨리 달려서는 안된다. 걷고 달리는 데는 적절한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 산책도 마찬가지로 적당한 보행방법이 있다. 사람에 따라 약간은 다르지만 알맞은 보행속도로 알맞은 거리를 걸어야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 삼림욕의 경우 보행에 관해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산책의 목적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따라 다르다. 즉 숲에서 하는 산책을 매일 해서 운동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는 걷는 속도를 약간 빠른 듯한 걸음으로 하는 것이 좋다. 거리도 연령별로 오르막과 내리막을 적절히 배치하여 총 산책거리를 결정하고 휴식지점을 결정해서 실시한다. 그러나 삼림욕을 숲에서의 보건 및 휴양을 목적으로 할 때는 굳이 보행속도나 거리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삼림욕을 위해 운동 조건에 따라 특수하게 설계된 삼림욕장은 없는 실정이고 사회적으로 숲을 찾는 이유가 휴양이나 여가 쪽으로 기우는 것을 고려할 때 자연스럽게 거닐다 가는 것이 더 합당한 것 같다. 특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산을 찾는 경우는 피톤치드의 효과를 만끽하기 위해 숲속에서 오래 머물며 심리적 안정을 구해야 할 것이다. 숲의 자연적인 보건기능 숲은 치료보다는 건강을 보호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숲의 보건기능이 바로 그것이다. 오감의 발현 숲의 나무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가 비록 직접적인 치료효과를 가진 삼림욕의 실체라고 하지만 숲이 가진 다양한 물리적환경은 피톤치드 못지않게 놀라은 효과가 있다. 숲의 무형적인 혜택 이를테면 숲의 고요함, 자연적인 경관, 일상에서의 탈출감, 숲의 색채 이 모든 것이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고 숲의 기상, 흐르는 물,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길은 사람의 신체를 치료한다. 우선 숲의 푸른색, 싱그러은 향기, 흙의 감촉,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 이것은 사람의 감각기관을 자극한다. 맑고 푸른 색은 시각적으로 청량감을 주고, 크고 넓은 숲의 전경을 바라보면 눈의 피로가 풀리게 된다. 숲속과 도시의 인공기후실에서 동공의 반응속도를 비교한 실험이 있는데, 숲속에서 동공은 인공기후 실험실보다 3배나 반응이 컸다고 한다. 동공의 반사는 자율신경의 움직임을 잘 나타내므로 그 상태를 비교하면 신경의 흥분상태를 알 수 있다. 숲속에서는 자율신경이 자극을 받아 동공에 생기가 충만하고 뇌의 활동까지 돕는다. 나뭇잎의 일렁이는 모습이나 낙엽이 쌓여 있는 모습은 또한 시각적으로 질감이 아주 좋다. 숲의 온갖 향기는 살균력을 가지고 있어 이미 치료의 기능을 살펴 보았지만 상콰한 향 자체는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고 기분을 맑게 한다. 도시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퀴퀴하지만 숲속에서는 알싸한 향을 풍긴다. 도시의 포장길이 매끄러운 반면 숲속의 길은 거칠다. 숲숙을 거닐 때 몸에 스치는 모든 것들은 탄성을 가지고 있으며 살아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숲속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도시의 것들과는 사뭇 다르며 거부감이 없다. 뭔가 두려운 것, 더러운 것에 닿을까 한껏 움츠렸던 몸을 숲에서는 마음껏 펼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닿아서 불쾌한 것이 없다, 숲의 소리는 맑다. 도시가 쏟아내는 온갖 소음들, 자동차 경적소리, TV, 라디오에서 훌러나오는 소리, 전화벨 소리, 삐삐소리, 심지어 사람의 말소리까지 인간의 음역을 거스른다. 비정상적으로 높고 가는 소리,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소리, 갑자기 쾅쾅거리는 소리,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소리 이런 유형의 모든 소리는 사람의 청각을 지나치게 자극하고 산경을 흥분시킨다. 도시의 생활은 끊임없는 소음 속에서 영위된다. 이에 비해 숲속에서 나는 소리는 사랑스럽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대는 소리, 물이 흘러가는 소리, 새가 우는 소리, 모두가 낮고 조용하며 물흐르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간간이 들리는 것들이다. 우리의 귀가 자극받을 이유가 없다. 숲은 맛 또한 지녔다. 숲에서 흐르는 물은 달고 진하다. 뒷맛이 깨끗하다. 숲에서 나는 산채는 사람의 입맛을 돋군다. 산채의 여러 약리작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독특한 향을 지닌 맛은 먹는 기쁨을 되찾아 준다. 만일 사람이 먹기 위해 만든 과자가 떫은 맛이라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숲에서 나는 도토리는 떫어도 먹을 수 있으며 옛날부터 그 맛은 사랑받아 왔다. 다래, 머루, 으름, 보리수, 산딸기, 오디, 산돌배 등 이름조차 상큼한 숲의 과실은 시어도 맛있다. 정말이지 숲에서 맛보는 모든 것이 사람의 미각을 자극한다. 이렇듯 숲은 사람의 혼탁해진 오감을 맑게 해주고 지나치지 않은 강도의 자극으로 감각을 마음껏 일깨워 준다. 절로 건강해질 수 있다. 숲의 기상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라도 숲속은 서늘하다. 이것은 숲의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겨울에는 숲속이 더 따뜻하다. 비록 잎은 떨어지고 없더라도 나무들이 태양빛을 차단하여 그늘을 드리우면 숲 바깥보다 추워야 하는데 오히려 따뜻하다. 이해가 잘 되질 않을 것이다. 숲은 미기상이라는 특이한 기상을 갖고 있다. 삼림욕에는 피톤치드의 직접적인 효과도 필요하지만기후의 지원이 있을 때 그 효과가 진가를 발휘한다. 이미 앞에서 피톤치드의 발생이 숲의 기상과 관련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숲의 기온은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서 최고기온은 낮으며 최저기온은 높다. 즉 여름은 서늘하고 겨을은 따뜻하다. 남산과 서을시내의 기온차는 평균 2-3도 정도난다. 지구의 기온이 평균 0.5도만 높이져도 기상이변이라고 하니 이 차이는 기상학적으로 엄청난 갓이다. 이갓은 계절적인 효과도 있자만 일교차도 비삿한 양상이 나타난다. 낮 동안에는 수관이 빛을 차단하여 온도가 너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고 야간에는 지면의 복사열이 수관에 갇혀 숲 밖으ㅗ 나가는 것이 차단되어 공시가 외부보다 따뜻하다. 수관이란 숲의 뚜껑과 같은 것으로 나무 한 그루건 숲 전체이건 가자와 나뭇잎들이 밀집된 상층외곽을 말한다. 한편 나무는 증산작용을 하는데, 이갓은 나무가 흙에서 흡수한 수분의 일부를 잎에 존재하는 기공이라는 미세한 구멍을 통해 외부로 내보내는 것이다. 식믈이 증산작용을 하는 이유는 수분을 흡수하기 위해서 이다. 이러한 수분의 이동을 통해 필요한 영양분을 이동시킨다. 또한 주위의 온도가 너무 높아 잎의 온도가 올라가면 잎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사활동이 지장을 받게 된다. 이는 생리적인 대사활동이 지장을 받게 된다. 이는 생리적인 대사활동에 관여하는 물질들의 온도가 높아지면 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증산작용은 바로 식믈의 온도ㅡ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물에게 물은 필수적인 요소인 반면 토양 속의 수분 상태는 대체로 좋지 못해 대개의 식물은 수분부족현상을 겪는다. 따라서 증산작용은 시기믈에게 부정적인 현상이다. 물이 증발되기 위해서는 기체로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열이 필요하다. 식믈이 증산작용을 할 때는 주위의 열을 빼앗아가고 이것이 식물잎의 온도를 내리고 숲 전체의 기온을 내린다. 그래서 증산작용니 활발한 여름철의 숲속은 시원해 진다. 결국 숲속은 온도의 변화가 적어 쾌적하다. 도시가 오염된 대기로 열섬화현상이 더해가는 지금 숲의 환경은 더윽 빛날 수 박에. 숲속은 직사광선의 일차적으로 수관에 의해 차단돼 ㅂ이 부드럽다. 직사광선을 받는 일광욕의 폐해를 숲에서는 방지할 수 있다. 직사광선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부의 색소를 침착시키거나 붉은 반점, 가려움증, 피부암과 같은 피해를 주지만 숲에서느 빛이 훨씬 덜 자극적이고 시각적으로도 눈의 피로를 즐이는 효과가 있다. 풍부한 음이온 숲속을 흐르는 냇물과 폭포는 주위의 공기를 미세한 음이온상태로 만든다. 음전기를 띤 미세한 물방울들은 긴장되고 초조한 신경을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1950년대 프랑스의 메타디에 교수는 공기중에 있는 전하를 띤 미립자 이온들이 인체조직이나 정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단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진이나 화산폭발 같은 천재지변이 있기 전에 동물들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지구 내부의 농축된 에너지는 지구의 자기장을 교란하거나 특이한 구름을 형성하는데 이 구름은 양전하를 띠게 된다. 양전하는 동물의 신경호르몬인 '세르토닌'의 분비를 자극한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면 동물이 생리 및 심리적으로 심한 장애를 느껴 불안해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된다. '세르토닌 증후군'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기 중의 양전하인 것이다. 사람의 몸은 정신적 긴장이나 육체적인 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양이온을 과다하게 방출하게 된다. 이것을 몸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각종 신경통이나, 경련, 신경장애 등이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양이온은 혼탁한 공기나 환기가 안된 실내, 폭풍우 직전에 많이 발생한다. 이에 반해 음이온은 태양의 지외선, 식물이 광합성작용을 하는 곳이나 폭포, 계곡물, 분수 등과 같이 물분자의 활동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곳에서 다량 생성된다. 숲에 많이 있는 음이온은 사람의 양이온을 상쇄하여 자율신경을 안정시킨다. 숲에 존재하는 음이온의 양은 활엽수림보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서 더욱 많으며 도심에 존재하는 양에 비해 14배에서 최고 70배 가량 많다. 요컨대 지속적으로 물이 흐르고 물방울이 튀어오르는 계곡이 있는 숲에서는 풍부한 음전하의 영향으로 삼림욕의 효과가 더 커지게 된다. 충격을 흡수하는 숲의 흙길 포장된 도로를 걷는 것은 숲길을 걸을 때보다 훨씬 피곤하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포장도로는 딱딱하고 탄력이 없어 부딛힐 때의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다. 발바닥과 도로가 마찰할 때 발생하는 충격이 그대로 발목과 무릎에 전달되고 오랫동안 걷게 되면 무리가 생긴다. 이는 척추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로 도시 생활은 인체공학적으로 무리한 요소가 많다. 딱딱한 길, 딱딱한 의자, 차고 딱딱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서 있는 경우 발뒤꿈치를 들고 있으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왜냐면 버스나 지하철의 움직임이 그대로 발로 전해져 그 충격이 척추를 타고 뇌에까지 이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숲길은 흙 그대로의 길이다. 뿐만 아니라 낙엽이 쌓여 푹신푹신하기까지 하다. 자연히 충격이 흙으로 흡수되어 발목이나 무릎에 오는 충격이 약하다. 길에 있는 울퉁불퉁한 돌은 오히려 발을 자극하여 지압효과까지 낸다. 숲을 걷는 것 자체가 건강을 위한 운동이다. 또한 숲은 자연적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형성되어 있고 길 양쪽으로 각종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기분도 좋으며 쉽게 지루해지지 않고 피곤함도 적다. 따라서 숲의 흙길을 리듬있게 걷고 뛰면 발의 지압효과와 심폐기능 증진효과가 생겨 기분도 좋아진다. 한편 숲에서의 보행은 피로가 쉽게 풀린다. 걷다가 잠시 쉬고 나면 몸이 다시 거뜬해진다. 이것은 숲 환경들의 복합적인 기능 ㄸ문이다. 온도가 높아지면 기체의 활동이 활발해져 상대적으로 밀도가 감소한다. 그래서 높은 온도에서 호흡할 때는 적은 양의 산소를 들이마시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서늘한 숲속은 산소 밀도가 높다. 따라서 숲에서는 운동을 하더라도 충분한 양의 산소를 마실 수 있어 피로감이 적다. 숲속의 부드러운 바람은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조절하여 체온이 고온 상태로 지속되거나 급격히 감소하는 경우가 드물다. 피톤치드의 약리효과뿐만 아니라 운동량 증가에 대한 효과도 주목되고 있는데 삼나무,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에서 특히 많이 생성되는 알파피넨이라는 테르펜계 물질은 대뇌피질을 자극하여 집중력을 증가시키며 운동량을 증가시킨다. 한편 숲속의 나무 등결이나 흙은 살아있는 '기'를 지니고 있어 인체의 기와 교감작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정형외과 의사들은 숲에서 휴식할 ㄸ 차가운 바위 위에 앉지 말고 맨땅이나 나무등결에 앉으라고 충고한다. 따뜻한 생체의 기와 탄성은 척추에 대한 무리를 줄여 척추디스크나 허리디시크의 발병률을 낮추기 때문이다. 숲에서 하는 운동 삼림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정적인 방법과 동적인 방법 그것이다. 정적인 방법은 삼림욕 효과가 큰 숲을 조용히 산책하거나 평상이나 해먹이 있는 곳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사색하거나 명상에 잠겨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가로이 숲속의 향기에 잠기는 것을 삼림욕의 제 1코스라고 할 수 있다. 동적인 방법은 약간의 시설물을 이용하여 코스별로 적당한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숲속에서 거니는 동안 자칫 지루하거나 단조로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가벼운 체조를 하거나 시설물을 이용하여 신체를 움직인다면 삼림욕의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동적인 삼림욕에는 세가지 운동요소가 있는데 신장, 단련, 유산소운동이다. 이를 S.P.A 건강운동이라소 한다. 중국에서 개발한 이 운동법은 예비운동, 증진운동, 완화운동 등 총 14단계로 되어 있다. 삼림욕 체조는 각 단계별로 체조에 대한 숙련도와 연령에 따라 동작과 근육을 활짝 폄으로써 근육을 활짝 폄으로써 근육에 활력을 주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노폐물이나 피로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 특히 숲속에 설치된 기구들의 대부분이 원목을 이용한 것이어서 운동 기기자체가 탄력을 가지며 생물체로서의 기를 가지고 있어 이것을 신체와 접촉하면 신체 흐름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삼림욕을 하는 마음가짐 삼림욕은 건강이라는 목적을 가진 행위이다. 따라서 삼림욕을 실행할 때는 잘 하려는 의지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자신이 숲을 방문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숲의 모든 것을 제대로 ㅎㄹ용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산에 다녀왔다는 성취감을 얻기 위해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니라 숲에 자신을 맡기고 오랫동안 느긋한 마음으로 숲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우선 삼림욕을 대하는 마음은 이것을 하나의 의사처방이라고 생각하고 주기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몇번의 경험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말고 이것 자체를 일상화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자신의 모든 상황을 기록하고 관리하여 일지를 만들고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한다. 삼림욕은 숲과의 만남이다. 숲의 생물과 접하고 삼림의 기후에 몸을 맡기는 것이므로 깊숙한 삼림에서 산책하고 대화하며 피톤치드를 한껏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마음잉 숲에 동화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도심에서 긴장되고 초조해 하며 모든 것에 불안해 하는 습성을 떨쳐버리고 자연에 귀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숲이 행하는 정신적인 치유이다. 우선 숲과 대화하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숲의 변화를 이해하고 숲의 질서를 깨우치며 하나하나의 놀라은 생명력과 섬세함에 심비감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숲속에 풀어놓고 유유자적하게 숲에대한 애정을 품어야 한다. 나무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의 살균, 살충 및 약리효과, 산책의 운동성, 최대한으로 발현되는 오감, 변화폭이 적고 완충성이 있는 숲의 기상, 신체운동에 이상적인 숲의 길, 맑은 공기, 맑은 물, 숲속의 풍부한 음이온 이 모든 것이 삼림욕의 효능을 실현시키는 실체들이다. 과거에는 일상생활이나 산업현장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찾거나 병이 들어 이를 직접적으ㅗ 치유할 목적으로, 수도하고 정진하려고, 혹은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산을 찾았지만 오늘날에는 산을 찾는 이유가 휴양과 여가라는 문화적인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 등산뿐만 아니라 야영활동, 사진촬영, 수렵, 방문, 등벽, 스키 등의 다양한 오락을 추구하기 위해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찾아간다. 도시에 사는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뚜렷한 병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심신의 안정을 구하기 위해 간다. 결국 삼림욕의 목적은 병의 치유가 아니고 병을 예방하고 더욱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는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방향으ㅗ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시회적으로 삼림욕이 관심을 받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었던 이유가 비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삼림욕의 기능이 보건 휴양측면에서 더윽 부각되리라 기대된다. 제 3부 우리 나라의 산림살이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읽기에 다소 딱딱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별 재미있는 내용은 못된단,ㄴ 말이다. 그런데도 이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뤼가 무한한 혜택을 받고 있는 산림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으며, 어떻게 관리가 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나아가 우리 나라의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가장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산림이 상대적으로 경제우위론에서 등한시되고, 여분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처지를 성토해야 한다는 알량한 직업정신에서이다 .산을 다 밀어내고 공장에서 ㅎ을 만들고, 산소를 만들고, 물을 만들고, 목재를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논을 다 허물고 공장을 짓고 집을 지어, 또 그렇게 공장에서 쌀을 만들고 , 배추를 합성하고, 콩을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외국의 산림국이, 농업국이 언제까지 우리를 먹여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연을 모르고 살게 하거나 매년 우리 아이들이 자연학습을 위해 외국으로 유학 보낼 수도 없지 않겠는가. 우리의 산림이 처해 있는 현실을 독자가 이해해주고 그럼으로써 산림을 더욱 소중하게 보아주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산림형편 우뤼나라의 산림 면적은 6백4십7만6천ha로서 전국토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께의 산림면적이 육지면적의 30%에 불과하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산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단연 높다. 우리 산림의 비율을 볼 때 분명 산림국가인데 우리나라를 산ㄹ국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세계 5대 산림국이라하면 캐나다, 뉴질랜드, 서독, 인도네시아, 미국이 손꼽힌다. 그러나 현대 산림의 역할은 단순히 목재 생산이나 임산물 생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산림이 베푸는 공익적인 기능들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 나라 숲이 베푸는 공익적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국민 총생산의 13.9%를 차지하니 가히 산림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의 산림을 소유주별로 살펴보면 국유림이 1백3십4만6천ha로 전체 산림의 21%룰 차지하고, 국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소유인 공유림은 5십만5천ha로 8%를, 개인이 소유한 사유림은 4백6십2만5천ha로 전체의 71%를 점유하고 있다. 사유림의 소유주는 전체 2백만명인데, 0.5ha 미만을 소유한 산주가 94만명으로 전체의 47%를 차지해 1인당 평균 소유면적이 2.5ha로 매우 영세적이다. 우리 나라 산림경영이나 관리의 어려움이 바로 이러한 산주의 영세성이다. 산림은 투자한 자금의 회수기간이 길고, 비록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함부로 사업을 하거나 개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산림의 이상적인 경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영세한 산주들에게 산에 투자를 유도하고 오랜기간 동안 유지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임업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사유림의 효율적인 투자방편을 마련하고 있고, 산주들도 서로서로 협업체를 만들어 대단위 경영사업단을 구성하기도 한다. 전문용어로 임목축적이라는 말이 이ㅣ다. 이것은 산의 성숙도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된다. 각국의 산림현황, 좀더 정확하게 말해 산림의 질을 비교할 때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수치이다. 임ㅁ고축적이란 일정한 단위면적에 얼마만큼의 부피를 가잔 목재가 들어서 있나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1ha당 평균 임목축적은 38세제곱밈터인데 이것은 쉽게 말하자면 1ha의 면적에 1m*1m의 밑면적을 가지는 나무기둥이 38M까지 자란 것으로 볼 수 있다. 옛 서독의 경우는 ha당 임목축적이 298세제곱미터인데 이것을 같은 방법으로 비교하면 나무기둥의 높이가 무려 298m인 셈이다. 우리나라 산림의 빈약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치다. 스위스가 278세제곱미터, 임도네시아가 116세제곱미터, 일본이 113세제곱미터니우리나라의 산림이 얼마나 미성숙한 단계인지 알 수 있다. 소유주별 산림의 임목축척을 살펴보면 국유림이 63세제곱m/ha, 공유림이 37세제곱m/ha, 사유림이 31세제곱m/ha로 사유림이 차지하는 전체 산림면적은 71%나 되는데 축적은 평균에도 훨씬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각 산림의 임목축적을 전체 산림면적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 총 산림의 임목축적량은 2억4천8백만세제곱m다. 우리나라의 연간 전체 목재수요는 약 1천만세제곱m인데, 펄프, 제지수요까지 ㅎㅂ친다면 약 2천만세제곱m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임분을 매년 필요한 2천만세제곱m씩 베어낸다고 가정하면 10여년만 지나도 바닥이 날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산림이 공금할 수 있는 목재량은 연 130만세제곱m에 불과하여 외국 의존도가 87%에 이르며 펄프, 제지 부분까지 포함한다면 95%에 이르고 있다. 지금 으리가 쓰고 있는 가구, 책상 아니 연필까지도 모두 외제인 셈이다. 앞으로 50년 후인 2040년이 되면 우리 나라 임목축적이 ha당 100세제곱m정도로 예측되지만 목재의 수요가 현재의 약 2배에 이르고 산림의 공익적 기능을 고려하여 연간 벌채할 수 있는 양은 1천만세제곱m를 초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목재 자급율은 여전히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쉽게 얘기해서 사람이 평생 몇 그루나 심고 가는지 생각해 보면 목재의 부족은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산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산의 구분 산림의 이용은 크게 농경지나 초지, 광물 및 석탄의 채굴, 주거지와 산업시설, 도로와 댐 등으 ㅣ사회기반 시설, 유원지, 골프장, 콘도긍 휴양시설로 구분된다. 이들 산지의 이용은 대개가 건전한 산림의 원형을 피괴하고 생태계의를 교란시키고 있다. 산림의 무분별힌 개발과 파괴행위는 바로 우리나라의 생존 기반에 대한 위협이므로 국가에서는 산림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이해 법적 제제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태계의 보전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관리법에 의한 천연기념물(천연보호구역), 환경보존법에 의한 자연보존지역, 생태계보호지역, 학술연구지역,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의한 조수보호구, 산림법에 의한 보안림 및 보호림, 도시계획법에 의한 도시자연공원, 자연공원법에 의한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 등이 지정되어 있다.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이 많고 이를 엄격히 준수한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너무나 많은 법적조항과 시행기관 때문에 오히려 책임을 서로 전가하거나 이용에 효율이 떨어지는 등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설악산을 살펴보자. 우선 설악산은 국유림으로 산림청관리하에 있다. 동시에 설악산은 내무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관리를 받는 국립공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을 관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설악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존지역이며 문화재 관리국에서 지정한 천연보호구역이다. 만일 설악산 대청봉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면 어느부서가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려 할까? 제일 먼저 산림청 소속 직원들이 직접 진화에 나설 것이다. 과연 어느 기관이 진화에 대한 정보나 장비, 기술을 갖추고 있을까? 불이 진화되고 난 후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할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기관은 어디인가. 국제적으로 그 생태적 가치가 인정된 설악산 생태복원에 단순히 과거종을 인공적으로 심어놓고 생태계 복원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울릉도에 고추냉이를 심는 일, 설악산에 솜다리를 심어 놓고 생태계 복원을 했다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립공원이나 유명산들이 이 자경이다. 이권이 결부되고 눈잎의 이익이 왔다갔다할 때는 모두 덤벼들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가 발생할 때는 서로 나몰라라 한다. 국토의 65%나 차지하고 있는 산림, 그 중에서 특별히 보존가치가 뛰어난 산림은 전문적인 인력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산림도 심신이 편하다. 국립공원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1872년에 지정된 미국의 옐로스톤국립공원이다. 1806년 우연히 사냥꾼에 의해 옐로스톤강의 근원지가 발견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탐ㅎㅁ했다. 1870년 잘 조직된 탐험대가 이 지역을 조사했는데, 탐함대원의 한 사람인 코넬리어스 해지스라는 판사는 이 경이로운 세계를 지역의 투기꾼으로부터 막고 대중과 후손을 위해 보존하려면 국유화해야 한다는 실로 혁명적인 생각을 했고, 미 국회는 불과 2년 뒤인 1872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을 탄생시켰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 제정한 국립공원이란 "인간의 자원이용 혹은 점유에 의해 생태계의 원형이 파괴되지 않고 동.식물종, 지형학적 특성, 서식지 등이 과학적, 교육적, 위락적 흥미를 유발하거나 대단히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중앙정부기관이 해당지역의 모든 채굴 혹은 미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효과적인 규제수단을 적용하고 국만정서, 문화, 휴양을 목적으로 제한적인 입장을 허용하는 비교적 광범위한 지역"으로 정의 하고 있다. 비교적 긴 문장의 정의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지는 생태계적으로 경관이 뛰어난 지역을 국가와 같은 강력한 규제기구가 인위적인 감섭을 통제하고 자연상태로 보존시키면서 교육이나 문화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국립공원의 설립목적은 이용보다 보존이 우선이며 모든 문제의 해결을 자연 그대로에 맡긴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미국의 옐로스톤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의 경우가 있다. 미국의 서부지역은 여름이 특히 건조하며 번갯불에 의한 산불이 빈번하다. 1988년 벼락에 의해 옐로스톤국립공원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미국의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내무성은 'LET IT BURN', 즉 자연적으로 진화될때까지 내버려두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나도 비는 오지 않고 건조한 강풍으로 산불의 진행속도와 강도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결국 첫눈이 내리면서 산불이 누그러지고나서야 인위적인 장비가 투입되고 산불은 진압되었다. 산불이 끝난 후 숲은 자연의 치유방식에 맡겨두었다. 역설적이게도 산불로 타고 남은 앙상한 숲의 잔재가 새로은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학문적으로도 산불에 의한 숲의 진전, 숲의 천이나 생태연구에 귀중한 터전을 마련해 주고 교육적으ㅗ 산불이나 자연 재앙의 위험성을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1967년 지리산이 최초의 국립공원으ㅗ 지정된 이래 1988년까지 20개의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현재 한려해상, 다도해 해상, 태안반도, 변산반도의 해상국립공원과 경주국립공원을 제외한 15개 산악국립공원이 있다. 설악산, 지리산, 주왕산, 오대산, 가야산, 치악산, 북한산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거나,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소개되는 유명한 산은 대개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이다. 이들 국립공원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 국립공원을 지정할 때 지역적 안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수려한 자연을 대표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국립공원의 지정이 아니라 국립공원을 찾는 이용자이다, 우리나라 일반에게 인식된 국립공원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지정된 것이기보다는 국가가 그 아름다움을 보증하고, 이용하기 위해 국가가 서비스 하는 국가 지정공원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산림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과도한 이용객 수, 아무렇게나 처리하는 쓰레기들, 함부로 훼손하고 피손하는 식물이나 시설물 등 보존과는 거리가 먼 행동들은 서슴없이 한다. 이용객을 제한하기 위해 예약제를 실시하거나 이용자 수준을 제한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의 소동을 일으킬 것이다. 누구나 자연을 이용할 권리를 내세우면서. 미인박명이라 했던가. 아름다운 우리 산은 그 아름다움으ㅗ 인해 또 그렇게 사라지려 한다. 국립공원에는 입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국립공원의 관리는 주로 내무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이들 중 임업이나 생태학 혹은 식물학을 전공한 사람은 얼머 되지 않는다. 제한된 인원, 제한된 전문가 수에 비해 이용자의 수는 너무 많으며 또한 증가하고 있어서 사실상 관리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용자에게 거둔 입장료의 대부분이 쓰레기 수거비용으로 지출된다는 것이 정녕 엄살만은 아닐 것이다 .전체 산악형 국립공원의 토지구성을 살펴보면 국유림 면적은 전체 64.2%를 차지하고 사유림이 25.01%, 사찰림이 10.25, 공유림이 0.595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사유림인데 이것이 지정 목적의 달성을 위한 개발규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 사유지의 규제는 사실상 개인 재산권의 규제에 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이들 국립공원 안의 사유지를 적극적으로 매입하려 하고 있다. 자연휴양림과 삼림욕장 국립공원이 내무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국유지에 지정한 공원이라면 휴양림은 산림청에서 국민 보건과 휴양을 목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자연휴양림은 국립공원과 달리 자연경관이 수려한 국유지 뿐만아니라 일정면적의 요건만 되면 사유림도 휴양림으로 조성할 수 있다. 산림청이 정한 자연휴양림이란 "정상적인 임업 경영을 하면서 휴양시설을 설치하여 국민의 보건 휴양 및 정서함양을 위한 야외공간으로 제공함과 동시에 자연교육장의 역ㅎㄹ과 산림소유자의 소득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1988년부터 국공유림을 대상으로 자연휴양림을 조성하기 시작해 1994년 현재 약 46개의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앞으로 2000년까지 100개소의 자연휴양림을 조성할 계획이다. 자연휴양림이 국립공원과 크게 다른 점은 숲의 혜택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자연교육장으로서의 기능이다. 자연휴양림은 삼림욕장, 산책로, 피크닉장, 연못, 약수터 등의 휴양시설과 임간학교, 자연관찰원등의 교육시설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이밖에도 자연휴양림은 전망대, 주차장 등의 편의시설과 어린이 놀이터, 체력단련실 등의 체육시설과 취사장, 오물처리장, 샤워장, 급수대 등의 위생시설을 갖추고 있다. 곳에 따라서는 임산물 판매장이나 산지 과수원도 있다. 반면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텔이나 콘도와 같은 숙박시설이나 대단위 음식점은 없어 일부 이런 것을 기대하며 산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별 흥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휴양을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호젓한 곳이 될 수 있다. 이들 자연휴양림은 비교적 임목축적이 높은 전국의 수려한 숲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통나무집, 나무의자, 정자, 나무 안내판 등의 숲의 산물을 직접 이용한 시설물이 많고 그 숲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는 곳도 많다. 원목기둥이 산길에 일정하게 세워져 있어 균형잡기 운동이나 동행인들끼리 간단한 오락도 할 수 있다. 유격 훈련에 나오는 사닥줄타기나 밧줄타기가 어느 휴양림에나 다 설치되어 있다. 명승지나 고적지 등 그 지역의 특색을 활용하면 자연사랑이나 향토심을 고취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휴양림은 전체적으로 산세나 산길이 험준하지 않고 평이하여 평소 등산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도 함께 동반할 수 있는 곳으로 조성되어 있다. 자연휴양림안에 있는 약수터는 특히 노인들의 좋은 '사랑방' 구실을 한다. 심림욕장은 전국의 모든 자연휴양림과 광릉 수목원에 개설되어 있다. 이들 삼림욕장의 시설이나 설계는 일본에서처럼 전문 삼림욕 코스로 설계되어 있지는 않지만 숲의 외곽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을 내어놓았고, 숲길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간간이 숲의 온도와 숲에서 발생되고 있는 산소의 양이나 공기의 신선도 등을 표시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휴양림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일률성에서 벗어나 지역마다 독특한 장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연휴양림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일률성에서 벗어나 지역마다 독특한 장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곳이 그곳이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서는 안된다. 항상 새로운 것, 뭔가 독창적인 것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을 유상으로 이용하려는 마음 자연휴양림이 조성될 당시에 산림청은 무료로 개방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자연휴양림에서 입장료제를 실시하고 있다. 주차비용과 입장료를 받는 것이다. 흔히 '서울시에서 한강 위로 다리 하나 건설하는 비용정도'의 예산이 주어지는 산림청 살림살이로서는 국민의 주머닛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용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주차료를 포함해 몇천원 수준이어서 다른 사회시설의 이용비용에 비하면 입장료라고 부르기가 오히려 무색하다. 사람들이 낮은 입장로 때문에 오히려 벌 조심성없이 산을 이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산의 가치가 작아 입장료가 적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연적ㅇ니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실 정책입안자들에게 이 문제는 아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부분이다. 너무 높은 요금을 책정하면 이용하고자 하는 일반 서민들ㄹ이 불편하고, 너무 낮게 책정하면 자연휴양림을 운영할 수가 없다. 입장료는 일종의 돈으로 환산된 권리의 대가이자 의무이다. 자연은 우리 후세와 우리의 공유재산이다. 따라서 자연을 이용하는데 대한 대가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 돈은 자연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운영비가 된다. 역으로 돈으로 지불한다는 것 자체가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 이것은 자연보존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돈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불한 요금이 숲의 쓰레기를 치우고, 산책로를 다듬고, 원목의 시설물을 관리하고 나무의 병충을 방제한다. 이제는 자연을 무상으로 이용하려는 이기적인 발상을 떨쳐내야 한다. 비싼 요금을 지불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고, 서울대공원을 가고, 용인자연농원을 가고, 롯데월드를 가지 않는가. 숲이 이것보다 못하거나 부족한 점이 있는가. 반면 이것들이 산보다 많이 베푸는 것이 무엇인가. 국립공원이 높고 험준한 산세와 아름다운 거시적 경관을 자랑한다면 자연휴양림은 편리하고 용이한 접근방법과 호젓하고 실질적인 휴양을 자랑하는 곳이다. 또한 전문적인 임업인들이 실질적으로 산을 소유한 산주를 배려하면서 산이 가지는 공익적 기능을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므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소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제 4부 삼림욕과 더불어 하는 자연학습 메마른 동심 현대생활에 비단 어른만 지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어른들이 자연을 담보로 만들어낸 오염 속에서 산음하고 어른들의 욕심에 이끌려다니느라 피곤하다. 논에서 잦라고 있는 것이 쌀나무요, 오렌지를 만드는 곳이 켈리포니아 오렌지 공장이라는 아이들의 생각이 우습기보다 차라리 서글프다. 그들이 밟고 다니는 것은 흙이 아니라 시멘트와 아스팔트이며, 그들이 생각하는 자연이란 불필요한 잡목이 자라고 불결한 벌레들이 살고 있는 불쾌한 곳이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은 놀이시설이 잘 갖추어진 공원이나 밀림의 정글 속, 동남아의 아름다운 관광지다. 우리 나라의 산수란 거실에 걸린 액자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정서는 TV나 영화에 나오는 거대하고 황량한 인공도시와 경쟁 속에서 생성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어른들이 사용하는 그대로의 거친 언어이고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회색하늘과 시커먼 하천이다. 농촌은 도시와 뒤떨어진 원시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으리 아이들에게 논에 들어가 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만일 들어가지 않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밖에서 바라보는 논의 뿌연 흙탕물은 그 속에 무슨 벌레나 위험한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사고란 경험에 의해 판단하는 성향이 강해서 온갖 생활 쓰레기가 여기저기 쌓여 있고 위험한 물질들이 흩어져 있는 환경에서 자란 도시의 아이들이 논에 고인 물을 보면 당연히 떠오르는 생각일 것이다. 가시적인 환경이 피폐해 질수록 정신적 피폐함도 커진다. 사람이란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리라. 논에 한번이라도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세계 어느 양탄자보다도 더 보드라운 흙의 감촉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사람은 자연의 품속에서 가장 큰 평화를 느낀다. 어른이나 아이나 인간의 기본정서는 매한가지이다. 어떤 인공적인 혼경도 자연만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를 주지는 못한다. 원래 사람이 자연에서 왔기에 원천적으로 자연을 접했을 때 평화와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기에 자연을 보고,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자연과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심화되어 사람을 원래의 자연으로부터 고립시켜 정신적인 고아로 만들었으며, 자연에 대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 물론 자연과 분리되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란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특히 생활의 여유가 주어진 상황에서는 지적 활동에 대한 욕망이 커진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숲을 인격도야의 장으로 여겨왔으며 할아머지, 할머니가 손녀, 손자들에게 들려주시던 옛이야기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자연과 이질적인 교육적 양분을 먹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학교, 학교를 둘러싼 차량들, 푸석푸석한 교정, 답답한 교실, 과중한 교과분량, 딱딱한 교과서, 현실과 동떨어진 교과내용 등 가장 호기심이 많고, 가장 활동적이며 또한 모든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에게 이런 학교는 사실 참기 어려우며 제대로 된 품성과 인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물론 일정한 양의 지삭이 필요한건 사실이지만 과분한 욕심과 성급함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야외 수업이나 현지수업 역시 교과서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소풍은 제대로 지도할 전문교사도 없으며 학생들도 하루 수업하지 않고 밖에서 도시락을 먹는 행위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이 사람을 바람직하게 살아가게 하는데 있다면 아이들은 우너래의 사람과 원래의 자연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국가나 사회, 부모는 이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다.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더욱 풍부한 심성을 가꿀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 나라의 여건은 제대로 된 자연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그 몫은 부모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자연학습을 통해 편협되지 않고 풍부한 심성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나 사회는 배려해야 한다. 훌륭한 인성 교육장 숲은 그 자체가 교육터전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와 조화를 그리고 그 속의 풍부한 인간성을 가르치는 큰 터전이다. 최근 방학을 이용한 야외 캠프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인성교육은 부모와 함께 자연스럽게 할 때 더욱 많은 효과가 있다. 숲에서 부모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거닐면 숲의 향기는 몸을 건강하게 하고 아름다운 자연은 인성을 올바르게 해줄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자연이나 숲, 나무에 대한 이해가 깊다면 서로의 공감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야외에 몇번 나갔다고 해서 모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교육이란 철학적, 윤리적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평생을 거쳐 이루어지는 사회행위이다. 따라서 특정한 지식을 위한 교육이 아닌 인성교육으로서의 자연학습은 항상 자연을 가까이 하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기꺼이 실행하려는 투자의식도 한편으로 요구된다. 최근들어 자연관련 서적이나 시청각자료가 관심있는 사람들에 의해 많이 보급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떠나는 숲으로의 여행은 아이들의 자연교육에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이다. 뿐만아니라 온 가족이 숲에서 일상을 떠나 다소 객관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일임네 틀림없다.
부모가 들려주는 숲 이야기 아이와 함께 숲에 들어갈 때 숲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리 알아야 할 게 있다. 동물에 대한 상식에 비해 우리가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했고 동물의 존재기반이 식물이고 보면 식물의 귀중함이나 가치는 동물에 비할 바가 못된다. 더구나 하늘에 구름이 생기고 비가 내리고 강물이 흐르는등 거시적인 지구기상을 궁극적으로 조절하는 역할까지 생각한다면 그 귀중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소나무나 참나무도 꽃을 피울까. 다람쥐는 도토리만 좋아할까? 숲에는 왜 버섯이 자라고 있을까? 나뭇잎의 모양은 왜 서로 다를까? 숲속의 낙엽 밑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숲에서 나는 냄새는 무엇이 만들어 낼까? 나무의 나이는 몇살이나 될까? 이제 이 물음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공부해 보자. 이것은 결국 숲을 이해하고, 숲에서의 활동을 더욱 즐기고, 숲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으로 이끌 것이다. 소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친숙한 나무는 소나무다. 소나무에 관한 이야기, 소설, 시, 시조, 노래를 다 열거하자면 책 한권으로는 어림도 없다. 실제 소나무만을 다룬 책이나, 소나무를 연구하는 학술회의도 있다. 소나무와 관련된 마을이름이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오기까지 했다. 우리 민족의 생횔과 정서 속에 그리고 지금 우리를 둘러싼 산에서 소나무는 늠름하게 자리잡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 나무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침엽수증 단연 으뜸을 차지하는 소나무는 세계적으로 그 종류가 100여 가지가 넘는다. 소나무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시기는 중생대의 삼첩기로 약 1억7천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때 지구에는 속새류나 고사리와 같은 거대한 양치식물이 자라고 있었고, 동물로는 파충류와 공룡이 살고 있었다. 소나무류에 속하는 나무가 100여종을 헤아리게 되니 이들의 생태적 습성이나 생리적 기능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들 소나무류는 주로 생장기(여름)와 휴면기(겨울)를 지닌 온대지역의 고산이나 경사면에서 많이 자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소나무류는 흔히 적송이라고 부르는 수피가 붉은 색을 띠는 재래 소나무와 수피가 검은 해송 그리고 맛있는 잣이 열리는 잣나무 등의 4종류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산림녹화나 조림 수종 개발 일환으로 미국이 원산지인 리기다 소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야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는 인공적으로 심은 외국산 리기다 소나무가 대부분이다. 소나무는 비교적 토양이 척박하고 경사진 곳에서도 잘 자라 일차적인 조림수종이 되었는데 혹자들은 일본의 혼다 교수가 주장한 '소나무 망국론'을 들먹이며 국토가 황폐화되면 소나무가 무성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조림할 당시 우리 나라에서 유리하게 조림에 성공할 가능성을 지닌 수종이 소나무밖에 없었으니 나무랄 수만은 없다. 또한 생태학적으로 소나무는 숲의 형성초기에 나타나 서서히 다른 나무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나무인데 가장 뚜렷한 예가 남산의 소나무다. 최근 남산 소나무의 쇠퇴현상을 두고 대기오염에 의한 것인지 자연적인 현상인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대기오염의 피해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남산의 숲이 사람들에 의해 더 이상 파손되지 않고 주기적인 관리로 숲이 잘 발전하면서 자연히 소나무가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소나무는 높은 지조와 절개를 상징했다. 한겨울의 모진 바람에도 늘 후른 잎을 자랑하는 청정한 자태는 세파에 물들지 않는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기에 충분했다. 한편 소나무 잎은 아름다운 솔향을 지니고 있어 송편의 맛을 더 좋게 했으며 마른 솔잎은 온돌을 데우는 연료로 사용되었다. 아직도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청솔가지 태우는 연기가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농가의 굴뚝에서 나오는 듯하다. 소나무의 목재는 궁궐의 기둥으로 그리고 속부분인 황장은 임금님의 관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황장목이란 소나무 심목재의 누렇게 착색된 부분으로 재질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원래 천자의 관을 만들거나 능 서실의 창혈을 막는 판재로 쓰인 것으로 소나무의 고갱이다.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왕실에서 관리하던 소나무 숲을 황장봉산이라고 한다. 특히 소나무는 뛰어난 목재 가치를 인정받아 나라에서 보호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산림에 관한 법률은 대부분 소나무 보호를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임업이나 산림관련 정책이 발전될 수 있었다. 소나무가 목재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의 또 하나는 아마 소나무가 참나무 와 같은 활엽수에 비해 연해서 가공이 편리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당시 연장들이 별로 성증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연한 목질을 선호하지 않았나 싶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를 흔히 소프트우드(softwood)라 하고 참나무, 밤나무와 같은 활엽수를 하드우드(hardwood)라고 부른다. 소나무 숲에서만 나는 송이버섯은 어떠한가. 송이버섯. 이름조차도 먹음직스럽다. '소나무의 귀', 소나무 숲에서만 난다는 얘기다. 송이버섯의 그 의학적인 효능은 차치하고라도 그 향기로운 풍미는 어떤 버섯도 따라올 수 없다. 송이버섯을 무척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은 송이를 책갈피 속에 꽂고 다니면서 그 향을 음미한다고 한다. 소나무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피티스라는 요정은 가축신인 팬을 사랑했다. 그러나 피티스를 사랑하던 북풍의 신 보레아스는 말다툼 끝에 화가 나 피티스를 바위로 밀어뜨려 피티스의 팔다리가 부러지게 만들었다. 불쌍한 피티스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되었는데 그녀가 팬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은 송진이 되어 상처를 받을 때마다 방울방울 맺힌다고 한다. 소나무의 사촌 잣나무 우리가 소나무라고 부르는 것에는 소나무가 아닌 것이 있다. 바로 잣나무다. 소나무와 잣나무 둘다 소나무속에 속하지만 명색한 차이가 있다. 가장 손쉽게 구별하는 비법은 엽 속에 묶여 있는 침엽의 수를 세어보는 것이다. 소나무, 해송, 리기다 소나무는 하나의 엽 속에 들어 있는 침엽의 수가 두세 개인 반면 잣나무는 거의 모두가 다섯 개다. 그래서 잣나무를 오엽송이라 부른다. 우리 나라 재래 소나무는 침엽이 두 개,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도 두 개, 외국에서 들여온 리기다 소나무는 세 개다. 한편 잣나우의 침엽에는 두 줄의 흰색 기공조선이 있어 백송이가 불리기도 하는데 멀리서 숲을 볼 때 희끗희끗해 보이면 이것은 잣나무 숲이다. 잣나무는 생태적으로 소나무보다 추운 곳에 자라는데 지금 자라고 있는 잣나무의 대부분은 인공적으로 심어놓은 것이다. 잣나무도 종류가 다양한데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는 섬에서 주로 자라고 침엽의 길이가 짧은 섬잣나무이다. 요즈음 주요 건물이나 공원 등에서 조경용으로 섬잣나무를 많이 심는다. 어떤 사람들은 소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심겨져 있는 잣나무를 죄인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잣나무 자체는 아주 훌륭하다. 잣나무는 줄기가 굽는 일이 없으며 곁가지가 사방으로 고루 뻗어 기품이 있어 보인다. 잎의 색깔도 소나무보다 짙고 윤택이 나서 보기에 매우 좋다. 이 나무의 죄라면 단지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엉뚱한 자리에 심겨진 죄밖에 없다. 잣나무는 맛있는 열매인 잣으로 유명하다. 잣은 우리나라 고급 음식의 장식품이나 잣죽 등 환자의 회복음식으로 이용되어왔다. 잣은 탄수화물이 적고 지방질과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잣나무가 있는 숲길을 걷다보면 잣 껍질이 소복하게 쌓인 무더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청설모라는 설취류 동물이 잣송이를 따다가 알맹이만 교묘하게 빼먹은 흔적이다. 최근 숲의 환경이 부쩍 좋아지면서 청설모의 숫자도 많이 늘어 숲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진짜나무 참나무 소나무 다음으로 흔한 것이 참나무류다. 서독이나 유럽의 경우 참나무는 아주 값진 나무로 대접받는다. 수령 200년이 되는 참나무 두세 그루의 가격은 벤츠 한 대와 맞먹는다. 우리 나라에서 참나무는 소나무 정책에 밀려 활잡목으로 취급되어 왔다. 왕실의 목재를 대기 위한 소나무는 적극 보호되고 대신 참나무류는 일반인들이 별다른 제약없이 채취할 수 있었다. '무주공산', 조선시대의 산림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라에서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표시하지 않은 산은 일반 백성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땔감을 구하기 위해, 집을 지을 목재를 구하기 위해, 저승길 가는 관을 짜기 위해, 때로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무주공산을 이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우수한 유전형질을 가진 참나무는 소실되고 비틀려 원래의 교목 성질보다는 갈라진 관목 형질을 가진 것만 남았다. 참나무는 숲의 발전 단계에서 소나무보다 늦게 나타나는데 최근 산림이 인위적인 간섭을 받지 않게 되자 참나무류가 많이 자라고 있다. 참나무는 주로 낙엽성이지만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등 남쪽에서 자라는 상록성도 있다. 고산 윤선도가 츄배되었던 보길도는 이들 상록성 참나무들이 멋진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참나무류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 가시나무 등과 이들의 상호교잡종 등 수십여 종이 자라고 있다. 교잡종은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여 전문가들도 쉽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참나무는 자원으로서 다양하게 이용되는데 우리의 식탁을 풍미로 장식하는 표고버섯의 골목으로 이용되며, 위스키나 꼬냑의 발효통으로 제일의 품질을 가진 것도 참나무이며, 술병 입구를 막고 있는 코르크 마개도 참나무로 만든다. 참나무는 이름 그대로 나무 중의 진짜나무다. 목재가 단단해 가공하기 힘들지만 한 번 가공된 것은 내구성이 아주 좋다. 최근 들어 원목가구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값이 비싼 것은 오크 원목가구다. 오크가 바로 참나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토리나 꿀밤은 참나무류의 열매인데 나무마다 각기 다른 열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도토리나 꿀밤은 모두 우리 나라의 주요한 구황자원이었으며 오늘날에는 별미로 사랑받고 있다. 도토리는 다람쥐의 주요한 비상식량이다. 사실 도토리는 다람쥐에게 그리 매격적인 식량은 아니다. 참나무류 열매는 탄닌 성분이 많아 떫은 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싫어하는 떫은 맛은 다람죄도 싫어한다. 다만 다람쥐들이 겨울을 날 때 비축해두는 비상식량으로 중요한 것이다. 단풍나무 이른 봄에 파란 잎이 돋아 가을이 오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나무. 단풍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숲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다. 단풍나무는 고운 붉은 색 때문에 관상ㄱ으로 많이 심는다. 우리가 아는 단풍나무는 잎이 손가락처럼 여러 개로 갈라져 있으며 붉은 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반구의 온대지역에서 자라는 단풍나무는 그 종류가 150가지나 되며 우리 나라에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만도 20여 종류나 된다. 잎이 다섯 개로 갈라진 것도 있고 세 개로 갈라진 것, 일곱 개로 갈라진 것, 열세 개로 갈라진 것, 짧게 갈라진 것까지 있다. 단풍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갈라진 손모양이나 낙엽색이 아닌 열매의 모양이다. 단풍나무의 열매는 모두 날개를 달고 있다. 보통 두 개의 종자가 마주보게 달려 있는데 날개의 맡단에 종자가 들어 있다. 단풍나무를 구분짓는 것이 나뭇잎의 모양이 아니라 날개가 달린 종자라는 예를 복자기나무라는 같은 단풍나무속의 식물에서 찾을 수 있다. 복자기나무는 한 잎자루에 세 개씩 소엽이 달려 있다. 잎으로는 단풍나무가 아닌데 분명 그 열매가 양쪽에 날개를 달고 있어 열매만 보면 영락없는 사촌지간이다. 가을 단풍으로 치면 복자기나무의 단풍빛이 으뜸이다. 우리 나라 곳곳의 숲에서 가을을 불태우는 것은 단풍나무 아닌 복자기나무인 경우가 많다. 최근 아파트 주위나 가로수로 흔히 심는 단풍나무가 있는데 여름철이 되면 이 나무에 매미가 유독 많이 붙어 있다. 이것은 설탕단풍이라는 외국산 단풍나무인데 수액에 당분이 많이 들어 있다. 한편 잎 뒷면이 흰색인 단풍나무가 있는데 이것은 은단풍이라 한다. 그리고 유독 잎이 많이 갈라지고 아주 아름다운 진홍색으로 단풍이 드는 나무가 있는데 이것은 당단풍나무이다. 산의 계곡부와 같은 습기 많이 있는 곳에는 단풍나무와 비슷한 나무가 있는데 바로 고로쇠나무다. 고로쇠나무는 잎이 보통 다섯 개로 갈라지는데 조금 갈라져 단순한 느낌을 준다. 이 나무의 수액은 일반나무에 비해 당도가 높아 사람들에게 약수로 이용된다. 우리 나라에서 수액이 약수로 이용되는 나무는 고로쇠나무와 거제수나무가 있다. 거제수나무는 수피가 종이처럼 얇고 하얗게 벗겨지는 자작나무의 일종으로 비교적 지대가 높은 곳에서 자란다. 고로쇠나무나 거제수나무의 수액은 산촌마을의 수입원구실을 하고 있다. 고로쇠 나무의 수액은 경칩을 전후로 한 약 일주일 동안이 약효가 제일 좋다고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무나무에서 고무를 채집하기 위해 나무 줄기에 상처를 낸 것처럼 고로쇠나무의 줄기에 V자모양의 상처를 내 수액을 채집했지만 요즘엔 나무의 물관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관을 꽂아 수액을 채집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수액도 깨끗하고 나무에게도 병균이나 해충의 침입이 덜하다고 하지만 어째 영 잔인한 느낌이다. 관을 통해 받아진 수액은 물처럼 아주 맑고 깨끗한 무색 투명한 액체이다. 우리의 산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소나무류나 참나무, 단풍나무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약 4,300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나무 종류만도 약 1,200여 종이 있다. 국토면작 대 식물종수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풍부하다. 세계적으로 생물종의 다양성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되고 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따지자먼 그 범위나 의미가 아주 심각해 지지만 간단히 말하면 많은 종류의 생물종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물종이 왜 중요한가. 우선 이ㅣ들은 생태계의 기본 구성묘소로 이들이 사라지면 구조에 결함이 생기게 되고 생태계는 무너져 버린다. 또한 다영한 종이 존재하면 구조는 더욱 복잡하게 발달하게 되고 그에 따른 기능도 강화되어 생태계의 안정성이 증가된다. 한편 인간에게 있어 생물종은 무한한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각각의 생물종은 무한한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각각의 생물종은 역사이래 온갖 시련과 환경적 변화를 겪어오면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탱하는 열쇠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인간의 문명에 큰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하찮은 풀이 어느 순간 인류최악의 형벌이라는 에이즈를 치료할 물질을 담고 있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식물분야의 연구자들이 많고 뛰어난 장비들이 개발되어 식물사진을 도감으로 편찬한 책들이 최근에 많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을 각기 특성별로 잘 정리하여 손쉽게 들고 다니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편집되어 산행할 때 들고 가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국어사전은 없고 영어사전만 있는 자녀의 책꽂이에 우리말 사전과 우리 식물사전을 선물하는 멋진 부모가 늘었으면 한다. 나무의 꽃 왜 나무는 꽃을 피울까? 개나리의 꽃잎의 수는 몇 개일까? 버드나무이 꽃은 무슨 색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꽃의 모양은 몇가지나 될까? 진달래, 개나리, 장미, 백합, 카네이션, 목련 등 모드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띠고 있다. 꽃은 아주 중요한 기관이다. 모든 생물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종족 번식일 것이다. 꽃은 바로 종족번식의 주요 수단인 것이다. 현란한 색, 아름다운 모양, 강한 향기, 감미로운 꿀, 이 모두가 수문을 의해 매개 곤충을 유인하는 수단이다. 수면이 짧은 초본에서 이 현상을 두드러진다. 소나무나 참나무, 버드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므의 꽃을 기억하기란 쉽지가 않다. 물론 나무중에서도 목련, 벚나무, 매화나무, 사과나무 등 예쁜 꽃을 피우는 것들도 많다. 결국 고사리나 쇠뜨기 같은 양치식물을 제외한 모든 관속식물은 꽃을 피운다. 양치식물도 종족번식 수단인 홀씨를 가지고 있다. 숲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고사리의 잎 뒷면을 보면 엽액을 따라 홀씨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든 관속식물이 꽃이 있지만 그 꽃의 형태는 어느 것도 겉은 것이 없다. 기본적으로 꽃은 꽃잎, 수술, 암수르 꽃받침으ㅗ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꽃잎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은행나무, 소나무, 참나무 등은 꽃잎이 없는 꽃들이다. 꽃잎을 가지고 있는 꽃들도 꽃잎이 하나의 원통을 이루고 있는지 혹은 서로 갈라져 이ㅣ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백합은 하나의 원통으로 된 꽃이며 개나리도 마찬가지다. 반면 장미, 국화, 벚꽃은 꽃잎이 여러개로 갈라진 경우이다. 암술과 수술은 동물의 암컷과 수컷에 해당되는데 꽃 하나에 두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다른 꽃속에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벚나무, 사과나무, 진달래 등은 두 개를 한꺼번에 갖추고 있는 꽃에 속하고, 소나무나 보즘나무등은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호박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이 다른 두 가지의 꽃이 함께 피어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한몸에 둘을 모두 갖초고 있는 꽃과 그렇지 못한 꽃을 동시레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반면 은행나무, 사시나무, 석류나무 같이 아예 암꽃만 피우는 암나무와 수꽃만 피우는 수나무가 구분된 나무도 있다. 마치 사람이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어 있는 반면 지렁이는 암수가 한몸으로 되어 있는 경우와 같다. 꽃받침도 나무에 따라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도 있다. 꽃에 색깔은 아주 다양하다. 꽃의 향기 또한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꽃색이 있다. 하얀색, 노란색, 파란색, 분홍색, 심지어 검은 색도 있는데 초록색꽃은 거의 없다. 원예학자들은 별의별 꽃색을 다 만들어 내지만 초록색 꽃은 만들지 못한다. 나뭇잎과 같은 초록색 꽃은 없다. 꽃잎의 독특한 색을 나타내는 데는 여러 색소가 관여하게 된다. 크산토필, 안토시아닌, 카로틴 등의 색소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잎과 낙엽의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런ㄴ데 초록색을 나타내는 색소는 엽록소인데 이것은 식물의 생산조직에만 분포한다. 생산조직이란 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하는 조직이다. 원래가 녹색인 꽃을 제외하고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녹색꽃은 없다. 만일 엽록소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사람의 피부에 이식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람이 광합성을 해서 탄수화물을 직접 만들어내면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튤립나무라는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튤립과 비슷한 꽃이 피어 그렇게 부르는데 이 나무의 꽃은 부분적으로 녹색을 띠고 있다. 튤립나무는 특히 꿀 생산으로 유명한데 꽃 하나에 한 스푼의 꿀이 나온다고 한다. 꽃에서 꿀이 많이나는 나무를 밀원식물이라고 한다. 오월에 달콤한 향기를 내며 하얗게 피는 아카시아는 대표적인 밀월식물이다. 동부유럽에는 대단위 아카시아 밀월단지가 있다. 히얀 꼬리털 같은 꽃이 피는 밤나무 역시 좋은 밀월식물이다. 꽃의 향기는 비록 비릿하고 그다지 좋지 않지만 꿀은 아주 달다. 수술 속에 있는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붙어야 수정이 되고 종자를 만든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종자룰 생산하는 일은 상당히 높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작업이다. 대무문의 나무들은 꽃이 필 때 가지나 잎은 생장하지 못한다. 잎이나 가지를 만들 양분들이 꽃을 만드는 데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일나무나 종자를 많이 만드는 나무는 해거리를 한다. "올해는 종자가 많이 달렸어" 하는 어른들의 얘기는 해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대나무의 경우는 더하다. 대나무 꽃을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나무는 알생에 딱한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수명이 다하거나 생육환경이 극히 불량해져 더 이상 살기가 힘들다고 여길 때 이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생의 마지막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모아 꽃을 피우고는 죽는 것이다. 일본에서 자생하고 있는 참대라는 대나무는 거의 120년에 한번씩 꽃을 피우는데 믿어지지않는 일이지만 세계 어느곳에 자라든 참대는 동시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사람들은 참대꽃이 피는 것을 '백조의 노래' 라고 부른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뜻이다. 꽃을 피운후 참대는 말라죽고 땅속에 뻗어있던 줄기들이 비축된 양분으로 새로운 싹을 지상에 올려놓는다. 꽃중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꽃은 불행히도 종자를 만들 수가 없다. 수술만 있고 암술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미는 몸에서 분리한 조직으로 번식시킨다. 결국 꽃은 식물이 많은 것을 투자하여 만드는 것으로 종족번식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하며, 꽃에 의해 만들어진 열매나 종자는 사람이나 야생동물에게 주요한 식량자원을 제공한다. 나무의 나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산 나무 나무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무는 이론상 영원히 죽지 않는다. 나무는 자가합성체, 즉 항상 스스로 생산하고 소모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죽는다. 병 때문에 수세가 약해지고, 벌레가 갉아먹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사정없이 밑등을 잘라내 죽는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진 것은 수령 6천년의 용혈수 라는 나무로 카나리아 제도 오로타바에 있다. 멕시코의 오아쿠사카에서 10km쯤 떨어진 산타마리아 드 테스라는 묘지에는 수령이 4천년 정도 된 방백목이 자라고 있다. 이 나무에는 멕시코의 정복자 코페르니쿠스가 그 나무 그늘에서 1개 소대를 쉬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네감비아의 베르데 만 근처에는 토인들이 바오밥나무('천년나무'라는 뜻)이라고 이름붙인 아단소니아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오밥나무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고약한 나무인데 이것과는 같은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1749년 아단슨이라는 프랑스의 식물학자는 300층의 나이테 속에 있던 영국 여행자들의 글씨를 발견했는데 수령을 추론해보니 무려 6천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나무는 경기도 용문사의 은행나무로 수령이 약 1,100년이다.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는 나무이다. 강원도 영월의 은행나무나 충남 금산으이 은행나무도 모두 천 년 이상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들은 대개가 수령이 몇백년된 것들이다. 민족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고 산 나무 나무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무는 나이를 나타내는 나이테를 줄기에 새겨놓는다. 식믈의 성장은 생장ㅅ가 왕성한 증식으로 세포 수를 늘려가는 것인데 세포의 크기는 비교적 일정하지만 세포의 증식 속도에 따라 밀도가 달라진다. 식물이 성장을 개시하는 봄부터 늦여름까지는 세포배양 속도도 빠르고 수도 많아진다. 또한 세포가 빨리 생장아기 때문에 세포의 조직이 엉성해지고 성기게 된다. 이때의 목재를 춘재라 한다. 그러나 가을부터 거의 성장을 하지 않는 겨울에는 세포의 생성 수도 작지만 세포의 크기도 작고 성장속도도 매우 느려 세포조직이 촉촉하고 촘촘하고 치밀하다. 이때의 조직을 추재라고 한다. 춘재와 추재는 명확하게 구분이 되며 추재의 촘촘한 세포배열이 춘재에 비해 좁은 폭으로 짙게 나타나 하나의 띠로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테라고 불린다. 결국 나무가 일년 동안 생장하는 폭은 연하고 다소 넓은 폭을 가지는 춘재와 그것이 맞닿아 있는 짙고 좁은 폭의 추재를 합친 것이다. 그러나 사시나무나 버드나무와 같이 빨리 자라 춘재와 추재의 구분없이 나무의 나이를 세기가 쉽지않다.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의 역사와 생자완경을 기록하는 증명서인 셈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믄을 수목연대학이라고 하는데 나이테 폭이 갑자기 좁아져 있으면 당시의 기상조건이 갑자기 변해 기온이 낮았다거나 가뭄이 심했다거나 하는 추론을 할 수 있다. 또 나이테가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경우는 지속적으로 어느 한방향으로 바람이 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한쪽이 소실되거나 탄 흔적이 있으면 산불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서울 통의동 백송은 천연기념물 제 4호로 지정되었다가 1992년 폭우에 의해 두 쪽으로 갈라져 고사되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 이 나무의 나이테로 수령을 추적해 보니 놀랍게도 1910년부터 1945년 일제 침략기 36년 동안 나무의 나이테 폭이 이상하게 좁아져 있었다. 이 시기에 툴별한 기상변화가 없었는데도 명백한 생장감소가 있었던 것이다. 민족의 아픔을 말 못하는 나무도 함께 했던 것일까. 보통 나이테의 폭이 1cm정도면 생장속도가 빠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직경 20cm의 나무도 초음 1,2년 싹이 터서 자랄 때의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10년 이상 살아온 것이다. 두팔로 안을 수 있는 나무는 그럼 몇해를 산 것일까. 나무의 줄기를 잘라야만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적으로 생장추라는 간단한 기구를 사용하면 되는데 이것은 마치 남극의 얼음 밑으로 기구를 집어넣어 토양층을 그대로 떠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즉 나무를 가슴 높이에서 줄기에 수직으로 기구를 꽂아 목편을 뜨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나면 나무줄기에는 구먼이 생기는데 그러면 나무에 해를 끼치는 곤충이나 벌레, 혹은 미생물이 들어가 목재내부를 썩일 수 있다. 따라서 생장추를 사용한 후에는 구멍의 입구를 봉합제로 막아주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구상나무 같은 침엽수는 보통 1년에 한마디씩 성장한다. 따라서 이런 수종은 가지의 마디 수를 세어보면 금방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이무리 나무의 크기가 작고 두께가 얇다 해도 나무의 살아온 햇수는 최소한 수십년이 된다. 사람이 스부해를 살면 성년으로 대접해 준다. 숲의 나이는 최소한 몇백년이다. 숲을 지금과는 다르게 대접해야 되지 않을까? 버섯은 생물을 썩이기만 할까 보섯은 우리가 먹을 수도 있는 것이고, 곰팡이는 무언가를 썩이는 것인가? 버섯도 곰팡이다. 장마기간에 옷이 피는 곰팡이나 식빵에 피는 붉은 곰팡이, 페니실린의 원료가 되는 푸른 곰팡이, 양송이버섯,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모두 동물도 식물도 아닌곰팡이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들 곰팡이가 부여받은 일차적인 의무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분해하는 것이다. 곰팡이를 비롯한 박테리아, 토양 속에 사는 작은 미소생불들은 유기물을 분해하여 살아 있는 생물이 이용할 수 있는 무기양분을 만드는 생태계의 분해자들이다. 곰팡이류의 종류도 아주많고 복잡하다. 버섯은 담자균류에 속하는데 이것의 특성은 자실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자실체는 식물의 꽃과 같아서 이 속에 버섯이 번식하는 데 필요한 포자가 발달한다. 식물의 줄기나 잎, 뿌리에 해당하는 것은 균사체이다. 균사체는 가는 실 같은 균사가 엉켜 있는 것으로 대부분이 땅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균사체는 엽록소가 없어 동화작용을 할 수 없다. 따라서 토양에 들어 이는 유기물질들을 분해하여 영양분을 섭취한다. 송이버섯, 양송이버섯, 무당버섯, 알버섯, 젖버섯 등 자실체를 형성하는 대표적인 버섯이다. 한편 이외에도 포자가 포자낭이라는 주머니 속에서 발달하는 자낭균이 있고, 포자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달리는 접합자균 등이 있다. 식물과 협동하며 살아가는 버섯 곰팡이의 주된 임무는 분해, 소위 썩이는 일이다. 그런ㄴ데 일부 곰팡이는 나무와 같이 살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바로 균근균이라는 것이다. 식물의 뿌리와 곰팡이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다. 지구상의 식물 중 905는 이 균근을 형성하는에 엽록소가 없어서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지 못하는 균군곰팡이는 식믈의 뿌리에서 광합성물질을 얻고, 식물의 뿌리는 토양 속에서 뻗어가면서 걱종 양분과 수분을 흡수하는데 곰팡이로 들러싸이면 표면적이 넓어져 흡수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지게 된다. 또한 뿌리가 보호되어 가뭄에 의해 건조해진다거나 병원균이 침입하는 것을 방지한다. 곰팡이는 각종 유효한 효소를 분비하는데 이들 효소에 의해 토양의 유기물 분해가 촉진되고 식물은 이를 흡수하게 된다. 아름다운 꽃과 그윽한 향기로 사랑방고 있는 난과식물은 대부분 균근균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균근 없이는 살지 못한다. 난의 종자는 싹이 터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배유라는 것이 없어 혼자힘으로는 싹을 틔울 수가 없다. 균근곰팡이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균근곰팡이는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식물뿌리의 표면을 싸고 있는 외생균근과 뿌리의 세포사이에 들어가 있는 내생균근이다. 소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 피나무 등이 대표적인 외생균근수종이다. 숲속에서 소나무의 뿌리를 들추어 보면 하얀 뿌리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하얀 곰팡이 균사가 나무의 뿌리를 싸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바로 곰팡이와 공생을 이루고 있는 균근이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균근버섯은 송이버섯이다. 송이버섯은 우리 나라에서 자라는 적송하고만 공생을 이루는 것으로 수령이 15-80년 정도된 활력이 가장 왕성한 적송림에서만 나타난다. 숲속에서 흔히 발견되는 광대버섯, 무당버섯, 젖버섯, 그물버섯 등도 대표적인 균근버섯이다. 숲에서 만나게 되는 버섯은 실로 다양하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버섯만도 무려 1500-1800종이나 된다. 특히 버섯은 숲의 어느 곳에서나 관찰되는데 나뭇에 뿌리를 박고 있는 버섯, 심지어 곤충의 몸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버섯, 물 속에 보리를 박고 있는 버섯 등 유심히 관찰한다면 놀라운 버섯의 세계에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땅 속에 사는 생물들 토양 속에는 곰팡이류를 비롯하여 각종 세균, 방사선균, 조류 등과 원생동물, 선충, 응애류, 지렁이 등의 미소생물이 살고 있다. 흔히 이들을 크기에 따라 토양미생물과 토양미소생물로 구분한다. 토양미소생물은 토양 안에 있는 각종 유기물질들을 직접 분해하여 토양을 비옥하게 해주고 미소동물은 토양속을 돌아다니면서 토양의 발달을 도모하거나 공기유통을 원활하게 해주고 유기물질들을 잘게 부수어 토양미생물이 분해할 때 유리하게 해준다. 지렁이가 몸으로 삼켰다가 내놓는 흙의 무게는 지렁이 몸무게의 무려 수백배에 해당한다고 하니 이들이 토양의 구조를 바꾸어 놓는 효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숲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알싸한 느낌의 향기는 바로 토양 속에 사는 방사선균의 냄새다. 물론 이들 토양 중에 포함된 생물 중에는 식물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병원균도 있지만 이들이 식물을 죽여서 숲의 적정밀도를 낮추는 자연적인 밀도유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다소 위안이 될 수 있다. 한편 이들이 분비하는 유기물 분해물질이나 식물생장 조절물질, 항생물질 등은 의약품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박테리아 중에는 곰팡이같이 식물의 뿌리와 공생하며 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질소고정균이다. 사람이난 식물에게 질소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필수요소이기 ㄸ문에 매우 중요한 영양분이다. 실제 식물이 벌이는 생존전략은 질소와 탄소의 전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질소는 대기중에 주로 분포하는데 이것을 식물이 이용할 수 있으려면 흡수할 수 있는형태로 고정되어야 한다. 바로 질소고정박테리아들이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는데 특히 아카시아 나무, 싸리 등과 같은 콩과식믈들과 공생하여 질소를 고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뿌리에 혹 같은 조직을 만들고 이곳에서 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하여 식물에게 제공한다. 그래서 뿌리혹을 가진 식물들은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 숲이 발생하는 초기에 나타나는 식물들은 대부분이 질소고정균과 공생하는 식물들이고 이들 다음으로 나타나는 대부분의 식물들은 균근을 가진 것들이다. 습지나 늪처럼 공기 유통이 좋지 못한 곳에서는 질소고정미생물의 활동이 저조하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식물들이 질소를 섭취하는 방법은 아주 놀랍다. 끈끈이 주걱이나 파리지옥 잎사귀 같은 식충식믈이 바로 그것인데 이들은 마치 사람이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육류를 먹듯이 곤충을 잡아먹어 단백질, 즉 질소를 섭취한다. 우리가 숲길을 걸을 때 우리의 발 밑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헤아릴 수 없지만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다. 이들은 끊임없는 시련을 겪어왔고 이에 대응하는 방편으로 엄청난 수의 종족을 발달시키는 기술을 체득하여 항상 여분의 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발길에 사라지는 수가 있더라도 충분히 기능을 이어갈 상비군이 있는 셈이다. 숲속의 동물들 숲에는 식물만큼 동물도 다양하게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토양 속에 응애에서부터 나무에 붙어 있는 곤충, 계곡물 속에 사는 물고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와 청설무, 무서운 뱀이나 독사, 실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갖가지 동물이 살고 있다. 동물에 대한 상식은 식물에 비해 훨씬 수준이 높고 이주 전문적인 것들도 꽤 알려진 편이다. 이것은 각종 TV오락물이나 교육 프로그램, 자연 다큐맨터리, 심지어 만화나 영화에서까지 동물을 소재로 많이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의 강점은 이동성이 있고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변화가 눈에 확연히 드러난다는 점일 것이다. 어떠한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그것이 가시적일 때 더욱 흥미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직접 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유명한 동물원도 보유하고 있는 동물들 대개가 포유동물들이며, 덩치도 어느정도 큰 것들이다. 일반 동물원들이 앞을 다투어 자랑하는 것은 외국의 희귀한 동물들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종수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곤충원이나 새 관찰원은 거의 없다. 우리 아이들이 보는 곤충은 생활 주위에서 골칫거리인 비퀴벌레, 파리, 모기, 귀뚜라미, 나방 등이고 여름이면 사정이 조금 나아져 메뚜기나 여치, 잠자리 등을 관찰할 수 있다. 자신의 아이들이 나비에 관심이 ㅁ은 것을 알아챈 한 어머니가 아들의 적성을 살리기 위해 TV에서 보았던 나비박사를 수소문해서 문하생으로 위탁했다는 소식에 무척 감동한 적이 있다. 획일화되고 경쟁적인 교육 현실 속에서 더욱 빛나는 모습이었다. 흙 속으로 지렁이가 기어가고, 매미가 7년의 깊은 잠을 자고 있고, 땅위로 지네나 풍뎅이가 기어간다. 나비 애벌레는 부드러운 잎사귀를 갉아먹고 있으며, 거미는 먹을 것을 잡기 위하여 가지 사이로 거미줄을 친다. 호랑나비 번데기가 회려한 날개짓을 꿈꾸며 겨울을 나고 있고, 밤나무 잎의 혹 속에는 밤나무 혹벌의 유충이 잠을 자고 있다. 만일 장수하늘소라도 발견하는 날에는 정말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하늘에는 이름도 모를 각종 나비들이 날고 있으며, 벌들이 이꽃 저꽃으로 꿀을 따기 위해 날아다닌다. 휜색과 검은 색의 얼룩무늬박새가 나무 줄기에 붙어 있는 애벌레를 잡아먹고, 할미새가 물가에서 곤충을 잡아먹는다. 다이빙 일등 선수인 물총새, 나무에 구멍뚫기 선수인 딱따구리, 양어장 주인이 제일 싫어하는 호반새, 광릉 숲에서 사는 오색딱따구리, 이녀석은 큰 나무의 줄기속에 살고 있는 하늘소의 애벌레를 잡아먹고 산다. 한편 숲속애서 이들을 노리고 있는 무서운 독수리와 매, 솔개, 부엉이, 올빼미, 사랑스럽고 귀엽지는 않지만 그들도 분명 새 종류다. 놀란 눈을 가진 토끼가 이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럽게 풀을 뜯어 먹고 다람쥐가 부지런히 열매를 주워모으고 있다. 두더쥐가 떵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집을 짓고, 족제비가 감쪽같이 쥐를 잡아 먹는다. 낙엽위를 바스락 거리면서 지나가는 세모난 얼굴의 독사, 바위에 붙어서 피부호흡을 하고 있는 개구리, 도룡뇽, 혀를 날름거려 곤충이나 지렁이, 거미를 잡아먹는 바위 밑의 도마뱀. 숲에는 우리의 발 밑, 머리위, 옆 어디고 무수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불행히도 우리 숲에는 여우나 늑대, 호랑이, 곰이 사라졌다. 동물의 먹이사슬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나 숲이 조금씩 울창지고 이들의 먹이가 되는 작은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어 호랑이는 장담할 수 없지만 여우, 늑대, 곰은 돌아올지도 모른다. 노루는 돌아오지 않았던가. 최근 환경부는 오대산 노루가 설악산, 지리산에서도 뛰어널 수 있도록 자연 생태계 연육교룰 만든다고 한다. 과거에는 연이은 산맥들을 타고 많은 생물종이 왕래했는데 개발 바람은 산들의 연결고리를 끊어놓아 각각의 산들은 하나의 섬처럼 단절되어 버렸다. 가재도 돌아왔다. 계곡에도 많은 동물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걔곡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한번 상상해 보아라. 갈겨니, 수리, 열목어, 버들치, 금강모치등 이름도 정겨운데 그 단아하고 은은한 색은 품위를 한층 높여준다. 열대의 관상어들은 요란한 색으로 치장되어 있고 현란한 모양으로 우리의 시선을 유혹하지만 곧 싫증나고 만다. 은빛의 날렵하게 생긴 몸매를 가진 은어는 오히려 요염하다. 계곡의 열목어는 또한 얼마나 깨끗하고 생명력이 넘치는가. 파부르와 [식물기] 우리는 흔히 파브르하면 그의 [곤충기]를 떠올린다. 10권에 달하는 [곤충기]는 파브르의 뛰어난 감각과 섬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파브르의 뛰어난 관찰력은 식물부분에서도 나타났는데 바로 파브르의 [식물기]에서이다. 비록 꽃에 대한 부분은 완성하지 못했지만 식물의 모든 조직이나 기관, 형태에 관한 그의 관찰은 식믈을 공부하고 있는 필자가 부끄러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 이 글은 식믈학이 갖는 구구하고 어려운 정의나 명칭들을 재미있는 이야기나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비교하여 서술되어 있어 자연을 소재로 한 하나의 동화책이다. 이책은 우리아이들이 파브르의 [곤충기]와 더불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추천한다. 우리아이들이 빌딩에 갇혀 플라스틱 로봇만 보며 살게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더럽고 지저분한 벌레만 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현실을 박차고 자연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아이들에게 풍부한 정서를 부여하고 자연을 접하게 하는 역할은 부모들이 해야할 몫이다. 자연의 순리와 격리된 경쟁지향적 가치관을 가진 인간은 어느 때고 불행을 자초하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미래의 우리 아이들은 자연친화적이고 풍부한 정서를 가지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부모가 숲에서 들려주는 자연의 신비와 경이는 아이들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해 주는 교육인 것이다. 제 5부 숲이 보인다-숲으로의 여행 자, 이제 숲으로 가기위한 기초지식을 다졌으니 숲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숲의 피톤치드로 몸 속의 더러운 균을 죽이고 그 싱싱한 숲의 생명력으로 마음을 채우자. 움직일 것을 생각하면 조금 귀찮고 번거로울 것 같지만 막상 도심을 빠져나와 숲으로 향하게 되면 마음은 그 어느때보다 가벼워 질 것이다. 우선 숲으로 갈 때는 마음의 지세를 바로 해야 한다. 숲은 사람들이 가서 마음대로 놀고 더럽히고 짓밟아도 되는 곳이 아니다. 또한 가보았다는 단순한 성취감을 위해서 존재하는 곳도 아니다. 우리가 숲에 가는 것은 숲의 경이로운 혜택을 직접받고, 자연과 조금이라도 친해지기 위해서이다. 숲에서 직접 자연적인 경험을 하고, 숲에서 배우려는 자세, 숲의 질서에 동화하려는 자세, 숲을 사랑하고 존중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삼림욕을 위한 복장 삼림욕은 기본적으로 삼림의 공기를 쐬고 산길을 보행하는 일이니 이에 적합한 의상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공기 중의 피톤치드가 피부와 직접 맞닿을 수 있게 하려면 얇고 헐렁한 옷차림을 하는 게 좋다. 가벼운 런닝과 팬티차림의 반나체상태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날씨가 추울 때는 외투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공기욕은 10-20분간 반나체러 한랭한자극을 받는게 원칙이므로 찬 기운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다. 한랭한 기온에 의 한 피부자극은 체온조절을 위한 반사작용 및 정신작용으로 신경을 흥분시켜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 또한 차가운 기온은 말초혈관을 단련시키고 심장기능을 왕성하게 한다. 그러나 노인이나 어린이는 감기가 우려되므로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신발은 걷기 쉽고 발이 편한 것을 택한다. 단지 발에 맞아야 할 뿐만 아니라 신발 안에서 발놀림이 자유로워야 한다. 사실 산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신발이다. 가급적 가벼운 것을 택하고 밑창은 두꺼운 것으로 한다. 가능하면 신발 바닥은 요철이 있고 고무창을 댄 거을 택해 미끄러운 숲길을 대비해야 한다. 가벼운 등산화는 끈으로 조절할 수 있어 좋다. 양말은 신발과 발의 움직임을 조정해 주는 것으로 두터운 모제품이 좋다. 이것은 보온성도 뛰어나고 건조가 빨라 땀에 젖었을 때 쉽게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숲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모자이다. 산책 도중 머리 위로 벌레나 부러진 나뭇가지 등이 떨어지는 수가 있으며 길 가운데로 뻗어나온 가지등에 얼굴이 긁힐 수도 있기 때문에 챙이 있는 모자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하리힐이나 치마, 몸에 꼭 달라붙는 옷 등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울퉁불퉁한 산길을 하이힐이나 구두 차림으로 걸으면 넘어져 다칠 위험이 있다. 또 산을 오르다보면 땀이 나기 때문에 몸에 달라붙는 옷은 위생상 좋지못하다. 우리 나라의 전통의상인 한복은 넉넉한 품이 가장 큰 특징인데 이는 지형조건을 고려해볼 때 아주 현명한 디자인이다. 우리나라는 숲이 많아 습도가 높다. 그래서 공기유통이 원활한 옷이 필요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이라는 높고 험준한 지형을 다니려면 꼭끼는 의상보다는 다소 헐렁한 옷차림이 근육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아 피로가 덜하다. 가벼운 차림의 다소 여유있는 옷을 입고 불필요한 것을 손에 들지 말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한 상태라면 삼림욕을 실시하는데 아주 좋다. 자연관찰을 위한 복장 자연관찰을 우한 복장도 삼림욕 복장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자여 관찰을 위한 장비를 가지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주머니가 많이 달린 옷을 선택하는 게 좋다. 소매와 바지 길이는 긴 것으로 해야 한다. 발레에 물리거나 가시에 찔리거나 가지에 긁히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옷색깔은 다소 원색이 좋은데 이는 만일 숲에서 길을 잃거나 조난을 당했을 때 눈에 쉽게 띄게 하기 위해서 이다. 관찰용 장비를 넣은 작은 가방을 준비해서 등 뒤로 맨다. 특히 자녀를 동반하여 자연관찰을 실시할 때는 몇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곤충이나 버섯등을 함부로 만지게 하거나 먹게 해서는 안된다. 비록 향이 아름답더라도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숲에는 많이 있다. 만일을 대비해서 비상약을 준비해 가야 한다. 아이들에게 쌍안경을 목에 둘러쥐 보아라. 그리고 아이들 배낭속에 돋보기, 핀셋, 포집병, 동.식물 도감을 넣어주어라. 정말 신나는 자연학습이 될 것이다. 이것만은 지키자. 숲 안에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러는 가운데 제나름대로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만일 이 질서 속에 사람이 들어가 어느 한부분이라도 흔들어 놓는다면 그 여파는 엄청나다. 울릉도에는 뱀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대학 생물학과 학생이 울릉도에 뱀을 한쌍을 풀어놓았다. 뭍으로 돌아오는 뱃길에서 학생은 인솔교수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 교수는 당장에 배를 울릉도로 돌려 그 학생이 풀어놓은 뱀을 가까스로 찾아냈다. 울릉도는 뱅이 없는 생태적 질서를 지켜왔다. 외부에사 뱀이 들어와 울릉도가 받게될 위협은 뱃머리를 돌리기에 충분하다. 뱀은 개구리나 들주 같은 숲의 작은 동물들을 먹고 산다. 또한 뱀은 독수리나 부엉이, 두꺼비 같은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힌다. 만약 뱀이 울릉도에 정착하게 되면 뱀에의해 작은 동물들이 무차별 피해를 받게 되고 뱀은 이를 견제할 세력이 없기 때문에 그 수가 마구 늘어날 것이다. 그 다음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히 뱀을 다시 찾아 불행한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불행한 일이 이미 진행된 예로 호수생태계가 바로 그것이다. 양식업자가 외국에서 들여온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육식어류에 의해 자생어류가 잡아먹힌 것이다. 어느 생태계건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자체적인 밀도 조절장치를 가지고 있어 평형을 유지하는데, 외국에서 들여온 육식물고기는 그를 견제할 물고기가 없고 또 경쟁상대도 없어 그곳의 물고기를 다 잡아먹을 것이고 결국 그 물고기 한 종류로 호수가 채워지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자연에 맡겨야 한다. 뱀이 없으면 그것이 그 생태계에서는 자연적인 것이다. 식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숲이란 항상 나무들이 빛과 양분과 수분을 차지하기 위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곳이다. 어찌 보면 생존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우리는 그 치열한 경쟁의 결과를 숲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나무 가운데 유난히 키가 크고 위로만 자라 가지도 별로 없고 마른 것이 있다. 이것은 빛을 많이 얻으려고 위로 뻗은 결과이다. 이런 나무는 바람이 많이 불면 바로 쓰러진다. 이란 나무의 윗부분이 부러져 누렇게 죽은 잎을 달고 있는 것을 흔히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에서 제일 울창한 나무를 베어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나무를 베어내면 그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그러면 옆에 서 있는 나무들 혹은 밑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나무들이 왕성하게 생장을 한다. 나무만이 아니다. 흙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씨앗들이 일제히 싹을 틔운다. 갑자기 숲이 부산해 지는 것이다. 그러니 숲에서 함부로 나무를 꺽거나 베어낼 일이 아니다. 숲에 가면 숲의 기능을 거스르는 일이 없이 그 속에서 조용히 머물다 와야 한다. 숲의 훌륭한 질서와 조화를 배우고 오는 것이다. 물론 숲을 아무렇게나 훼손하고 방해하여 숲이 없어지더라도 우리 생활이 유지될 수 있으면 별 상관없겠지만 숲의 파괴는 우리의 파괴와 이어지니 잘 지키고 보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숲의 손님이다. 숲의 주인은 그 속에 살아가는 개미, 풀, 나무, 새, 노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들 주인들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해서 그들의 환영 속에 기쁨을 찾는 것 밖에는 없다. 주인 위에 군림하여 그들을 고롭히면 나증에는 엄청난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준비 완료되었는가? 그러면 숲으로 삼림욕곽 자연관찰을 위해 출발하자. 사람들이 북적대고 떠들어대는 그런 유명한 산은 아닐 지라도 수려한 나무와 깨끗한 물과 무엇보다 소중한 자연이 살아있는 그런 숲을 여행하게 될 것이다.
숲으로 가는 길 떠나기에 앞서 사회가 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개발이냐 보전이냐 하는 상반된 두가지이다. 한때 개발주의는 모든 산을 깡그리 부수어버릴 듯했다. 개발이 확정되었거나 개발예정지에서는 오히려 지역민이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관광지로든 그 무엇이로든 개발만 되면 소위 별 볼 일 없던 마을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발되고 몇 년만 지나면 간절히 바라던 실체가 드러난다. 눈부신 발전이 아니라 영원한 실추라는 것으로, 지역민의 복리가 아니라 기존의 경쟁세력이 이익을 거두어가고 남는 것은 파괴된 환경과 인심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나라 무공해 지역인 강원도 점봉산 진동계곡의 청년들이 힘을 모아 이 지역의 계발을 막고 행랑객을 감시하고 스스로 천혜의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 노릇을 한다는 보도는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이제는 깨끗한 자연환경 자체가 고부가가치의 산업재원이다. 지역민이 함께 뭉쳐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결국 그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반면 일반 국민의 생활이 여유로워지고 희귀자원에 대한 무모한 수집활동이 증가하고 있어 원생지의 착취가 문제가 되고 있다. 행여 앞으로 떠나게 될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두려움부터 생기는 것은 숨기기 어렵다.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부디 자녀와 함께하는 가족여행에서 천혜의 자연을 배우고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의 혜택을 몸소 체득하면서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앞으로 가는 곳은 정말 가치있는 자원으로 우리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두고두고 누려야 할 소중한 터전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 기억의 한 페이지-오메! 단풍들 것네! 늦가을의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점봉산행을 마치고 오색 약숫물을 한 모금 겨우 마시고는 양양의 어느 병원에 도착해 딸아이의 물갈이로 인한 설사처방을 받고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내려갔다. 그러나 지난밤 좁은 차 안에서 질식에 대비해 창문을 열어놓은 채 10월 하순의 설악바람을 맞으며 지샌지라 아름다운 동해의 풍경이 꿈 속인 듯 아련했다. 주문진을 지나 새로 생긴 6번 국도, 오대산을 사정없이 관통하는 일명 진고개를 넘는 길로 접어들었다. 왼쪽으로 급하게 차를 돌리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돌려야 했다. 길이 하늘로 솟아 있는 것 같았다. 세계적인 난코스 중의 하나다. 급경사에 급커브, 옆으로 떨어져 나가는 오대산 마디마디가 아찔하게 현기증을 일으켰다. 차 뒷켠에 누워 있는 딸아이가 어지러운지 움찔움찔하며 차가 급히 돌 때마다 한쪽으로 쏠렸다. 겨우 진고갯길을 빠져나올 때쯤 오대산 월정사 입구로 가는 길을 만났다. 다음날의 일정을 잡기 위해 월정사 안길로 들어가봤다. 매표소에서 입장료와 주차료를 지불하고 사람 드문 한적한 오대산 숲길의 오후를 밟아갔다. 입구에서 얼마 올라오지 않았는데도 울창한 전나무 숲이 마치 태고 적에 생긴 깊은 원시림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전나무들이 하늘을 치달을 듯 뻗어 있어 숲의 무게가 엄중하게 전해왔다. 하늘은 그 푸른 침엽으로 가려져 있고, 바닥은 고사리나 온갖 풀들이 낮은 관목들과 함께 들어차 있어 하늘과 땅이 동색이었다. 굵직한 전나무 터널을 지나니 계곡을 끼고 나지막한 활엽수들이 형형색색으로 들어서 있었다. "오메! 단풍들 것네." 저절로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낙엽관목들이 이 계절을 보내기 아쉬운 듯 온갖 현란한 색으로 존재의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었다. 여고시절 보았던 어느 시집에서 제목이자 첫 시구였던 이말밖에는 더이상은 생각나지 않았다. 비록 그 다음의 시구들이 단풍의 정취가 아닌 사랑의 노래라 할지라도 이 첫 시구 그 자체는 10월의 오대산, 별다른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이곳에는 제격이다. 대충 답사를 끝내고 돌아와 여관을 잡았다. 하루는 차 안에서 지냈으니 하루는 여관에서 푹 쉬어야 했다. 휴대용 가스렌지를 몰래 여관안으로 들여와 물을 끓여 우유 대신 포도당용액을 만들어 딸아이의 입에 물린 후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이제 먹는 것도 귀찮았다. 푹 자고 나서 생각해볼 일이었다. 후두둑 소리에 아침잠을 깼다. 창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제대로 채집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우선 짐을 챙겨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어제의 그 길을 밟았다. 비에 젖은 전나무의 기둥은 더욱 검고, 촘촘한 바늘잎은 한층 푸르렀다. 숲 허리에는 우연이 뿌옇게 일고 있어 구름 위에 숲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전나무를 벗어났다. 오오메! 서리 맞은 잎이 꽃보다 더 붉었다. 붉다는 색감으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붉은 듯 샛노랗고 빗물 속에서도 윤이 났다. 노랑과 주황의 물감들을 붓 가는 대로 찍어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온 산을 불태우는 거시적인 단풍숲이 아니라 길따라 서 있는 작은 나무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불태우고 있었다. 아름다움보다 처절한 감정이 먼저 일었다. 눈물겹도록 아름답다는 표현을 쓸 수 있으련가. 공식적인 차도가 끝나는 지점에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대구 어느절의 신도들이 견학하기 위해 타고온 관광버스 몇 대가 가지런히 줄 서 있었다. 간이 비옷을 걸친 사람, 우산 하나를 몇 개의 손으로 받쳐든 무리, 상의를 머리 위로 올려입은 사람들, 모두 미처 비를 대비하지 못했던 터라 꽤 시끄러웠다. 산길이 제법 미끄러울 것 같았다. 산에 오를 수 있을까. 남편이 주저했다. 머뭇거리는 사람을 떠밀어 산으로 올려보내고 딸아이와 나는 라디오를 켜고 차 안에 앉아 비오는 오대산의 한쪽 품에 안겼다. 비는 일정한 속도로 계속 내리고 가끔 지나가는 바람에 나뭇잎이 빙그르르 떨어졌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빗물에 밀려 한쪽으로 모여들었다. 붉게 물든 벚나무의 떨어진 잎이 단연 으뜸이었다. 일단의 무리들도 월정사로 올라가고 남편도 산속으로 사라지고, 한순간 빗소리와 라디오 소리와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가 지나자 비에 흠뻑 젖은 채 산으로 갔던 사람이 돌아왔다. 보람이 있었는지 손에 들려 있는 채집봉지에는 구겨진 나뭇가지들이 빗물과 함께 섞여 있었다. 오대산을 빠져나가는 길에 쏘가리 매운탕집이 눈에 띄었다. 몸이 젖은 상태에서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얼큰한 매운탕에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나니 불현듯 행복감이 밀려왔다. 행복이란 좀 세련되고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곳에서나 어울릴 듯한데 비오는 날,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는 매운탕집에서 느껴지니 조금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후식으로 식혜까지 먹고 차를 몰아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새말을 지나 치악산 국립공원이라는 안내판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예정대로라면 치악산에 들러 채집을 해야 되지만 비도 오고 해서 곧장 집으로 향했다. 말없는 가운데 공감이 이루어졌다. 비오는 날 무지막지하게 산으로 내몰았으면 됐지, 더이상은 너무 무정하지 않았겠는가. 오대산, 그곳을 나는 그렇게 갔다왔으며 내 기억에는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남아 있다. 오대산과 문수보살 전설 백두대간에서 시작한 산 줄기가 금강산, 설악산을 지나 대관령, 소백산, 태백산으로 뻗어내리는 태백산맥의 큰 맥을 이루고 , 이 태백의 줄기가 대관령에 못 미쳐 차령산맥을 낳았다. 태백산맥과 차령산맥의 분기점에 위치한 것이 오대산이다. 1971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 국립공원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도암면, 용평면 및 명주군 연곡면, 홍천군 내면 일대의 3개군 5개면에 걸쳐 있어 중부지방과 영동지방에서 접근하기 쉬운 편이며 영동고속도로, 56번 국도, 7번 국도로 싸여 있다. 한편 1991년 새로 포장된 6번 국도가 강릉에서 연곡림 송림리와 산삼리를 경유하여 오대산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설악산이 험준한 산세와 기암괴석으로 기개장성한 남성상을 보여준다면, 오대산은 아담한 토산으로 이루어져 부드럽고 인자한 여성의 이미지다. 오대산은 해발 1,563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2m), 두노봉(1,421m), 상왕봉(1,493m), 호령봉(1,560m)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동쪽으로 따로 노인봉(1,338m)이 떨어져 있으며 그 아래로 금강산을 옮겨놓은 듯한 아름답고 씩씩한 소금강이 펼쳐져 있다. 마치 인자한 어머니의 치마자락에 안긴 씩씩한 아들 같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전국을 순례하던 중 태백산맥의 한가운데 있는 산의 형세를 보고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하던 장소인 청량산과 너무 닮아 청량산의 별칭인 오대산이라 이름붙였다고 전한다. 오대산에는 국보급 문화재를 비롯하여 보물, 지방문화재 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오대산의 관문이라 할 수 있으며 동대산 만월대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유난히 밝다는 월정사와 자장율사가 세운 절로 조선시대 태조와 세조가 행차하여 갖가지 전설을 남긴 상원사가 2대 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월정사에는 화려한 장식과 남한에 존재하는 유일한 북방소를 지닌 탑으로 명성이 높은 팔각구층석탑, 석조보살좌상, 문수동자상 등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현존하는 동종 중 가장 오래된 상원사 범종, 석가모니의 진골사리가 봉안된 상원사적멸보궁 등은 우리나라 문화재로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종교적일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대산을 이루는 작은 봉우리들에서부터 월정사, 상원사, 오대산내 계곡 등에는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문수보살상에 얽힌 전설을 유명하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괴질에 걸려 이곳 오대산으로 치료를 하기 위해 행차하였다. 월정사를 참배하고 상원사로 사던 도중에 계곡의 물이 너무 맑아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뒤따르던 무리들을 다 물리치고 홀로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런데 가까운 숲속에서 동자승 하나가 이를 지켜보고 있기에 세조가 불러 등을 밀게 하고는 목욕을 마쳤다. 왕의 체면에 남에게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법도에 어긋난다고 생각해 임금의 몸을 씻어주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동자에게 명했다. 그러자 동자는 왕에게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보았다는 말을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세조는 깜짝 놀라 동자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괴질이 없어졌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세조는 괴질이 나은 것은 부처의 덕이요 등을 밀어준 동자야말로 문수보살의 화신임을 깨닫고 석공에게 그가 본 동자의 모습을 조각하게 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국보 221호 문수동자상이다. 이 전설을 들으면 인간사의 권력이 만물을 주도하는 영신들의 음덕에 비추어볼 때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하는 허무함이 새삼 밀려온다. 오대산 국립공원은 울창한 삼림과 더불어 그 속에 있는 자연자원도 아주 다양하다. 비로봉 주위의 눈측백나무 군락, 주목나무 군락, 동대산 일대의 신갈나무 군락을 포함하여 우리 나라 희귀식물 및 특산식물인 매자나무, 참배암차조기, 고려엉겅퀴, 산앵도나무, 금강초롱 등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종은 총 725개나 된다. 게다가 맷돼지, 사향노루, 삵, 대륙목도리담비, 족제비 등의 동물이 뛰어다니며 도롱뇽, 물두꺼비, 꼬리치레도룡뇽이 계곡 근처 습한 곳에서 살고 있다. 오색딱따구리, 칼새, 쇠박새, 물까마귀 등의 새들이 살고 있으며, 맑은 계곡에는 금강모치, 어름치, 베가사리, 돌고기를 포함하여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열목어 등 담수어 28종이 살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 218호로 지정된 장수하늘소가 소금강 지역의 서어나무 자생군락에 서식하고 있으며 홍줄나비가 남한에서는 설악산과 이곳 오대산에서만 살고 있다. 그래서 오대산 국립공원의 총 면적 중 85%가 자연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오대산 국립공원에 대한 자연자원 조사보고서가 1994년 12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편찬되었는데, 여기에는 각 분야의 전문연구팀에 의해 조사된 이 지역 일대의 인문지리, 동.식물 및 자연자원, 경관 및 문화자원, 역사, 전설 등 오대산의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 나라의 유명산이나 국립공원 관련 안내책자에도 오대산은 어김없이 나와 있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 오대산은 각종 수목의 군락들로 유명하다. 앞서 말한 대로 비로봉 주위의 누워 자라는 눈측백의 군락, 주목나무의 군락, 동대산 일대의 신갈나무 군락, 두노봉과 상왕봉 능선에 자라고 있는 철쭉 군락, 호령봉 능선의 만병초 군락,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군락을 비롯해 온산이 아름드리 전나무로 빽빽히 들어차 군락들의 절정을 보여준다. 특히 오대산의 주목나무 군락은 수령이 몇백 년된 거목들로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조차 외람된다. 주목나무는 수형과 잎이 아주 아름다운 상록침엽으로 관상수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 가을에 열리는 빨간 열매는 진초록의 침엽과 산뜻한 대조를 이루며 야생의 새에게 더없이 좋은 먹이가 된다. 주목은 그늘에서도 아주 잘 자라며 목재가 치밀하고 생장륜이 뚜렷하고 너비가 좁아 고급가구재로 쓰인다. 그래서 전국의 내노라 하는 주목나무는 거의 다 도벌꾼들에 의해 베어지고 없다. 이곳 주목나무도 예외는 아니다. 바둑판이나 장식용 목재로 이용하기 위해 밑둥과 윗부분을 교묘하게 잘라 겨울에 밀반출하려고 기술 좋게 세워 놓아서 언뜻 보아서는 잘려진 나무인지 살아 있는 나무인지 구별을 못한다. '죽어서 천 년'이라는 별칭이 엉뚱하게 이 죽었는데 살아 있는 듯한 나무에게 붙어 있다. 원래 '죽어서 천 년'이라는 말은 주목으로 만든 목제품들은 질이 좋고 단단해 천 년 이상 견딜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최근에는 이 조목나무의 수피에서 탁솔이라는 항암성 물질이 발견되어 의학계나 식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이 또한 주목의 생존에 가해지는 위협이 되고 있다. 오대산 일대에 퍼져 있는 전나무를 보면 어떻게 여기서 자라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어떤 학자는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에서 새들이나 바람에 의해 전나무 종자가 산 전체로 퍼졌을 거라고 추측하고, 어떤 학자는 원래 오대산 일대는 수백 년된 전나무 숲이었는데 사람들에 의해 다 베어지고 그 자리에 지금의 나무들이 들어왔으며, 현재 자라고 있는 전나무들은 그때 살아남은 후손들이라고 추측한다. 매표소를 조금 지나면서부터 월정사 입구까지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전나무 수림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이들 전나무는 우리 나라 최초의 가로수로 통하는데 하늘을 찌를 듯한 위용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특히 익주문에서 월정사까지 가는 길에는 400-500년생 천연 전나무 숲은 말 그대로 검은 기둥들이 우뚝 박혀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오 백 년된 나무는 얼마 없고 칠팔 심 년생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 수관 폭이 약 20m 이상 되는 아홉 그루의 전나무가 있는데 이를 '아홉수'라 하며 오대산 전나무의 원조라고 전해진다. 전나무라면 잘 모르는 이도 아마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하면 쉽게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 머리 꼭대기에 별을 달고 각종 장식품과 카드, 양말 등을 걸고 반짝이는 전구와 흰 솜으로 치장되어 벽난로가 있는 따뜻한 거실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 그 나무가 바로 전나무이다. 전나무는 길이 4cm, 폭 2mm의 끝이 뾰족한 잎이 소지에 빙 둘러서 깃처럼 나 있어 마치 여우나 족제비의 꼬리를 연상시킨다. 수형이 아름다워 각종 조경수나 풍치수로 많이 심는다. 전나무의 사촌이며 우리 나라 특산인 구상나무는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자라고 있는데 현재 이들은 수세가 약화되거나 고사하고 있어 생태학자나 임업인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구상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한 미국인들은 이 나무를 들여가 각종 품종으로 개발하고 관상수용 왜성 개체를 만들어 우리 나라를 비롯한 세계 식물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먹고 사는 데 정신없는 동안 외국인들은 우리의 소중한 것을 우리보다 먼저 발견하고 개발하여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은 삼림욕장을 찾는 이에게 제공되고 있다. 전나무는 정유함량이 다른 침엽수에 비해 비교적 많은 편이다. 겨울철은 100g당 2.9ml가 함유되어 있으며 여름철은 3.3ml가 들어 있어 삼나무, 편백, 구상나무, 분비나무 다음으로 많다. 울창한 전나무 숲을 거닐며 그 서늘한 숲의 공기 속에 떠다니는 숲의 혜택을 받는다면 정말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월정사에서 세속의 더러움으로 찌든 정신을 비워내고 부처의 덕으로 마음을 채운다면 더욱 건강한 산행이 될 것이다. 오대산은 볼거리도 많으니 가족끼리 꼭 한번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안면도의 소나무 숲 안면도 가는 길 아침 일찍 집에서 여장을 꾸려 멀리 눈앞에 보이는 43번 국도를 향해 나섰다. 학교(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뒷길을 따라 차를 몰아가니 주위로 누워 있는 논에는 베어낸 벼들이 쌓여 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횐색, 자주색, 분홍색의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셋방살이를 하던 학교가 새 건물로 옮겨와 오전 수업을 마치면 전교생이 학교 정비사업을 벌이는 일이 일과였다. 세숫대야를 가자 들고 나와 운동장의 돌들을 골라 나르고, 학교 가장자리로 무궁화를 심고 운동장 언덕으로는 잔디를 갖다 심었다. 운동장 주위와 학교로 오는 길가에는 주로 코스모스를 심었다. 코스모스의 작은 싹이 올라올 때쯤엔 다른 동네의 공터에 자라고 있던 코스모스를 뿌리째 뽑아다 학교로 심었던 것 같다. 졸업하기까지 3년을 계속 코스모스 꽃길 가꾸기를 했다. 그래서 코스모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볼 때마다 반갑다. 그후로는 코스모스와 별 인연이 없었다. 특히 5공 청문회가 한창이던 무렵 코스모스가 어느 한 실력자에 의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 꽃, 우리 식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 가면서 우리 들꽃들을 생각할 때 코스모스가 괘씸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기도 과천시의 코스모스 길을 지날 때나, 가을 조사 길에 만나는 한적한 시골길에 코스모스는 애정으로 다가온다. 그날 또 그렇게 코스모스를 대면했다. 딸아이가 무슨 꽃이냐고 묻기에 코스모스라고 대답했지만 기억하지는 못할 것 같다. 306번 지방도를 남향만 방향으로 달리다가 산림청 산하 임목육종 연구소를 조금 지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 43번 국도로 들어섰다. 국도 확장공사로 여기저기 파해쳐져 있었다. 좌측으로 목장 하나를 지나고 수원 장안전문대학 교문을 지나쳐 조금 더 가면 왕림휴게소를 만난다. 여기서 간식거리를 사고는 안면도를 향했다. 2차선 도로를 곧장 가다보면 경기도를 구성하고 있는 무수한 지역을 향해 뻗은 길들을 만나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직진길을 고수하기만 하면 별 문제없다. 대충 경기도권을 빠져나가면 좌우로 제법 두터운 소나무 숲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차는 어느덧 아산만 방조제를 뒤로 한다. 잠시 차를 길 한켠에 세워두고 방조제 위로 올라서니 서해의 바닷바람이 상큼했다. 아산만 방조제를 지나 삽교를 향해 차를 달리다보면 제법 서해의 구릉성 산지가 느껴진다. 넓고 완만한 지역들이 나타나고 길은 그 주변보다 높게 달리고 있다. 경상도에서 차를 달리면 주위의 산들이 길을 에워싸고 있고 길이 그 속으로 뚫려 있어 상당히 직선적이고 위협적인 느낌을 받는다. 반면 전라도 특히 해남 땅을 향하면 길이 구릉 위로 달려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갖게 된다. 충남 서해안 지역도 이런 지형적인 특색이 나타난다. 삽교천 기념관에 들러 다시 한 번 인간에 위해 차단된 바다를 보았다. 바닷물이 들썩이는 방조제 돌틈으로 게들이 기어다녔다.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 어느새 바위틈으로 숨어버렸다. 딸아이에게 솜씨 한 번 발휘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기고 차에 다시 올랐다. 이제부터는 목적지를 향해 한눈 팔지 말고 가야지. 계속 길을 따라 가다 32번 국도에 들어서니 별 인연이 없는데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당진과 서산을 통과하게 되었다. 당진을 빠져나와 서산으로 가려는데 도저히 코스모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기어이 차에 비상등을 켜고는 길쪽으로 바싹 댔다. 할머니와 아이들 코스모스 속에 자리를 잡게 하고 ㅆㅆ거리는 차들을 피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바람결에 머리칼이 날려 제대로 된 사진이 나올지 모르겠다. 서산을 지나 계속 같은 길을 따라 태안으로 갈까 하다 지도에 난 649번 국도로 들어서봤다. 길이 호젓하고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지도에서 취평이라고 나와 있는 곳을 따라가다보니 부석사 가는 길이 보였다. 중.고등학교 때 역사 시간에 익히 들었던 부석사 무량수전이 생각났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의 그 부석사는 사과 산지로 유명한 소백산 자락의 영풍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 부석사가 아님에는 분명했다. 이 절은 무슨 연고로 부석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계속 길을 따라 사는 동안 송림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안면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너무도 많은 소나무 숲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 나라 고유의 적송과 달리 수피 색이 짙어 흑송이라 불리는 해송의 검은 기둥들이 쭉쭉 들어서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들 송림 근처엔 송림휴양림이라는 나무 현관이 걸려 있었다. 남편과 나의 관심이 온통 소나무, 정확하게 말해 해송이 쏠려 있는 가운데 아이 할머니의 관심은 창 너머 생강밭으로 향해 있었다. "워매, 생강이 풍년이네, 잘 듸었네." 연방 감탄사였다. 칠전, 창리라는 곳을 차례로 지나면 서해안 AB 간척지구라는 표시가 나온다. 바다를 메워 국토를 넓힌다는 간척사업, 서해안 갯벌이 사라진다, 갯벌생태계가 파괴된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학자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행된 사업지. 어쨌든 와서 보니 놀라웠다. 작년 가을, 겨울 철새들이 대거 몰려와 새로운 겨울 철새들의 도래지로 조명을 받았던 서산 AB간척지구,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 모 기업이 조성한 농장은 온갖 곡물들로 가득 차 초식성 새들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보리싹이 청둥오리들에게 뜯긴 모습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이 지역을 관통하는 도로가 지도상에는 멀쩡하게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아직 비포장도로였다. 아마 지금쯤은 포장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구불구불, 덜컹덜컹 과연 끝까지 길이나 나 있을까 의심스러워 조심조심 가다보니 어느덧 603번 지방도와 만나는 원창지역이었다. 32번 국도를 타고 계속 태안까지 가는 경우에는 태안에서 안면도를 향해 바로 이 도로를 타면 된다. 어쨌든 원창에서 603번 도로를 조금만 내려가면 안면도를 들어가는 안면교를 만난다. 안면교를 지나 안면도로 들어서니 길 우측으로 숲으로 가려진 바다해안이 보였다. 해수욕장이라는 작은 안내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태안반도와 안면도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해상이 바로 태안 해안국립공원인 것이다. 태안 해안국립공원을 이루는 절경 중의 하나가 바로 안면도의 울창한 송림이다. 길을 따라 안면읍으로 내려가다 키가 크고 울창한 송림을 만났다. 중부 이남의 해변이나 해안지대에는 해풍의 염분이나 건조, 습기에 잘 견디는 해송이 광범위하게 자라고 있지만, 이것 안면도에서 마주치는 송림은 붉은 기둥의 적송들이다. 우리 나라 순수혈통을 간직한 소나무들이 이렇게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몇 되지 않으니 생태자원보고로 보호의 가치가 더욱 높을 수밖에. 길가로 늘어선 울창한 소나무 숲을 보자 그동안 조용하던 딸아이조차 탄성을 질렀다. 그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인 "우와! 좋다. 그쵸, 엄마야?"를 자랑스러운 듯 얼굴을 들이대며 길게 늘어뜨렸다. 안면 읍내에서 차를 세우고 방이 있어 보이는 식당에 들러 맛있는 꽃게탕을 시켰다. 서해 섬마을답게 밑반찬으로 온갖 젓갈이 나왔다. 소나무 숲으로 들어와 미끄러운 소나무 낙엽을 밟아봤다. 옛날 솔가지와 솔가리로 불을 피우던 생각이 나셨는지 아이의 할머니가 손으로 긁어모으셨다. 나무를 공부하는 남편이나 나는 오는 길이 멀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노인과 아이에게 소나무 하나를 보기 위해 4시간 이상을 달려온 것은 역시 무리였나 보다. 소나무 유전자 보전림 안면읍내에서 도로를 따라 약 10분간 차를 타고 내려오던 딴뚝일대에 키가 10m가 넘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병풍을 이루며 바다내음보다 강한 솔향을 뿜어낸다. 이곳이 바로 산림청이 희귀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유전자 보존지역이다. 유전자 보존지역이란 한마디로 우수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생물종을 보호하고 이들을 이용하여 우수한 생물종을 만들어내고 육성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3천5백여ha의 송림 중 유전자 보존림으로 지정된 지역은 1백50ha로 이 지역에는 직경 28cm, 평균 수령 60년 이상의 적송 16만여 그루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임목축업으로 따지면 1ha당 200 세제곱머터 이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임업선진국인 독일이나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비록 형태적으로 우량한 것은 아니지만, 변종이나 잡종이 드물어 우리 나라 자생 적송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어린 소나무들의 상태가 매우 좋아 자연적인 대물림이 성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안면도의 적송림은 조선시대부터 왕실의 목재를 공급하는 황장봉산으로 지정되어 남벌을 막기 위해 나라에서 주민들을 섬 밖으로 쫓아낼 만큼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이런 적송림이 1981년부터 1985년 사이에 솔잎혹파리라는 소나무 해충의 피해를 받아 한때 40% 이상의 소나무들이 위기에 처했으나 태안군과 안면도 주민들의 온갖 정성으로 살려냈다. 솔잎혹파리는 솔잎 사이에 혹 같은 비대조직을 만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성충의 길이가 2mm 남짓한 이 작은 벌레가 우리 나라의 소나무를 온통 붉게 태웠다. 이것은 적송이나 해송처럼 두 개짜리 침엽의 새로난 잎 사이에 알을 낳는데 알에서 나온 유충이 소나무잎의 영양액을 빨아먹는다. 솔잎의 기부에서 생기는 혹은 솔잎 조직이 솔잎혹파리 유충을 막기 위해 마구 만들어낸 일종의 방어조직이다. 솔잎의 생장조직이 외부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 재빨리 비대생장을 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물관이나 수관을 막아 줄기로부터 양분이동이 차단되어 솔잎이 말라죽는 것이다. 또한 1991년에는 핵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 소나무 숲이 없어질 뻔했는데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여 무산시켰다. 외부인으로부터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이처럼 아름답고 귀중한 고나무 숲을 잘 지켜낸 데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안면도에는 새로운 소나무 우량종을 육성하기 위한 송림 채종원이 약1백95ha에 조성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집된 소나무들이 잘 관리되고 있다. 곧게 잘 자라는 형질을 지닌 우량개체를 육종하기 위해서 우선 눈으로 보아 우수한 형질을 가진 나무를 선발하고 이것의 가지나 종자를 심어 후대를 생산한 다음 정말로 우수한 나무인지 검증하게 된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형질을 가졌다는 것은 전문용어로 '표현형'이 좋다는 것이고, 이것을 후대에는 동일한 조건들로 검증한다는 것은 '유전형'을 살펴보는 것이다. 뛰어난 표현형에 대한 유전형이 인정되면 이것은 진정한 우수체계로 선발되고 이것은 차대는 집중 육성된다. 이것을 선발육종이라 한다. 세종원이란 이러한 선발육종을 위하여 전국에서 표현형이 뛰어난 수형목에서 채취된 종자나 무성생식에 의해 그들의 후대림을 만들고 이들을 서로 교잡하고 선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시험장인 셈이다. 안면도의 채종원은 우리 나라 최대의 소나무 우수개체 선발장이다. 충청남도와 태안군은 1992년 안면도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해안의 백사장을 조화시켜 유전자 보존림지역으로 지정하고 그 안에 산림전시관, 수목원, 체력단련장 등을 만들고 있다. 안면도 및 중부해안지역의 자생종을 포함하여 굴거리나무, 모감주나무 등 아름다운 식물들이 있는 수목원을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가슴을 탁 띄워주고 동남쪽으로 붉은 기둥에 푸른 하늘 같은 수관을 이고 있는 강송림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나 있는 약 3.5km의 산책로를 걸으면 숲의 향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고 서해의 간간한 바람은 말 그대로 빛과 소금이 된다. 아름다운 서해안 해상국립공원을 끼고 섬이라는 특수지역에 위치한 안면도 소나무 숲, 이곳은 비단 소나무 숲에서 삼림욕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고 다양한 풍치와 우리 나라 나무자원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라 더욱 가볼 만한 것으로 손꼽힌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모감주나무 군락 안면도에 가면 또 하나의 꼭 가봐 할 게 있다. 모감주나무 군락이 그것이다. 안면도 승언리 바닷가 약 120m에 걸쳐 뻗어 있는 모감주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 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모감주나무는 6월경에 노란색 꽃이 아름답게 만발하고, 꿀 생산이 많아 중요한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9월경에 꽈리 비슷하게 생긴 주머니 속에 종자를 세 개씩 담고 있는 특이한 열매가 달리는데, 이 종자는 검은색으로 아주 아름다운 광택이 나고 단단해 옛날의 염주의 재료로 이용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낙엽활엽관목인 모감주나무는 여러 가지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어디서 왔느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 나라에서 자연적으로 모감주나무 군락이 나타나는 곳은 안면도와 전남 완도 그리고 경북 포항의 바닷가이다. 우리 나라의 해안지대에만 나타나고 또한 그 양상이 아주 불연속적이어서 이 세 지역 사이의 연계도 찾을 수가 없다. 모감주나무가 중국 자생종이냐 한국 자생종이냐는 논란이 있는데, 중국이 원산이라는 견해에 따르자면 종자가 중국에서 서해의 난류를 타고 우리 나라로 흘러와 정착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서해안의 안면도나 완도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포항에도 군락이 나타난다는 점과 앞서 말한 대로 서해안을 따라 연속적으로 분포하지 않고 단 두곳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리 시원한 답은 아니다. 실제 모감주나무가 중국에는 아주 흔하게 자라고 있으며 비교적 공해에 강해 북경에서는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한국 자생종이라는 것도 완전한 답은 구해지지 않는다. 이것이 굳이 해안성 식물이 아닌 바에야 자연군락이 남산에는 없으라는 법이 없으며 더욱이 설악산이나 지리산 어디쯤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번째, 왜 이곳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사람들이 심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세 지역 모두 공통적인 것은 모감주나무가 해안을 따라 띠 모양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모감주나무 숲 뒤로는 농경지나 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볼 때 옛날에 바닷바람이나 태풍, 파도 등을 차단하기 위해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어부림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할 뿐이다. 지난 여름 완도 갈문리 숲의 모감주나무 군락을 둘러보고 이것의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탐방조사를 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궁금증만 더 키우고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이 세 지역의 모감주나무들은 동일한 자손들인가 하는 의문이다. 조금 어려운 문제기는 하지만 모감주나무의 형태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의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일부 학자들이 세 지역의 모감주나무를 채집하여 조사.연구중이니 조만간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아무튼 모감주나무는 아름답고 탐스러운 꽃이나 특이한 열매, 꿀등으로 자원적으로 가치가 높은 나무인데 안면도에 가게 되면 꼭 구경하기 바라며, 안면도에 못 가더라도 이 나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서울대학교 부속 관악수목원 안에 학술연구용으로 심어놓은 모감주나무를 구경하기 바란다. 강원도 평창의 강송림 봉평 진미식당의 막국수 소풍가는 날이면 꼭 비가 온다는 말이 있다. 출발하는 날인데 얄궂게 비가 내렸다. 밤길에 야간운전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좀 더 일찍 출발 할 수도 있었는데 '국유림경영현대화산학협동실현연구' 팀의 회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지체되었다. 그 다음날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의 주왕산에서 현장보고회가 있는 날이었다. 국유림경영현대화산학협동실현연구. 무척 긴 이름의 연구사업이다. 우리 나라 산림을 자원화시키고 경영을 합리적으로 하기 위한 최대의 산학협동 연구과제다. 나무가 나라 어른이 되는 데도 짧아도 30년이 걸리고, 독일의 경우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0년 이하로는 보지 않는다. 그런데 임학분야에서의 연구사업들은 일반 연구영역과 마찬가지로 대개 몇 년 이내의 단기적인 결과를 요구한다. 특히 과학재단이나 학술진흥재단과 같은 지원단체의 지원을 받는 연구사업은 길어야 3년이다. 그결과에 대한 적용 실효성이 연구를 수행한 사람에게도 불투명해 보인다. 검증할 시간이 없으니까. 이렇게 볼 때 국유림경영현대화산학협동실현연구는 최장기 연구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산림청에서 발주한 것으로 임업분야의 학자들이 팀을 구성해 1990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강원도 평창군 일대의 국유림을 대상으로 합리적인 경영안을 모색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지금(이 글을 쓴 당시)이 1994년이니 벌써 실행한지 5년이 경과한 셈이다. 이때까지의 연구결과와 앞으로의 방향을 학계의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을 모아 현장에서 보고하는 회의가 다음날 열리는 것이다. 차 세 대에 나누어 타고 연구팀장이 탄 지프차가 길을 안내했다. 만일을 대비해 중간지점인 소사 휴게소에서 일차적으로 만나기로 하고 출발했다. 내가 탄 차는 혼잡이 예상되는 영동고속도로를 피해 42번 국도를 이용했다. 2차선의 고속도로, 주말이면 지옥 같은 도로이다. 지금은 원주까지 4차선 확장공사가 마무리되어 있지만, 비가 오는 밤 국도 운전이라 조금 긴장되었다. 더구나 일행과 어긋나지 않아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국도 여행이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다고 하지만 사실 국도 여행은 아주 위험하다. 주간에는 여유있는 시골 양반들이 차를 무시한 채 느긋하게 길을 건너는가 하면 수시로 자전거나 수레, 경운기 등이 찻길을 지나가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야간의 장애물은 역시 보이지 않는 차선과 안내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야간의 국도 운전을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국도변은 항상 꽃이 피어 있는 꽃길이다. 밤에 길 양쪽에 서 있는 굵고 검은 기둥 터널을 뚫고 가노라면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드는 듯하다. 그래서 국도의 야간 운전은 혼자하기 힘들다.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아무튼, 차에는 운전하는 학생을 포함해 네 명이 탔는데, 수다떨기 좋아하는 내가 한 후배녀석과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통에 운전하는 사람이 웃느라 좀 쉴 틈이 없었을 것이다. 소사휴게소를 가기 위해서는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데 어두운 국도라 안내판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제대로 안 보이는 국도라는데. 어찌어찌하여 양지교차로를 지나 고속도로를 진입했다. 소사휴게소에 도착하니 다른 일행이 먼저 와서 이미 따끈한 차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들 걱정했나보다. 커피를 마시고 약간 먹을 거리를 장만해 차에 올랐다. 다음의 집결지는 평창 대화면의 숙소. 고속도로를 타는 동안 조금 잠잠해졌다. 피곤한 듯 목이 아프고 해발이 높아질수록 귓속도 멍멍해졌다. 한 30분쯤 가다보니 장평이라는 안내판이 나타났다. 삼거리인지 사거리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31번 국도를 탔다. 고속도로와 31번 국도 사이에 난 길은 봉평 가는 길이다. 가산 이효석의 ' 메밀꽃 필 무렵' 으로 유명한 봉평. 대화장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장사꾼들이 얼큰하게 한 잔하고 차가 끊어진 길을 다음날 봉평장에 당도하기 위해 밤길을 걸었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얗게 피어 있는 메밀밭. 이효석 문학비가 세워져 있고, 이효석의 문학공원이 있고, 이효석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해마다 축제가 열리는 봉평. 별 볼 일 없는 시골의 평범한 마을이 한 사람으로 인해 문학마을로 자리매김되었다. 메밀로 유명하니 빠질 수 없는 것이 메밀로 만든 막국수다. 육수에 김을 잔뜩 넣고 참기름과 설탕, 사람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친 국물에 거뭇거뭇한 국숫가락이 담겨 있는 메밀 막국수. 시간이 너무 늦어 막국수를 먹기는 틀려버렸다. 31번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대화면이 나온다. 우리는 대화면에 예약되어 있는 여관을 찾아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올라갔다. 여관에 도착하니 대화면 평창관리소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방을 배정받고 우선 짐을 풀었다.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는 모두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소중한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조금 구석진 방으로 학생들을 모았다. 결국 교수님들만 빠지고 나머지 일행들이 모였다. 주머니를 털어 술과 안주를 마련하니 제법 그럴싸했다. 서로 술잔을 권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놓았다. 뭐니뭐니해도 앞으로 나아갈 길에 관심이 제일 많았다. 모두들 피곤했고 늦은 밤이었지만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마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이 분야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래도 당장 내일부터 잘 해야 하니까 그만 자리를 정리하고 새벽 2시경 각자 돌아가 잠을 청했다. 방에 누우니 천장이 빙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비비고 부랴부랴 나갈 채비를 했다. 바깥으로 나가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푸석푸석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아침을 먹을 만한 곳이 있을까 의심스러웠는데 관리소 직원식당에 아침이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침을 먹어야 한다. 산은 때에 따라서 아주 위험할 수가 있다. 행여 아침식사를 걸러 기운이 없으면 발을 잘못 짚었다가 큰일을 당할 수도 있다. 아침을 먹고 관리소 앞마당에 모여 오늘의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받는 동안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제법 많았다. 간단히 소개와 설명을 끝내고 준비한 차에 나눠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하얀미리라는 곳에서 시작하는 임도를 타고 가리왕산에 올랐다. 임도란 산림 내에 설치된 길로 국가로 치면 산업도로인데, 산에서 작업하는 차들이 들어가고 임업기계가 이동하고 각종 작업물을 운반하는 길이다. 임도의 설치가 산림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은 임업의 기본 시설로 단위면적당 임도의 길이가 임업 선진화의 척도가 된다. 임도의 건설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을 바탕으로 건설된다. 산림공학적 측면, 생태적 측면, 경관적 측면, 토목학적 측면 등 임업의 모든 기술이 다 적용된다. 산중턱쯤 올라가니 쭉쭉 뻗은 소나무가 일제히 사람들을 반겼다. 붉은 수피에 우산처럼 받쳐선 수관이 진정 우리 나라 산인가 싶었다. 금강송, 적송 중에서 유난히 줄기가 곧고 재질이 좋은 강송이었다. 카메라 안에 도저히 채워지지 않았다. 4년 전에 한 번 보았지만 다시 보니 더욱 자랑스러웠다. 키 20cm 이상, 둘레 1m 이상 되는 그 곧고 바른 모습. 바로 우리 조상들의 가슴 속에 있는 소나무들이었다. 차에서 내려 설명회를 가졌다. 질문과 대답이 오고갔다. 잠시 눈을 돌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저멀리 봉우리가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그때가 11월 23일이었으니 첫눈이 온 지도 한참 되었다. 꼭대기에는 흰눈이 쌓여 있고 중턱 아래로는 만 가지 나무가 형형색색의 붉은 빛이었다. 다들 탄성을 지르며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다음 행선지로 가던 도중, 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오두막집이 나왔다. 강원도에서 나는 나무를 그대로 이용해 만든 통나무집이었다. 흰눈으로 둘러싸인 통나무집과 굴뚝의 연기. 즐겁고 신이 나 어쩔줄을 몰라했다. 처마에는 긴 고드름이 수정처럼 달려 있었다.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빨리 올라오라고 재촉해서 어쩔 수 없었다. 계속 산으로 올라가니 온 산이 뼈대로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들만 하얀 눈발 위에 서 있었다. 산림풍치론을 전공하는 사람이 우리 나라의 산세는 정말 아름답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굳이 산림풍치론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너무 근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현장은 기계화 작업을 시험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름도 어려운 기계들이 전문 숙련공들에 의해 움직이고 집채 만한 나무 기둥을 끌어오고 끌어내렸다. 산 위는 겨울이지만 인부의 얼굴에는 땀이 솟구치고 있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숙소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마당에서는 바비큐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을 것을 후회하며 신선한 돼지고기를 불에 구워 겨우겨우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나니 마지막으로 커피가 나왔다. 어느 나라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푸지게 먹고 다시 자리를 절리하고 토론회로 들어갔다. 사람들마다, 학자마다 견해가 다 달랐다. 실질적으로 이 연구사업을 수행하는 팀이 잘 소화내겠지만 그 토론에서는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의장이 대충 의견을 정리하고 좌중을 진정시켜 마무리를 했다. 현장보고회를 준비한 쪽에서는 어쨌든 성과가 클 것이었다. 모두들 헤어지기 아쉬운 듯 인사들을 나누고 타고 왔던 차에 올랐다. 일부는 나름대로 모임을 갖기도 하고 다음 약속을 정하기도 하며 각자 갈 길로 차를 돌렸다. 우리가 탄 차는 수원을 향해 바로 고속도로를 탔다. 배를 불러 결국 봉평의 막국수는 맛보지 못했다. 가리왕산의 강송림 하안미리에서 임도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특히 여성에게 좋다는 당귀밭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산에서 조사를 하다 운좋게 산에서 자라는 당귀를 발견하면 이를 따서 깨끗이 씻어 밥할 때 쌀 위에 얹어 쪄내면 밥을 쌈 싸먹으며 박하향 같은 향기가 입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지속되어 하루종일 산행이 상쾌하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농업이나 산채, 약초 등의 산림부산물을 채집해 큰 재미를 보고 있다. 가리왕산에는 참나물, 곰취, 산작약, 당귀, 산마늘, 더덕 등의 산채와 약초가 많이 나는데 이들의 채취 시기인 봄에 조사를 하기 위해 가리왕산 내의 숙소에서 밤을 지내다보면 산채를 채집하러 왔다가 밤에 돌아가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같이 밤을 지내는 일이 종종 있다. 산에서 나는 부산물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과다하게 무한정 착취하는 것은 내일 이용할 씨마저 말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실제로 이 지역의 산채 발생량을 조사해봤더니 1994년부터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당귀 이야기를 조금만 더하고 가자. 당귀는 농가소득원으로 산촌지방에서 재배되고 있다. 그런데 당귀는 특히 꽃을 피울 때 대부분의 에너지를 투자하기 때문에 재배할 때 꽃이 핀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한다. 즉 성공의 관건은 꽃이 피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산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당귀를 채집하여 재배하게 되면 바로 다음 세대는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그 다음부터는 대개 꽃을 피운다. 야생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곳곳에서 화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974년 화전 정리 후 화전민은 없어지고, 화전으로 이용되던 땅에는 낙엽송등이 인공조립되었으나 일부지역은 그대로 방치하여 어린 활엽수림이 남아 있다. 이곳을 조금만 올라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홍보사진에서나 보았던 강송림이다. 평균 나이 53세, 평균 흉고직경 30cm 이상의 소나무들이 20cm 이상 하늘을 향해 찌를 듯이 서 있는 모습을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지경이다. 아름다운 숲이라기보다는 위용과 권위가 압도하는 숲이다. 그러면서 숲은 여전히 배타적이지 않고 친근하다. 이곳은 우리 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연 소나무 숲으로 헥타르당 축적이 190이나 되어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숲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강원도 소나무의 본때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강송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냥 자랑스럽기만 하다. 아래쪽엔 강송의 어린 나무들이 비교적 적고 참나무 같은 활엽수의 어린 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있어 주목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곳에도 솔잎혹파리가 들어왔다고 하니 우리 소나무의 무사를 기원할 뿐이다. 천연 식물박람회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빽빽한 낙엽송 인공조림지가 줄지어 나타나고 송림도 보인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가리왕산의 아담한 산세가 아기자기하게 바뀐다. 어디에서 보아도 험하지 않으면서 싫증나지 않고 정겹다. 한편 임도 주위나 임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야생화를 계절별로 즐길 수 있다. 이른 봄이면 계곡의 얼음 틈으로 노란 복수초가 조심스레 피어오른다. 눈 속에서 노오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복수초는 달력의 1, 2월을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복수초란 말 그대로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꽃으로 일본에서는 연말 연시나 생일, 결혼기념일 등에는 복수초를 선물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복수초가 다양하게 개량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의 자생 복수초에 비하면 아름다움이 떨어져 호시탐탐 우리 것을 노린다고 한다. 또한 보라색의 점무늬 얼레지가 고개를 숙인 채 피어 있고, 하얀 바람꽃도 몰래 숨어 핀다. 여름이면 붉은 동자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모데미풀, 연령초, 개불란 등이 사람의 손길을 피해 몰래 숨어 피고, 가을이면 투구꽃이나 초롱꽃, 방울꽃이 피어난다. 부디 이 아름다운 꽃들을 뿌리채 뽑아가거나 다치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산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면 천연적으로 자라고 있는 참나무류나 물푸레나무, 둘레나무, 느릅나무, 고로쇠나무, 거제수나무, 음나무, 팥배나무 등이 울창하게 퍼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의 모습이 어떤 질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섞여 있는 듯하지만 구분된 영역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계곡 주위를 따라서는 수액 채취로 알려진 고로쇠나무,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의 사촌인 들메나무, 음나무가 자라고 있다. 음나무는 봄에 나는 그 고운 순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맛이 아주 기막히고 이곳에서 나는 음나무 한 그루에서만도 몇 십만원 어치의 음나무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관리소직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무이기도 하다. 음나무의 학명은 칼로파낙스속인데 파낙스속은 인삼속이니 인삼 비슷한 무엇이 있일지도 모르겠다. 실제 이들은 같은 과에 속하는 식물들이다. 봄에 순을 데쳐먹은 나물로 두릅이 우리에게 익숙한데 강원도 주민들은 이 음나무 순을 개두릅 순이라 하고 오히려 두릅보다 더 맛있는 것으로 친다. 맛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은 아마 음나무 순을 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음나무에는 순을 지키려는 듯 사나운 가시들이 돋아 있다. 그러나 아주 오래된 나무는 오히려 가시가 없다. 나는 그런 오래된 음나무를 창경궁 뒤뜰 언덕에 있는 것말고 산에서는 처음 보았다. 음나무의 뿌리는 상당히 많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뿌리를 캐 뒤집어 들면 꼬로록 하고 물 흐르는 소리가 날 정도다. 들메나무는 전국의 산야에서 자란다. 특히 계곡이나 낮은 땅에서 잘 자라는데 물푸레나무보다 더 높이 자란다. 임도 주위를 따라 굵고 키 큰 들메나무들이 세로로 촘촘히 흠이 패인 수피를 입고 늠름하게 서 있다. 들메나무의 수피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값비싼 약재로 이용되는데 껍질에는 쓴맛을 내는 프락신, 탄닌 등이 함유되어 강장제, 수렴제 효과가 있다고 한다. 들메나무의 잎도 발한제, 이뇨제, 통풍, 수종, 비만 치료에 효과가 있어 매일 아침 잎차를 마시면 좋다고 한다. 계곡 위 사면을 따라서는 거제수나무, 층층나무, 팔배나무 등이 자란다. 거제수나무는 자작나무, 박달나무의 사촌으로 고로쇠나무처럼 수액을 채취하여 음료하는 것으로 한 그루당 십만 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거제수나무의 잎은 흔히 우리가 나뭇잎이라고 그리는 잎의 전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배열된 선명한 엽맥, 율동감 있게 반복되는 잎 가장자리의 톱니, 길지도 짧지도 않고 반듯한 입자루 등 모든 활엽수 잎의 표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거제수라는 의미는 재앙을 거두어가는 나무라는 뜻이다. 거제수는 이른 봄에 일찍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아직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 나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나무는 흙 속의 수분을 모으기 시작한다. 곡우가 되면 수액의 양이 많아지고 칼로 상처를 내면 수액이 줄줄 흐른다. 곡우 때 이 수액을 마시면 일년 내내 재앙을 물리친다는 풍속이 있다. 그런데 이 거제수나무는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음지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산불이 나거나 숲이 개발된 후 바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거제수나무다. 원칙대로라면 이러한 나무는 숲의 나이가 오래된 곳에서는 다른 나무들이 빛을 차단해 사라지는데 이곳에서는 아주 많이 자라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켜보는 것도 귀중한 식물학적 자료가 될 것이다. 층층나무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층층나무는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산에서 볼 수 있는데 봄이면 하얀 꽃들이 만발해 멀리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넓게 퍼진 줄기들이 층층으로 뻗어 있어 단번에 층층나무임을 알게 된다. 이 나무는 미국 어느 주의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는데 미국에서는 층층나무의 일반명은 도그우드(dog wood)이다. 우리 나라 대통령 부부가 이속을 방문했을 때 한창 층층나무 가로수가 꽃잎을 피워대고 있을 때였다. 영부인이 깊은 인상을 받고 이 나무를 우리 나라에 심기 위해 수행원에게 나무의 이름을 알아오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영부인은 우리 나라에도 '개나무'를 가로수로 심으면 제안을 해왔고 수행원들은 이 나무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알고 보니 바로 층층나무였다는 웃지 못할 얘기이다. 이 나무는 꽃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물도 아주 많이 나온다. 팔배나무는 열매가 마치 팥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팔매나무는 잎이 넓고 둥글며 봄에 흰 꽃이 일찍 피는데 하나의 꽃대에 작은 꽃대가 여러 개 달려 있다. 가을이면 팥과 비슷하며 콩알 만한 열매가 붉게 익는다. 붉은 열매다발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보통은 남산이나 북한산 등에서 흔히 보았던 작은 키의 관목형 팥매만 알고 있어서 이곳의 팥매나무를 본다면 바로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곳의 팥매나무의 열매는 새들이 아주 좋아한다. 따라서 새들에 의한 전파가 아주 활발한 수종 중의 하나이다. 팥매나무를 마치 별 쓸모없는 관목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을 간혹 발견할 수 있는데 사실은 아주 좋은 나무다. 산 능선에 신갈나무가 많이 자란다는 것은 많은 생태학적 의미를 함축한다. 현재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산림에는 신갈나무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일부 학자들은 신갈나무를 천이의 극상수종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것은 자연적인 천이 극상수종이라기보다는 교란에 적응한 일시적인 극상수종이라고 한다. 산 능선은 햇빛이 잘 들어 숲바닥의 온도가 높아져 미생물의 활동이 왕성해지고 낙엽 등의 물질이 분해가 빨리 되어 소나무 숲에 비해 낙엽층이 얇다. 이것은 산불이 나도 태울 수 있는 연료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산불에 의한 피해가 신갈나무 숲에는 적은 것이다. 신갈나무의 도토리는 다람쥐는 물론이고 특히 반달곰의 양식이 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반달곰이 서너 마리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어디선가 신갈나무 도토리를 먹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분별한 욕심으로 이들의 양식마저 거두어가버린 황량한 겨울, 먹이를 찾아 능선을 헤매는 반달곰을 상상해보라. 이 신갈나무 아래 하층으로는 진홍색의 아주 아름다운 단풍색을 가진 당단풍이 자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갈나무와 당단풍은 단짝처럼 붙어다닌다. 임도를 장전리 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면 하얀미리의 반대쪽으로 내려온다. 장전리 입구는 아름다운 계곡이 발달해 해마다 여름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다. 비교적 가파른 임도 양가의 한쪽으로는 활엽수림이, 다른 한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발달해 있다. 길이 내려오면 장전리에서 수항리까지 오대천을 따라 멋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이 길은 곧장 진부로 이어지니 진부에서 산채정식을 먹으면 깔끔하게 여정을 마무리 될 것이다. 가리왕산에 잘 닦여진 임도는 최근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평창관리소 직원에게는 골칫거리다. 가리왕산은 2차 천연림이 잘 발달해 있는데 얼마전만 하더라도 곳곳에 일차림 때부터 남아 있던 좋은 나무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는데 대부분 도벌되어 이제는 거의 고목을 발견할 수 없다. 특히 몇백 년된 주목이나 우리 나라에서는 드물게 크게 자란 음나무의 밑둥이 잘려진 채로 발견되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굳이 도벌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을 기술하는 것은 소극적인 보존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양식에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곳은 국유림 지역으로 산불예방기간에는 입산이 금지되는 곳이니 가리왕산의 강송림을 모고 싶을 때는 평창관리소의 허락을 받는게 좋겠다. 자녀와 더불어 구경할 때 그렇게 하면 국토에 대한 절제력과 책임감을 함께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울진군 소광리의 강송림 품질 보증 수표, 춘양목 경북 봉화군이나 울진군을 여행하다 보면 시원스레 뻗어 있는 소나무를 보고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한다. 강원도 평창에서 살펴본 소나무같이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소나무들도 우리가 야산에서 흔히 보는 줄기가 굽고 왜소한 소나무와는 형질 자체가 다르다. 일제 시대 때 우리 나라 식물을 연구한 학자로는 나카이 교수와 우키 박사 등 일본 식물학자가 대표적이다. 나카이 교수는 식물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친숙한 학자로 우리 나라의 식물을 동정해 이름을 지으면서 명명자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 많다. 주목의 사촌으로 울릉도에 자라는 회솔나무의 학명은 Taxus cuspidata var.latifolia Nakai로 그의 이름이 명명자이다. 또한 그는 우리 나라 식물을 아주 자세히 조사해 {조선삼림식물}을 편찬했다. 오늘날의 오리 나라 식물학 분야의 업적이 아직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에키 박사는 특히 우리 나라 소나무형 연구에 지대한 업적을 쌓았다. 그는 우리 나라의 소나무를 여섯 가지 형으로 나누어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와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소나무를 금강형이라 하였다. 금강형의 가장 큰 특징은 수간이 곧게 빨리 자라고 재질이 좋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지역이 조선시대 황장봉산으로 봉해졌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후 이 지역의 소나무를 금강송, 금강소나무, 강송 또는 춘양목이라 불렀다. 춘양이라는 이름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이라는 지역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춘양역은 태백산 일대의 임산물과 광산물의 수송을 위해 1955년 7월에 개통된 곳으로 봉화, 울진 삼척 등지의 목재를 모아 서울 등 대도시로 수송했다. 이 일대의 소나무는 금강형 소나무들로 재질과 형태가 우수해 춘양역에서 운송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품질 보증수표인 셈이었다. 춘양목이란 곧 이 춘양역에서 실려온 좋은 나무란 의미다. 이 역이 개통된 후 1970년 말까지는 이 지역으로 실려와 수송을 기다리는 소나무가 산처럼 쌓였는데 1980년대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이제는 집재원목을 볼 수 없다. 불영 계곡에 비친 소나무 울진군 소광리에 이르는 길은 크게 내륙형과 해안형이 있다. 둘 다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니 좋아하는 길을 택하면 된다. 우선 내륙형은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이천까지 와서 3번 국도를 타거나, 4번 국도를 타고 오다 이천에서 3번 국도로 들어서 단양까지 계속 내려온다. 단양에서 합쳐지는 5번 국도를 타고 소백산의 죽령을 넘는다. 죽령을 넘어가면서 소백산 자락을 잠시 훔쳐보는 즐거움으로 덤으로 얻을 것이다. 죽령을 넘어 사과로 유명한 풍기를 지나 영주에서 36번을 타고 노루재를 넘어 현동을 지나 봉화로 간다. 36번 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좌측으로 소광리로 가는 길이 나타나고 작은 비포장 도로로 접어든다. 내륙형의 중심은 바로 소백산 죽령이다. 소광리는 불영계곡의 근원인 소광천을 끼고 있는, 물이 아주 좋은 산골마을이다. 1968년 울산 공비가 이곳으로 침투한 후 정부는 이 일대에 흩어져 있던 화전민들을 모아 소광리에 인위적인 화전마을을 만들었다. 그후 화전민은 모두 흩어지고 화전을 멈춘 밭에 이곳의 토착 식물인 소나무 종자들이 온통 날아 들어 새로운 소나무 숲을 이룬 것이다. 불영계곡 주위의 소나무 숲을 올라가보면 대개 화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해안형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으로 가서 강릉에서 동해를 지나 울진으로 내려오고 울진 조금 밑에 있는 수산리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불영계곡을 끼고 들어와 소광리로 들어오면 된다. 양 방향이 중복되지 않고 소광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소광리에 이르는 일대는 상당히 볼거리가 많아 시간을 넉넉히 잡고 들어가면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소광리에서 나와 불영계곡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바로 불영사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 불영사 경내의 소나무도 볼거리다. 오래된 소나무들이 둘러서 있고 절 뒤로는 또한 참나무 숲이 포진하고 있다. 불영계곡은 저네가 가파른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으로, 맑고 깨끗한 물로 인해 여름철 피서객에 의한 고충 감수해야 한다. 불영계곡 주위로 불안하게 서 있는 싱싱한 소나무들이 계곡물에 비치면 물에서조차 솔향이 나는 것 같다. 이 일대의 소나무들은 울진관리소에서 소나무 하나하나마다 표찰을 붙여 관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람보다 더한 대접을 받는다. 불영계곡을 따라 동해쪽으로 오다 보면 계곡이 끝나는 곳쯤 수산리가 있고 거기엔 왕피천이라는 내가 흐른다. 이곳은 연어가 올라올 만큼 물이 깨끗하다고 한다. 연어들이 물을 거슬러올라오는 목적은 오로지 알을 낳기 위한 것이다. 이때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미끼낚시에는 걸려들지 않는다. 하지만 던지는 닐 낚시에 가끔씩 큰 연어가 올라오기도 한다. 왕피천이 흐르고 있는 마을 뒤 언덕에는 천연기념물 제 96호로 지정된 굴참나무가 있다. 수세에 몰린 어느 왕이 이 나무 밑에서 피신했다고 해서 왕피천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또한 칠성장어가 올라오는데 역시 산란을 하기 위해서이다. 몸무게 100kg 이상 되는 장정이 물이 떨어지는 암벽을 짚고 서 있으면 칠성장어가 튀어 올라와 사람에게 빨판으로 흡착한다고 한다. 이때 칠성장어를 빨리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뺀 가운데 세 개의 손가락으로 교차하여 잡아 힘차게 낚아올리는 것이다. 굴참나무는 참나무류의 하나로 수피에 푹신푹신한 스펀지 같은 코르크 조직이 발달해 코르크 마개의 원료나 술을 발효시키는 술통의 원료로 이용된다. 굴참나무는 같은 참나무류인 상수리나무와 잎의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일반인이 한눈에 봐서는 바로 구별하기가 힘들지만 한 가지 아주 뚜렷한 방법은 잎의 뒷면을 서로 비교하는 것이다. 상수리나무는 잎의 앞, 뒤가 모두 비슷한 연녹색을 띠고 있는 반면 굴참나무는 잎의 뒷면에는 하얀 털이 밀생하고 있어 은회색을 띤다. 일반적으로 상수리나무는 지대가 낮은 곳에 나타나고, 굴참나무는 상수리나무보다 높은 곳에서 나타난다.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연속적으로 자라거나 섞여 자랄 때 보통은 구별이 힘들지만 바람이 불어 잎이 흔들릴 때는 굴참나무의 잎 뒷면이 희끗희끗 빛나 금방 구별할 수 있다. 특히 상수리나무 숲 위에 굴참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을 때 연출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연초록의 잎이 아래서 찰랑거리고 은희색의 잎들이 햇빛을 받아 그 위로 반짝거리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큰 굴참나무는 거의 없다. 불영계곡에서는 조금 멀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석류굴을 한번 보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수산리까지 나와 울진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덕구온천이 있다. 이곳은 우리 나라 유일의 노천온천이었는데 지금은 폐쇄되고 그 온천물을 끌어다 실내온천장을 만들어 놓았다. 여정의 마지막을 온천에서 풀고 동해를 거슬러올라가 강릉을 통해 서울로 오는 것도 조금은 피곤하지만 색다른 여정이 될 것이다.
소광리의 강송림 소광천. 작은빛내. 아주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것은 대광천, 큰빛내의 지류이다. 이 일대의 강송 보호림 아래로 흐르고 있는 것이 큰빛내고 왼쪽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작은빛내다. 울창한 솔잎 틈 사이로 아주 작은 빛들이 떨어져 내려 작은빛내라고 했을까. 소광리로 들어가는 임도는 불영계곡의 상류를 따라 난 험하고 구불구불한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임도로서보다 이 지역 주민에게 일반도로로서 더욱 중요하다. 봉화에서 석포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는데 이 길로 가면 곧장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덕구온천까지 이어진 듯하다. 사실 울진, 봉화 일대는 소광이와 같은 좋은 소나무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다 베어지고 지금은 이곳만 남아 있다. 이곳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교통이 불편해서이다. 계곡을 따라 16km나 들어가야 하는 곳이니 차라리 포기하지 그 고생은 하기 싫었던 것이다. 결국 1,600ha의 이 소광리 강송림은 보호지구로 지정되어 영구적인 보호의 그늘로 들어왔다. 이곳 소광리에는 최고 500년이나 된 것부터 최근에 발아해서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자라고 있지만 대경목 가운데에는 200살짜리 소나무가 제일 많다. 폭설 때문에 쓰러진 소나무 줄기를 잘라 나이테에 새겨진 역사를 읽어보니 이 지역은 산불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났던 지역으로 길게는 48년부터 짧게는 6년 주기로 산불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숲의 자연스런 동반자, 산불 보통의 산림은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한다. 사람이 고의나 실수로 불을 내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산불이 발생하는데 대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실제 기온이 낮고 땅이 얼어 있는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같은 툰드라 지역은 산불이 발생해야 비로소 임상(林床)에 쌓여 있는 두터운 낙엽층이 타면서 분해되어 토양에 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 북부 캐나다와 알래스카의 북방침엽수림은 일반적으로 70년에서 100년마다 자연적인 산불이 발생하고, 관목림은 20∼40년 주기로, 풀이 자라는 초원지대는 약 4∼10년 주기로 산불이 발생한다. 캐나다 서부의 방크스라는 소나무 숲은 산불 발생주기가 25년 정도인데 방크스 소나무는 종자가 발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불이 필요하다. 소나무 종자가 발아하기 위해서는 솔방울이 터지고 그 속의 종자가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방크스 소나무의 경우 산불 같은 고온에서만 솔방울이 터지는 것이다. 잎의 길이가 20∼30cm정도 되는 대왕송이라는 소나무는 발아 후 얼마간은 풀처럼 생장을 하는데 이때는 산불로부터 긴 잎들이 정아를 보호하고 뿌리 속에 탄수화물을 다량 저장하여 산불에 대비한다. 몇 년이 산불 없이 지나면 곧 나무와 같은 생장형태를 보이는데, 뿌리에 저장한 탄수화물을 이용해 급속한 높이 생장을 하여 산불이 났을 경우에도 그 피해를 덜 받게 된다. 이밖에도 나무 하나하나 혹은 숲의 생태가 산불에 대비하거나 적응하는 방법들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는 산불이 자연적인 현상임을 암시한다. 활엽수는 침엽수에 비해 산불 발생 횟수가 적은데 우리 나라 같은 온대 활엽수림은 심지어 1,000년 이상의 주기를 갖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자연적인 산불은 익숙하지가 않다. 소광리가 오랫동안 소나무 숲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산불에 있다. 우리 나라의 자연적인 소나무 숲은 보통 신갈나무나 서어나무, 까치박달 같은 낙엽 활엽수로 바뀌게 되는데, 빈번한 산불은 이들의 발생과 침입을 막아줄 수 있어 여러 대의 소나무 군락이 형성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도 곳곳에 신갈나무, 층층나무, 피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 강송림으로 유지하기 위한 인위적인 간섭을 할 것인가 아니면 천연적인 발달을 도모할 것인가의 향로가 주목된다.
최고의 목재 이곳에 자라는 강송은 강원도 평창군 가리왕산의 강송과는 차이가 있다. 강원도의 강송은 70만년만 자라도 1m3의 재적(材積)이 나오나 이곳의 강송은 200년에서 300년이 되어야 같은 양의 재적이 나온다. 두곳의 소나무 재질을 살펴보면 평창군의 소나무는 나이테의 폭이 넓고 조직도 성긴 반면 소광리의 것은 나이테의 폭이 좁고 조직도 치밀하고 심재가 발달되어 있다. 심재는 나무의 목재부분 중에서도 중심부에 있는 것으로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어 수분이 없는 조직이다. 한마디로 소광리의 소나무는 조직이 단단하고 재질이 좋으며 심재의 비중이 높아 부피에 비해 가벼워 가공이 쉽고 건조해도 잘 뒤틀리지 않아 좋은 목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펄프를 만들 때나 염색, 탈색을 할 때는 오히려 나쁘다. 최근 염색 목재, 무늬목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것은 봉숭화 줄기를 분홍물감을 푼 물에 키워 분홍색으로 물든 물관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목재에 염료가 든 수분을 흡수시켜 자연적인 무늬가 물관을 따라 아름답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붉은 기둥의 육중한 몸으로 푸른 하늘을 받쳐든 채 몇백 년의 세월을 살아온 저 나무를 보면 저 바깥세상의 인간이 하는 행동이 모두 부질없어 보인다. 남의 말에 솔깃해서 더 나은 것을 찾아 동(動)하고, 가까이 하던 것을 헌 신짝 버리듯 쉽게 떨쳐버리는 것은 무슨 영화를 누리기 위함인가. 결국 저 나무가 밟고 서 있는 한 줌의 흙으로 귀의할 것을. 이것은 한낮 숲속에서의 감상이 아니라 번영과 풍요를 항해 줄달음치는 자신이 이 숲속에서는 이토록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반면 내가 평생을 뛰어도 이룰 수 없는 것을 저 나무는 세월을 엮어 하나하나의 연륜으로 이고 있으니 존중하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언젠가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모 대학 연극영화과 교수가 촬영에 필요한 장소를 알아봐달라는 것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광릉의 숲을 추천해주었는데 그곳이 이제는 알려지게 되다 보니 사람들은 덜 알려진 곳을 원했다. 별 뚜렷한 생각이 나지 않아 다른 선배에게 문의했더니 단연 소광리의 소나무 숲을 추천했다. 나중에 그 친구로부터 소식이 왔는데 문의한 교수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당연하지. 그 숲이 어떤 숲인데. 조선시대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사람의 간섭이 거부된 숲이였으니 말이다. 영주에서 봉화, 춘양을 거쳐 울진에 이르는 약 60km는 온통 소나무로 덮여 있다.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솔잎혹파리가 이곳을 점령해 온 산이 지금의 강원도처럼 붉고 군데군데 피해목들을 벌채하여 흉측스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살아남았던 소나무들이 이제는 기운을 회복해 다시 푸르름을 찾고 새로 심겨진 후계자들이 또한 그 자리를 이어가고 있으니 얼마 후면 예전의 그 빛나는 영광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광릉 수목원 광릉 임업시험장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복잡한 서울 북쪽을 빠져나와 한참을 달려 광릉에서 내렸다. 버스를 먼저 보내고 길을 건너 광릉 수목원으로 들어가는 몇 킬로미터의 길을 걸어갈까 하다가 수목원 안에서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택시를 타는 게 나을 듯하여 같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과 의기투합해 일행인 양 태연히 택시를 탔다. 하지만 택시가 많이 다니지 않아 그냥 걷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기야 하루에 몇 번은 수목원 입구를 바로 지나가는 버스가 있다는데 미리 시간을 맞추는 수고를 했더라면 이런 구차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부터 수목원에 이르는 길은 정말 근사하다. 세조때 심은 울창한 전나무가 아스팔트 길 가운데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은 TV 화면에서 자주 내보내는 풍경이다. 이것 역시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가로수와 더불어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래된 가로수의 하나일 것이다. 애초에 이 길을 닦을 때 이 전나무들을 다 베어내려 했는데 다행히도 식견있는 사람들에 의해 구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를 피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나무들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굽이굽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양쪽의 숲 또한 이곳이 여느 곳과 다른 멋을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광릉. 사실 광릉은 단순한 동네 이름이 아니다. 정릉, 선릉, 홍릉과 함께 조선시대 왕실의 무덤이다. 광릉은 조선 제 7대 임금인 세조의 무덤이다 세조의 득위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역사학자들에게 골치 아픈 문제겠지만, 식물을 전공하는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이다. 기록에 의하면 세조는 생전에 이곳의 지리를 보아두었다가 자신의 능지로 쓰기로 결정하고 곧 부속지 주위에 화소(火巢)라고 부르는 일종의 경계선을 설치했다. (1468년 6월) 화소란 일종의 방화선으로 폭 1.8m의 도랑을 파고 그 안쪽에 흙으로 제방을 구축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소화선으로 이용되며 동시에 지역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 뒤 조선왕조가 몰락할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경계내와 부근 도로변에 적송, 잣나무, 전나무 등을 심고 종 5품과 9품 벼슬아치를 파견해 능역 내 숲과 주변을 엄격히 관리했다. 1911년 국유 임야 구분조사 때 황실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능묘의 부속지를 제외하고는 화소구역 대부분을 갑종 요존예정임야에 편입시켜 오늘날의 광릉 입업시험림을 만들었다. 1468년부터 오늘까지 일제 수탈과 한국전쟁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아 생태계가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우리 나라 유일의 천연학술보존림인 것이다. 따라서 이 지역의 정확한 이름은 산림청 임업연구원 중부임업시험장이다. 광릉 수목원으로 더 친숙한 이유는 시험장 내 수목원을 조성하여 일반에게 공개했기 때문이다. 동서로 4km, 남북으로 8km, 총면적 2천 2백 18ha의 광릉시험장은 경기도 포천군, 남양주군, 의정부시에 걸쳐 있으며 소리봉, 물푸레봉, 죽엽산, 운악산, 천첨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산악분지형이다. 지도를 펼치고 이 지역 일대를 살펴보면 광릉 일대는 강원도와 함경도의 경계지역인 철령에서부터 시작하여 해발 1,000m 정도의 능선으로 우리 나라 중앙부를 종으로 관통하면서 경기도 광주 지방까지 형성된 광주산맥의 끝부분에 해당한다. 북쪽으로는 표고 600m의 죽엽산이 제일 높게 위치하고 서쪽으로는 제2봉인 소리봉이 위치하고 있다. 북의 죽엽산은 소나무림, 서의 소리봉은 낙엽활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전체 시험림을 왕숙천의 지류가 가로로 흐르고 있다. 광릉 시험림의 대부분은 천연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공림의 경우도 특별히 묘목을 양성하여 조림한 것이 아니고 주위에 천연적으로 자라고 있는 잣나무나 소나무, 전나무 등을 이식하여 조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도시에서 숲을 가꾸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기술 중의 하나다. 도시의 숲을 가꾸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자연적으로 그 지역에 자라는 나무들을 이용하여 생태계의 연속성을 유지해주고 도시민에게 친근감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조성된 도시림이나 공원, 조경시설 등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우선 보기에 좋고 색다른 것을 중심으로 심다 보니 처음에는 뭔가 새로운 듯했지만 역시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고 정도 가지 않는다. 벌써 몇백 년 전 조상들의 지혜와 감각이 앞선 듯하다. 사실 이것도 능 주변에 국한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의 자연지역은 엄격한 보호관리 아래 오늘날의 천연적인 자연숲으로 유지시켰다. 광릉 시험림 전체는 전형적인 온대 중부 낙엽활엽수림을 이루는 지역으로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의 침엽수와 참나무류, 서어나무류, 단풍나무류, 물푸레나무류 등이 주요구성 수종이다. 이 일대의 임목축적은 천연림지역이 188m3/ha, 인공림지역이 191m3/ha으로 선림선진국 수준이다. 특히 소리봉 일대 347ha는 1913년 시험림 지정 당시부터 천연학술보존림으로 보호 관리되고 있는데, 소리봉은 해발 536m의 비교적 낮은 봉우리지만 온대 중부 낙엽수종들이 극상을 이루고 있어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극상이란 산림의 식생 발달과정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으로 우리 나라와 같은 온대지역은 서어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까치박달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주요 극상식생인데 바로 광릉의 소리봉이 이러한 수종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소리봉 일대는 또한 천연 기념물인 장수하늘소의 국내 유일한 서식처다. 광릉 시험장 내에는 광릉에만 자생하거나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특산식물이 51종이나 있다. 광릉골무꽃, 광릉요강꽃, 광릉개고사리, 광릉제비꽃, 광릉쥐오줌풀 등 그 이름들만으로도 식물자원의 보고임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새로운 식물종이나 동물종을 발견하더라도 일반에게 바로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이 알려지는 순간 벌써 사라진다고 한다. 생물 애호가나 수집가에 의해서이다.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식물자원이 풍부하고, 숲이 우거지면 그곳에 사는 동물들도 많아진다. 광릉은 그 품속에 1,600종의 동물을 품고 있다. 멧돼지와 같은 야생 동물을 시험적으로 방목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생태계가 그것을 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에 방송국에서 앞다투어 방영했던 버섯다큐멘터리에서 야광버섯이 발견된 곳도 바로 이 광릉의 숲이었다. 특수카메라에 잡힌 버섯의 찬란한 야광은 신비 그 자체였다. 광릉 시험림 내 분포하는 버섯종만도 462종이나 되는데 이는 국제 전체 1,500종의 약 30%나 되는 것이다. 광릉. 이제 웬만한 사람이면 한 번쯤은 다녀왔고, 들어보았을 지명이다. 그러나 광릉 시험림에 대한 중요한 사실과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광릉의 풍부한 생태나 유래, 그 모든 것을 알게 된다면 더 멋진 이름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식물연구의 시작 - 식물원 식물원 혹은 수목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흥미로운 곳이다.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사람들은 식물들이 갖고 있는 가치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식물에서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즉 배고플 때 먹을 수 있고, 아프거나 상처가 났을 때 의약품을 얻을 수 있고, 향료와 염료를 얻을 수 있고 또한 정원의 향기와 멋을 더해줄 꽃과 나무를 찾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16세기부터 자연과학이 발달한 유럽에서 구체화되었는데 새로운 가치가 있는 식물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다른 것과 구별하는 방법을 체계화하고, 산 채로 혹은 종자로 가져와 한 곳에 모아 번식시키거나 재배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했다. 이것이 식물원의 태동이다. 따라서 식물원의 최우선적인 가치는 귀중한 식물을 보존하고 번식시키는 자원관리 기능이다. 오늘날의 식물원은 이러한 식물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기능들을 발전시키고 있는데, 식물원이 주관하여 개최하는 난 전시회, 식물사진 전시회, 그림 전시회, 글짓기 마당, 야외 음악회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약 1,600여개의 식물원이 현재 있으며 식물원마다 조성목적과 수집되어 있는 식물들도 다양하다. 외국의 유수한 식물원 예를 들면 영국의 큐 식물원, 미국 하버드대학의 아놀드 수목원, 일본 동경대학의 부속수목원 등은 이제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최근 들어 부각되고 있는 식물원 기능 중의 하나는 교육적 기능이다. 단순히 식물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식물을 통한 자연의 이해, 다양한 형태관찰, 식물과 친해질 수 있는 지식을 가르치고, 식물의 재배관리 기술보급, 식물 그림그리기, 식물과 곤충의 관계 등에 관한 체계화된 교율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족 단위나 학교 등의 현직 교육기관에서식물원을 학습복적으로 탐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식물원에서 필기구르 들고 관람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수목원 광릉 임업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은 광릉 수목원의 요금창구이다. 들어가면 우선 낮은 아치형의 다리를 넘게 된다. 다리 아래 계곡 가에는 졸참나무와 강참나무, 단풍나무로 가득 차 있다. 가을에 이곳을 방문하면 갈색의 참나무들을 배경으로 이 다리에서 사진을 안 찍고는 지나칠 수가 없다. 다리를 넘자마자 넓은 길가로 예사롭지 않은 수풀들이 반긴다. 길좌측으로 작은 연못이 있는데 푯말에 습지원식물원이라고 쓰여 있다. EkEt한 볕을 받으며 논둑과 같은 느낌이 드는 못 주위를 한가로이 둘러본다. 노란 붓꽃과 노란 수선화의 눈부심이 떠오른다. 습지를 좋아하는 갯버들과 메타세콰이어가 멋드러지게 서 있고 부들이 쭈뼛쭈뼛 뻗어 있다. 연못 위에는 연꽃이 무리를 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나라 농촌의 논이나 연못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수생 식물인 가래나 개구리밥을 들여올 거라고 한다. 대충 돌아나와 큰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길 양족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철쭉, 영산홍을 감상하고 덩굴식물을 위한 뼈대를 갖춘 만경 식물원도 지난다. 우측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서서 달나라에서 온 계수나무의 향기를 맡으며 앞에 보이는 건물로 향한다. 계수나무를 보면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마음이 된다. 계수나무는 피자식물로서는 원시적인 형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중국, 우리 나라, 일본 등에 드물게 분포하는 동양권의 나무다. 계수나무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자웅이주의 나무다. 이른 봄 초록잎이 미처 피어오르기도 전에 붉은색의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푸른 하늘에 붉은 구름떼가 있는 듯하다. 계수나무는 비교적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한는데 정아가 잘 발달하지 못해 줄기가 자라다가 둘로 갈라지는 성질을 갖고 있다. 긴 가지에 둥그렇게 생긴 잎이 마주 달려 정겹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한쪽에 날개가 달려 있는데 이 종자는 어린 아이의 경련을 다스리는 약재로 이용된다. 광릉 수목원의 계수나무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것으로 나라 각처에 있는 계수나무는 대부분 광릉의 것을 묘목으로 키워 보급된 것들이다. 가을날 둥근 잎에 노오란 단풍이 들면 서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계수나무의 그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들으며 앞 건물로 향하면 산림박물관이다. 1,400평의 면적에 10,830점의 전시물품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 최대의 산림박물관이다. 산림자원과 기술, 산림과 인간, 한국의 임업, 세계의 임업, 한국의 자연 등 산림과 임업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분류, 동정하며 표본으로 제작하여 전시.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7년에 건립되었다. 나무 줄기가 박힌 원목길을 밟고 박물관 앞에 이르니 박물관 전면에 백제시대 벽화인 산수문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그래픽하여 음각해 놓은 게 우선 눈에 들어온다. 내부로 들어가면 한국산 목재를 이용하여 장식된 실내가 아주 고급스러우면서도 친근하다.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잡목으로 취급받는 낙엽송과 리기다 소나무의 목재를 합성수지를 이용하여 훌륭한 목재자원으로 마꾸어 박물관 내부를 꾸며 놓았다. 제 1전시실에서 제 5전시실가지 관람하는 것만도 꽤 많은 시간과 관찰력을 요구한다. 특히 수많은 곤충, 동물, 버섯의 표본은 연구하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산림박물관 옆에는 작은 온실 두 동이 서 있다. 이 온실은 우리 나라 최초로 자동 온도 및 습도 조절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온실의 지붕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힐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 당시 온실 하나에 약 2억이 들었다고 하니 이곳에 대한 투자 의욕은 단연 돋보인다. 온실 속에는 남부지역에서 살고 있는 상록활엽수들이 다투어 자라고 있다. 돈나무, 녹나무, 엽죽도, 가시나무, 참식나무 등 우리 나라 남해안의 난대림 지역이나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온실 우측으로 맹인을 위한 점자 안내가 있는 맹인식물원과 수생식물원이 있고, 산림박물관의 좌측으로는 식.약용식물원, 고산식물원이 있으며 좌측으로 계속 길을 따라가면 1920년대 일본인에 의해 심겨진 전나무림, 잣나무림 등의 인공 숲이 우뚝 서 있고 그 끝으로 소리봉으로 향하는 등산로의 출발지점이 있다. 나무의 껍질이 ㅇ에서 위로 벗겨지는 일본 전나무, 소나무, 잣나무들이 차곡차곡 들어 서 있는 숲은 그 속을 거니는 사람을 더없이 작게 만든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고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이 넉넉하고 평화롭다. 광릉 수목원이 일반에 소개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리 나라 TV광고나 드라마의 주요 촬영장소였다. 이 숲속을 거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삼림욕이다. 광릉 수목원은 1987년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수립시 산림박물관 건림을 구상하고 1984년 당시 임업시험장(현재 임업연구원)에서 광릉 수목원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내 공사에 착수해 1987년 4월 5일 식목일에 준공했다. 식물원 또는 수목원 문화가 빈약한 우리 나라에 임업 관련 전문기관에서 그나마 이러한 구상과 노력울 했다는 것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시험림 내의 천염림을 이용해 400ha의 천연 수목원을 조성하고 식물조의 특성에 따라 인위적으로 100ha의 전문수목원을 조성했다. 수목원 입구에서 산림박물관에 이르는 일대는 대부분 전문수목원으로 배치되어 있고, 전문수목원의 좌측에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의 천연수목원이 있다. 광릉 수목원에는 총 189과 2,931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광릉 수목원은 처음부터 식물원 안에 식당이나 대형매점 등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일체의 취사행위도 금지되어 어느 휴양지보다 깨끗하고 조용한 뷴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아름다운 식물과 더불어서 말이다. 야생동물원 광릉 시험림 안에는 야생동물의 보호와 관리를 위한 야생동물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야생동물의 생리.생태연구, 인공증식 및 방사, 사육기술 개발, 멸종위기종이나 희귀종의 증식을 도모하고 야생 동물원 관람자들의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과 욕구를 충족시키고 야생동물의 심리적 가치제공을 위한 전시교육 목적으로 1990년부터 연차적으로 조성했다. 현재, 꿩, 원앙 등 30종의 조류와 사슴, 멧돼지 등의 포유류 15종류의 사육장과 100ha의 방사장에서 전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 방문기념으로 강택민 총리가 김대통령에게 선물한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이 관리되고 있다. 우리 나라는 백두 대간으로 이어지는 숲이 푸르고 울창하여 일제시대까지지만 해도 서울의 남산까지 호랑이가 내려왔다고 한다. 1915년부터 1945년의 30년 일체침탈 기간 동안 민생의 안녕을 보호한다는 차우너에서 한반도의 호랑이를 포획한 숫자만도 <조선휘보>에 97마리나 된다고 나와 있다. 호랑이의 씨를 말린 셈이다.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반경 100km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국토의 개발은 이러한 백두대간의 생태계를 토막내 호랑이의 왕래가 뷸가능해졌고 결국 호랑이를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했다. 이제 곧 생태계를 연결시키는 연육교가 형성된다고 하니 이 한쌍의 호랑이가 번성해 다시 한반도에서 포효할 그날을 기다려본다. 산림욕장 광릉 삼림욕장은 1989년 우리 나라에서 처음 개장된 것이라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의 삼림욕장은 특히 침염수림뿐만 아니라 낙엽활엽수림에도 삼림욕 코스가 구성되어 있어 아기자기한 맛을 즐길 수 있다. 2km, 4km, 6km, 8km에 달하는 네 개의 코스는 삼림욕을 하는 삼람의 여건에 ㅁ게 조절할 수 있으며 곳곳에 다양한 시설의 갖춰져 있어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삼림욕장에는 수목원 입구와 도로 사이에 있다. '광릉 수목원 삼림욕장' 이라는 나무현관 옆으로 난 입구로 들어가면 우선 길 양쪽으로 아름다운 야생화들이 반긴다. 개별꽃, 벌노랑이, 줄기를 꺽으면 애기똥과 같은 누런 유액이 나오는 양귀비 산촌 애기똥풀, 동자꽃 등 작은 꽃들로 수놓아져 있는 길이다. 낙엽이 쌓인 길 가운데 간간이 보라색 용담꽃이 사람의 발길을 피해 피어 있다. 천연활엽수림을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 지점을 만난다. 바로 사림욕장의 출발점이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참나무, 가래나무, 느티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림이 이어지고 약 1 km 지점부터는 잣나무 숲이 이어받는다. 잣나무 숲을 지날 때쯤이면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숲을 만난다. 과천시의 현대미술관 조각 전시장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삼림욕을 하는 사람들의 정서의 순화와 안정을 위해 마련한 배려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조각을 둘러본다. 다시 길을 올라가면 일본잎갈나무로 숲이 바뀌면서 '시가 있는 숲'과 만난다. 일본잎갈나무 숲이 끝나는 지점에 약수터가 있고, 좀더 왼쪽으로 내려가면 2km 지점에 도달하고 길은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내려가는 길과 위로 올라가는 길로 나뉜다. 시간이 부족하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은 이곳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을 택하면 된다. 내려오는 길은 밤나무 숲과 전나무 숲이 양쪽에 펼쳐져 있으며 '독서하는 숲'이다. 위로 올라간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독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계속해서 내려오면 방크스 소나무 숲이 나타나고 이제 삼림욕의 마지막 숲인 '아쉬운 숲'과 대면한다. 이제 곧 원래 갈라졌던 길과 만나고 총 4km의 삼림욕 코스를 끝낸다. 출발 2km 지점의 분기점에서 계속 오른쪽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또 하나의 4km의 삼림욕 코스가 이어진다. 일본잎갈나무, 상수리나무가 빽빽한 숲속에 체력단련을 위한 철봉이나 매달려건너가기 등의 운동시설이 설치된 '힘 기르는 숲'도 지난다. 약수터가 있는 반환점을 돌면 이제는 다시 내려오는 길이다. '명상하는 숲'을 빠져나와 호두나무 사촌인 가래나무 숲과 잣나무 숲을 차례로 지나면서 다시 분기점에 도달한다. '독서하는 숲'에서 기다리던 사람과 함께 '아쉬운 숲'을 빠져나온다. 보통 걸음으로 평지에서는 대개 1시간에 4km를 갈 수 있지만 산에서는 시간이 두 배 정도 걸린다. 그러나 삼림욕장은 산이라고 하지만 별로 험하지 않기 때문에 평지보다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넉넉잡아 한 시간에 2km를 간다고 치면 총 8km의 길을 걷는 데 4시간이 소요된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여 광릉에 도착하고 삼림욕장을 오르기 시작해 약수터 근처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고 내려와 광릉수목원을 둘러보면 하루가 거의 꽉찰 것이다. 사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정체구간이다. 하루종일 숲을 거니느라 피곤하고 교통체증 때문에 짜증나기 십상이다. 하지만 도심 근교에 이렇게 멋진 숲과 수목원, 삼림욕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경기도 화산의 용주사와 융.건릉 수원시는 조선조 정조대왕과 관계가 깊은 곳이다. 원래의 수원은 화산 아래쪽이 중심지였는데 정조가 부왕인 장조(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을 양주 배봉산에서 현재의 화성으로 옮겨오면서 아래 있던 마을과 사람들을 수원 팔달산 아래로 이주시켜 현재의 수원이 형성되었다. 정조는 부와에 대한 효심으로 화성 천도를 계획하고 정조 18년(1794년)에 축성공사를 시작해 2년 뒤인 1796년에 준공했다. 수원성은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의 설계에 의해 축성되었는데 우리 나라 최초로 기증기의 원리가 도입되었다. 따라서 수원시는 곳곳에 이와 관련된 문화재들이 흩어져 있다. 경기도 기념물 19호인 지지대고개의 노송(老松)지대도 정조의 뜻에 따라 형성된 것이다. 현재의 지지대에서 수원 42번 국도를 따라가는 5km의 구간은 현륭원 식목관에게 내탕금 천 냥을 하사해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했던 곳으로 지금은 옆으로 쓰러질듯한 노송 몇 그루만이 버티고 있다. 수원시에서는 이 소나무들의 후계자들을 효원공원에 심어 관리하고 있다. 지지대고개에는 또한 유형문화재 23호인 지지대비(遲遲臺碑)가 있는데, 이것은 정조대왕의 효심과 유덕을 기리기 위해 1807년에 건립한 것이다. 지지대고개란 정조대왕이 형륭원에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이르러 떠나기가 아쉬워 행차를 늦추었다하여 느릴 지(遲)자를 써 이름붙인 곳이다. 화성군 탱나읍에 있는 융룽은 사도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의 능이며 건릉은 정조와 그의 왕비 효의왕후의 능으로 이 둘은 화산의 펼쳐진 자락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도로를 따라 한 고비만 넘으면 용주사라는 절이 나오는데 이 절 역시 정조대왕이 1790년에 갈양사터에 건립한 것으로 국보 120호인 범종과 천연기념물 264호인 회양목이 있으며 현재 우리 나라 조계종 제 2교구의 본사이다. 정조는 화성 천도 계획을 세우고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행된 모든 것, 성을 쌓을 때 쓴 돌 하나에서부터 공사를 한 사람의 이름에 이르기까지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후대의 자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내보일 수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리라. 정조는 수원의 외곽으로 성을 쌓고 수도의 식수원 공급처로 일왕저수지를 팠다. 일왕저수지에는 정조가 친필로 새긴 '만석거'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수우너시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기 위한 200주년 기념사업에서 일왕저수지를 매립해 시민공원을 만들고, 남문 주위의 수로를 복개하여 수원 팔경의 하나인 화옹문을 없앨 계획이라고 한다. 누가 보아도 기념사업치고는 엉뚱한 것 같다. 상수리나무 숲 속의 두 왕릉 융.건릉과 용주사는 항상 붙어다닌다. 내가 갔을 때 용주사는 한창 은행잎으로 장관을 이룬 황금성이었고, 융.건릉은 갈색 참나무 잎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가을이었다. 융.건릉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작은 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웃너 키 큰 소나무들이 사람의 마음을 사뭇 긴장시키고 이곳이 일반 행락지가 아님을 느끼게 했다. 무거운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기울어진 붉은 기둥을 녹색 구조물이 양쪽에서 힘들게 지탱하고 있었다. 무거운 세우러이 걸려 있는 듯했다. 실제 이곳운 매우 한산했고 방문자의 대부분이 어른을 모시고 오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단위의 호젓한 무리들이었다. 화산의 송림에 송충이가 창궐하자 "이 송충이가 내 아버지의 묘를 다 망친다"고 통곡하며 정조대왕 자신이 직접 송충이를 잡아 깨물어 죽였다는 그 소나무들, 이른바 성은을 입은 소나무들이다. 아마 이 숲에서도 정조대왕이 송충이를 깨물어 죽였을 것이다. 삼각형의 소나무 숲을 지나면 양 갈래로 길이 나 있고 융릉과 건릉의 분기점을 알리는 표지가 나왔다. 오른쪽으로 난 융릉길을 택했는데 약간 내리막길이었다. 여기서 융릉까지는 약 300m 정도의 거리다. 흙길이 기분 좋았다. 간이 가게가 나오고 그 앞으로 작은 오솔길을 제외하고는 참나무들이 쭉쭉 들어서 있었다. 그 아래로 떨어진 나뭇잎들이 담요처럼 푹신하게 깔려 있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꼬마들이 발야구를 하고 있었다. 넘어져도 다칠 염려가 없었다. 바닥이 푹신하니까. 행여 성한 도토리가 있나 나뭇잎을 뒤적이는데 미처 경루잠에 들어가지 못한 독사 한 마리가 슬슬 기어나왔다. 놀고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어 간이 가게에 이야기하니 전화로 관리소 직우너에게 알렸다. 그러나 누구를 기다릴 필요도 없이 중년의 두 남자가 히죽거리며 와서는 작은 막대기 하나로 쉽게 뱀을 잡아먹어버렸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싱겁다는 듯이 돌아가고 난 뒤에야 관리소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널찍한 참나무 숲 사이를 지나 작은 돌다리를 넘어가니 심은 지 얼마 안되는 전나무가 줄서 있었다. 언제쯤 이 전나무들이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처럼 크려나. 홍살문을 지나면 넓은 잔디밭에 자리한 무덤이 나온다. 잔디밭에서 한참 뒹굴며 능 주위를 장식한 돌조각들과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잔디밭을 둘러싸고 있는 숲도 매우 아늑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분기점에 다시 섰다. 여기에서 건릉으로 가려면 이 분기점에서 약 500m 이상을 걸어가야 했다. 역시 약간의 내리막길이었다. 내려다보니 숲길이 아주 좋고 아담했다. 간간이 산책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으로는 매점이 업ㅅ어 그런지 사람들이 융룽족만 못했다. 그래도 숲은 아주 기막혔다. 쭉쭉 뻗은 참나무가 소나무로 치면 강송과 같았다. 유난히 곧고 높은 나무에 무너가가 붙어 있었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ㅅ여목이라는 철제 표찰이었다. 수형목이란 산림청 임목육종연구소에서 우수한 개체목을 선발하기 위하여 전국의 숲을 대상으로 형질이 뛰어난 나무를 선발, 지정해놓은 나무를 말한다. 수형목에서 채취된 종자는 키워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유전적 우수성울 검증하고 육성해 우량개체로 육종돠고 보급된다. 이 일대의 숲은 거의가 이처럼 뛰어난 상수리나무 숲이었다. 넓은 평지에 시원스레 서 있는 상수리나무 군락이 멋졌다. 조선시대의 임업정책은 소나무 중심이었다. 그래서 참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는 활잡목으로 취급되어계속 제거되었다. 참나무는 소나무와 달리 맹아(萌芽)라는 새로운 조직을 줄기나 뿌리에서 형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잘려진 참나무 밑둥에서 낭노 맹아들은 살아남기 위해 구불거리고 휘어지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자란다. 우리가 보아왔던 참나무들은 대개 이러한 기형적인 것들이었다. 그곳의 참나무들은 참모습을 간직한 채 미래의 훌륭한 재목감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나무마다 가슴 높이께에 있는 줄기에 상처를 안고 있었다. 요즘 도토리가 ㄱ너강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비싼 값에 팔리다 보니 이곳의 참나무들도 사람들에게 수모를 당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산 꼭대기의 참나무들도 저런 상처가 있는데 이곳이야 오죽했으랴. 가을철 전국의 산은 도토리를 줍기 위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굵은 막대기로 땅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봄이면 산나물을 채집하기 위해 일단의 사람들이 파견되고, 가을이면 도토리를 줍기 위해 또 파견된다. 사람은 자연의 강력한 교란요인이다. 자연적으로 자라고 죽는 것드로가 그 후대들을 마구 잡아가니 산속에서 순환되던 것이 산 외부로 유출되어 질서가 심하게 파괴된다. 이러한 무자비한 채집은 자원의 씨앗마저 말려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몇백 년 동안 지켜온 자원의 이용가능성이 오늘날의 무분별한 착취로 몇 년 이내에 끝장을 볼지도 모른다. 길 가장자리에 소나무가 일부 심겨져 있어 자세히 보니 잎 세 개짜리인 리기다 소나무였다. 얼마 가지 않아 없어질 운명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리기다 소나무야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무지한 사라므이 손에 의래 엉뚱한 곳에 심겨진 죄밖에 있겠는가. 무지한 사람의 손에 의해 엉뚱한 곳에 심겨진 죄밖에 없는 것을, 드문드문 오래된 적송(赤松)이 쓰러질 듯 버팀목에 기대어 있었다. 밑둥 주위 줄기에는 영양제를 놓은 자국들이 흉하게 뚫려 있었다. 계속 넓은 참나무 숲길을 지나자 건릉의 홍살문이 나타났고 넓은 무덤이 앉아 있었다. 사당 앞에 길게 깔려 있는 돌바닥에 올라서니 새삼 권력의 무게가 느껴졌다. 능 뒤로는 푸른 잣나무가 촘촘히 자라 가을에 푸른 띠를 이루고 있었다. 용주사의 늙은 회양목 차를 올라타고 왼쪽으로 다시 돌아가 한 고비쯤 넘으니 용주사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시킨 다음 길을 건너 절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들어서는 순ㄱ나 노란 별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일제히 황금빛 잎들을 너풀거리고 있었고, 이미 떨어진 잎들은 바닥에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은행을 주우려고 재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재미로 줍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정겨웠다. 은행나무는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부채 모양의 잎을 가진 은행나무는 침엽수나 활엽수가 지금의 형태로 진화되기 훨씬 이전에 전 세계의 온대림을 장악하고 있었다. 빙하시대가 도래하자 대부분의 은행나무도 양치식물이나 쇠뜨기 같은 속새와 식물들처럼 추위를 이겨네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은행나무가 살아남았다. 은행나무를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하는 것은 은행나무가 출현한 시기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빙하가 전의 모습이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오래된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에 나타난 은행나무의 모양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은행나무의 모양은 똑같다. 은행의 종피에는 심한 피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들어 있다. 잘못 만졌다가는 혹독한 고생을 한다. 이 독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옻나무 알레르기보다 심해 잘못하면 생명을 앗아가는 수도 있다. 은행나무가 오랫동안 중국과 한반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약한 냄새, 즉 피부알레르기 유발은 새나 곤충 혹은 미생물의 접근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최근에 은행잎에서 추출한 혈액순환개선 물질은 식물이 가지는 자우너적 가치발견의 도다른 쾌거로, 세계에서 우리 나라의 은행잎에서 추출한 것이 가장 질이 좋다고 한다. 짧은 막대기로 은행잎을 뒤적이며 하나 둘씩 은행잎을 줍는 모습을 보다 못한 '의혈 젊은이'가 은행이 많이 달린 나무 위로 올라가서 나무를 흔들어댔다. 후두둑 은행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몰려들었다. 뭔가 새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세워둔 것 같기도 한 돌기둥 행렬을 지나고 또 하나의 문을 지나 용주사 경내로 들어섰다. 아주 높은 돌계단을 겨우 넘어가자 대웅전이 나타났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양목을 찾기 위해 둘러보았다. 천연기념물이라 아주 거대한 것으로 상상하고 찾으면 없다. 대웅전 앞 계단 우측에 철제 안내판과 더불어 서 있는 약5m의 작고 초라한 나무가 바로 회양목이다. 융릉의 능사(陵寺)롤 용주사를 중창 할 때 정조가 기념수로 직접 심은 나무라고 하니 수령이 약 300년 정도 된다. 회양목으로서는 상당히 오래산 노거수임에 틀림없다. 공원이나 관공서의 조경에 둥글게 다듬어진 회양목에 익숙한 사람은 이렇게 보잘것없어 보이고 위약해보이는 이 어른이 무척이나 안쓰럽게 보일 것이다. 회양목은 우리 나라 특산으로 아주 이른 봄에 녹색 꽃이 핀다. 진달래나 개나리, 목련이 핏기전에 회양목은 별로 화려하진 않지만, 꽃을 아주 ㅁ낳이 피운다. 회양목 꽃이 피면 이 나무 주위에서 벌떼의 향연이 벌어진다. 작은 잎 사이로 노란 수술머리를 가진 수술과 머리가 세 갈래로 갈라진 암술이 아주 아름다운 대칭을 이루며 피어 있을 때는 그 향기가 무척이나 은근하다. 회양목은 원래 키 큰 교목으로 자라지 않아 줄기가 그리 긁지 않다. 옛부터 사람들은 회양목의 줄기로 도장을 만들어 회양목을 도장나무라 불렀다. 적당한 굵기의 줄기, 잘 갈라지지 않으면서 잘 조각되는 성질을 이용했던 것이다. 용주사 한쪽에는 모든 사찰이 다 그러하듯 약수터가 있다. 그날따라 주워온 은행들의 과육을 벗겨내느라 시멘트 바닥 여기저기에 으깨진 은행의 과육들이 냄새를 풍기며 널려 있었다. 그래도 물통을 들고 온 사람은 물을 가득가득 채워갔다.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한 모금의 물을 얻어마시고 절을 나오니 발이 제법 아파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융건릉과 용주사는 무심하게 지나치기 쉽지만 정말 호젓하고 좋은 곳이다. 유명산 자연휴양림 서울에서 구리시와 미금시를 차례로 빠져나와 시우너한 경춘가도를 달렸다. 청평댐을 지나 청평호수를 끼고 달리다 설악면으로 들어와 37번 국도를 타고 들어와 가일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유면산, 유명산 계곡, 유명산 자연 휴양림. 경기도 북부지역은 미록 크고 험준한 산은 아니지만 제법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는 산들이 많다. 중미산, 청계산, 유명산, 용문산. ㅅ나에 관심이 있거나 산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 들어봄직한 이름들이다. 이들은 모두 경기도 양평군에 퍼져 있다. 그중에서 중미산과 유명산은 자연휴양림으로 조성되어 있고 청계산도 조성하고 있다. 용문산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도 유명하고 계곡물 또한 기막히다. 최근에는 양평에서 유명산까지 37번 국도의 포장사업이 마무리되어 양평쪽으로 진입해도 된다. 서울에서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으로 와서 양평대교를 건너 옥천면쪽으로 진입한다. 옥천면에서 양평프라자쪽으로 좌회전해 37번 국도에 편승하면 중미산과 유명산을 차례로 지나게 된다. 이 길은 높은 고갯길로 길 좌우로 들어서 있는 다양한 산들과 멀리 중첩된 봉우리들이 드라이브의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우리 나라의 산은 경사가 비교적 급하고 형세가 우악스러워 남성적인 기운을 느끼게 한다. 여름에 이곳을 지날 때는 푸른 수관이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혈기왕성한 청년을 떠올리게 하더니 가을의 정취는 사뭇 여성적이었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둥글게 둥글게 물들어 있는 숲은 아주 부드러운 여성을 떠올리게 했다. 아마 겨울에는 또다시 그 우직한 골격을 드러내놓은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 유명산 계곡은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싱그러운 낙엽활엽수들도 포위된 계곡 위로 물살이 바위 위를 구르며 튕겨내는 물안개는 이 산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들었다. 계곡에 들어서서 조금만 오르면 큰 바위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기운차게 흐르고, 한낮에도 박쥐가 우글거린다는 박쥐굴과 그 옆에 있는 박쥐소 또한 볼거리다.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지닌 용소는 직경이 10m나 된다. 맑은 계곡물을 따라 오르녀 저멀리 중미산이 보이고 중미산 너머 마을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멀리 용문산이 우뚝 서 있다. 계곡 위쪽 골짜기에는 전나무와 낙엽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침엽수림이 나타난다. 정상부근은 온통 억새밭이라 가을의 경치가 일품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멀리 설악면의 능선이 둥글게 흘러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이것에서 계곡의 물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숲의 기운을 최대한 만끽하면서 삼림욕을 한다. 유명산 계곡을 끼고 약 892ha의 면적에 조성된 유명산 자연휴양림은 우리 나라 자연휴양림 제 1호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 늘어나느 사람드르이 수요에 따르기위해 중측공사를 하고 있었으니 올 여름은 더울 편리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산은 기암괴석이 있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완만하기도 하고 경사진 등산로가 교차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아 심신이 휴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1994년도 환경처(현재는 환경부로 바뀌었다.)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녹지자연도 정밀조사에서 내가 속한 조사ㅂㄴ의 대상지는 이 양평군 일대였다. 다른 지역 조사팀들이 제일 부러워하는 지역을 맡은 것이다. 이 지역은 조사지역이란 말을 쓰지 않고 '관광코스'라고 불렀다. 조사차 나는 작년에만 이 지역을 십여 차례나 다녀왔다. 한 번은 군산에 있는 조카들이 방학을 맞이해 수우너에 놀러왔다. 번잡한 공원이나 놀이동산에 갈 것 없이 조사 지역의 유명산 계곡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도시락과 장비를 챙겼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런 여행에 익숙하지 못한 조카들이 멀미를 하며 불편해했다. 잠시 차를 세워 쉰 다음 다시 유명산을 향해 지도를 읽었다. 그런데 아차,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었다. 차를 돌리자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레서 생각을 바꿔 유명산 대신 용문ㅅ나으로 향했다. 이런 옇애에 익숙ㅎ나 딸아이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용문산 입구에 도착해 뜨거운 칠우러의 햇빛이 내리쬐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이스박스와 카메라를 챙겨 용문산 안으로 들어섰다. 계곡물 소리가 시원했다. 가까운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계곡에서 물장구도 치고 맛있는 도시락도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용문산 은행나무를 구경하기 위해 올라갔다. 길은 곧고 넓었으나 포장된 길이라 역시 발이 아팠다. 약 2km정도 올라가니 절이 나타나고 이내 철제 담장이 둘러쳐진 굵은 나무기중이 보였다.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니 그제서야 은행나무의 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초점을 아무리 잘 ㅁ추어도 나무 전체를 넣을 수가 없었다. 대웅전 앞에서 합장을 하고 예배를 드린 후 다시 길을 내려왔다. 유명산 계곡 대신 그렇게 용문산 계곡에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은 다들 자느라고 멀미고 노래고 없었다. 길가에는 잘 익은 옥수수 수박, 참외를 파는 사람들이 지친 사람들을 유혹했다. 용문산을 다녀온 바로 다음 주에 여학생 한 명과 동행해 유명산을 찾았다. 공사가 한창인 임간학교 주위를 빠져나와 순환로를 따라 둘러보니 정말 아름답고 상쾌했다. 잘 뻗은 잣나무, 낙엽송이 싱그러운 내음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유명산의 일대를 이루고 있는 낙엽송(落葉松) 숲은 별 매력이 없어 보였다. 젓가락처럼 삐쩍 마른 줄기에 엉성하고 별 특징이 없는 침엽ㄷ르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핀란드나 스웨덴, 스위스와 같은 북부 우럽의 맑은 호숫가에 순 군락을 이루고 잇는 낙엽송 숲은 장관이다. 특히 낙엽송은 낙엽이 지는 침엽수라 가을에 전체적으로 어우러지는 노란 풍취는 그 어느 나무도 따라올 수 없다. 삼각형 구도의 노란 단풍 무늬가 일렁이는 모습은 정교하게 실크 스크린한 벽지를 연상시킨다. 낙엽송은 간혹 이깔나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낙엽송의 일본 이름인 익가목(益佳木)이 잘못 전해진 것이다. 낙엽송은 추운 곳에서도 잘 자라 백두산과 개마고원 일대의 낙엽송 숲은 말 그대로 푸른 나무바다다. 약 육, 칠백 년 전 백두산이 마지막으로 분출할 때 뜨거운 화산체가 백두산의 오른쪽, 즉 지도상으로 동쪽으로만 쏟아졌다. 화산 분출물질은 뜨거워 식생을 모두 파괴했는데 낙엽송은 천이의 초기에 나타나는 선구수종이라 재빨리 이 지역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낙엽송은 3,40년 정도까지는 줄기에 균열이 생겨 별 볼품이나 가치가 없어 보이나 100년 이상 지나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수피를 가진 나무가 된다. 해가 갈수록 가치와 아름다움이 더해가는 나무가 낙엽송이다. 유명산의 낙엽송 숲이 백두산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점심으로 주차장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맛있는 신채비빔밥과 된장찌개를 거뜬히 비우고 중미산으로 향했다. 방문객 관리로 바쁜 가운데 유명산 자연휴양림에 대해 친절한 설명과 귀중한 자료를 주신 관리소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청탯나 자연휴양림 청탯나 자연휴양림은 영동고속도로와 인접해 찾아가기 제일 쉬운 자연휴양림 중의 한군대다. 청탯나은 오대산, 계방산, 운두령, 홍정ㅅ나, 태기산으로 이어지는 차령산맥 줄기에서 운두령을 기점으로 남으로 불거져나온 줄기에 형성된 산이다. 하지만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려는 듯 1,000m 이상 높이 솟아올라 영동고속도로도 산을 넘지 못하고 그 속을 지나게 된다. 그것이 영동고속도로 제 1터널이다. 둔내를 지나고 영동 제 1터널을 빠져나와 조금만 더 가면 곧 휴양임 입구가 나온다. 정확히 ㅅ나길지점 128km 지점이다. 고속도로에서 바로 꺽어지면 돌이 깔린 넓은 입구가 나타나고 매표소를 지나면 옆으로 계곡이 둥근 폭포를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너른 평상이 놓여 있고 자갈로 가장자리를 다듬어놓은 물놀이터다. 그러나 여기는 물이 너무 차가워 열므에도 사람들이 ㄷ르어갈 엄두를 못 낸다. 물놀이터 위켠으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건너편에는 관리사무소가 있다. 관리사무실을 중심으로 넓은 잔디광장이 펼쳐져 있고 통나무로 지은 숙소도 세워져 있다. 잔디광장 위ㅉㅗ 소나무 숲에는 임간 수련장과 야외 강의장이 있다. 몇 해 전 '숲과 문화 연구회' 에서 주관한 '아름다운 숲 찾기 행사'가 열렸을 때 이 소나무 숲에서 야외 음악회와 문화회가 열렸다. 온 가족이 참가해 숲을 배우고, 문학을 즐기고,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숲의 혜택을 고마워하고 나무를, 숲을 사랑하려는 다짐들이 얼굴에 보였다. 이들이 일선에서 자연의 파수꾼으로 발벗고 나서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개인적으로 어떤 파괴적인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사회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생태.교실이나 자연켐프가 이런 곳에서 열린다면 그 효과는 아주 높을 것이다. 야외 강의장 뒤로는 오솔길이 나있고 군데군데 체력 단련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오솔길에는 각종 야생 풀꽃ㄷ르이 피어 있다. 길 가운데로는 밟혀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질겨이풀이 깔려 있고 길섶에는 까치수영, 둥지꽃, 꼬리조팝나무, 노루오줌, 양지꽃, 엉겅퀴 등이 으스대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길은 또한 아이들에게 훌륭한 자연관찰의 터전이 된다.. 풀잎의 이슬과 꿀을 찾아 모여든 풀벌레가 아이들을 긴장시킨다. 풀빛 여치가 우아하게 풀잎 위에 앉아 있다. 여기저기서 다람쥐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아ㅇ르은 꿀을 찾아 모여든 풀벌레가 아ㅇ르을 ㄱ니장시킨다. 풀빛 여치가 우아하게 풀잎 위에 앉아 있다. 여기저기서 다람쥐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아이들은 열심히 그 뒤를 쫓는다. 자주색 띠로 둘러싸인 연보라색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날아다니고, 멀리서 들려오는 산새 소리가 맑다. 이 오솔길을 따라 계속 ㅇ로라가면 자연휴양림 순환도로와 마주친다. 도로 위에는 통나무 산막이 있고 그 옆으로 청태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청탯나까지는 약 3 km 떨어져 있다. 청탯나은 해발 1,100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잣나무 인공림과 신갈나무 천연림이 잘 조화되어 있는 국유경영림 시범단지인데 특히 이 지역은 유명한 잣나무 조림성공지다. 잣나무가 많으니 당연히 청설모란 놈이 짙은 꼬리를 들고 이나무 저나무를 쓸고 다닐 터이다. 이 밖에도 청탯나 숲에는 노루, 멧돼지, 토끼 등 온갖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박물관에 온 느낌을 받는다. 산막에서 산으로 오르지 않고 서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제 2야영장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제 1야영장을 따라가면 제 1야영장 주위에 마련된 삼림욕장을 만난다. 소나무, 잣나무, 낙엽송과 각종 활엽수가 어우러진 삼림욕장에는 만 보 코스와 오천 보 코스가 마련되어 있어 각자 체력 조건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제 1야영장 정반 대편에 제 3야영장과 고속도로 맞은편에 오토 캠프장이 마련되어 있다. 간단한 여정, 여름에도 손이 시려운 계곡, 희끗희끗한 선을 보이는 비단 같은 잣나무 숲, 여기저기 돌아 다니는 다람쥐, 시원한 소나무 숲 안의 나무의자, 청태산 자연휴양림은 온 가족이 꼭 한 번 둘러봄직한 곳이다. 하늘이 내려준 선물-울릉도 울릉도 가는 길 울릉도를 가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구체적으로 챙겨야 할 것이 많다. 정확한 배 시간과 걸리는 시간, 어느 항구로 가야 하는지 등 미리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 울릉도 여행에서 시간을 절약한다는 것은 하루를 단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또한 경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보를 얻으려고 천리안, 하이텔의 관광안내를 열심히 검색했다. 별 신통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역시 직접하는 것이 최고야'하며, 전화기의 번호를 눌렀다. 대충 배 시간과 여건을 맞춰 보니 포항에서 쾌속선을 타는 것이 가장 나을 것 같았다. 울릉도 탐방의 목적은 연구에 필요한 식물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연구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개인적인 시간과 현지 사정을 고려할 때 제일 적당한 시기인지라 다른 연구비의 일부를 우선 할애해 다녀 오기로 했다. 채집 대상종에 대한 확신이 없어 미리 식물관련 도감들과 건조표본으로 식물의 형태와 특색을 익혔다. 채집 장비와 도감 등의 자료를 챙기고 각자 여행 채비를 해 연구실에서 모였다. 사정이 있어 못가는 사람들을 잔뜩 약올려주려고 그들의 환송을 받으며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8월의 햇볕이 뜨겁게 쏟아졌다. 일행 중 한 선배는 포항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지도 교수님과 나 그리고 후배 한 명, 이렇게 셋이 떠났다. 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으니 출발할 시각까지 한 10여분이 남았다. 교수님께서 먹을 것을 사오시겠다며 내리셨다. 그런데 출발시간이 되기도 전에 버스가 떠나려 했다. 아직 사람이 오지 않았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차가 뒤로 바지는 순간까지도 교수님은 오시지 않는 것이다. 결국 모든 짐을 내려놓고 차를 먼저 보냈다. 저쪽 승차장을 보니 교수님이 먹을 것을 잔뜩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승차장에 모여 어이없어 하며 다음 버스를 탔다. 여행에는 갖가지 일화가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의 울릉도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다시 버스에 오르니 방학도 휴가철도 끝나고 평일이라 차 안이 한산했다. 여섯 시간 이상을 달려 포항에 도착하니 사방이 어두워 앞뒤를 분간할 수 조차 없었다. 다만 비릿한 바다 냄새가 도시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선 하루 묵을 여관을 정하고 포항에서 만나기로 한 선배에게 숙소 위치와 연락처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를 했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는 마지막으로 빠뜨린 물건을 가게에서 샀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울릉도행 배표를 구입했다. 신간이 되어 지정된 좌석에 앉아 망망한 동해를 바라보았다. 배가 나아가는 모습이 아주 부드러웠다. 처음으로 밟는 울릉도 땅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자 격럴한 감동이 일었다. 이 땅을 밟고 있는 내가 괜히 자랑스러웠다. 그 비릿한 냄새, 어느 항구에서도 맡을 수 없는 싱싱한 냄새, 땅과 바다의 경계가 너무나 투명한, 그 속이 들여다보이는 바다. ㄱ나단히 점심을 먹고 숙소를 정했다.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 있었다. 짐을 풀고 한 차례 채집을 하기 위해 지도를 살펴본 후 갈 곳을 잡았다. 여관 주인에게 그 식물이 있음직한 곳을 물어보고, 가는 방법까지 확인해 길을 나섰다. 택시를 잡아타고 KBS 수신탑이 있는 곳까지 와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길가에는 동백나무가 짙은 잎을 더위에 지친 듯 달고 있었고, 섬쥐똥나무가 먼지를 누렇게 쓰고 있었다. 그곳 울릉도도 가뭄에 시달려 더덕밭이 시커멓게 ㅌ르어가고 있었다. 더덕꽃이 맥을 못 추고 겨우 달려 있었다.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길을 올라가며 우리가 표본으로 익혔던 식물이 있을까 두리번거렸지만 모두가 다 목표물인 것 같아 비슷하다 싶으면 다 챙겼다. 한 20분 가량 올라가니 큰 나무 아래 평상이 놓여 있고 몇몇 노인들이 앉아 계셨다. 마침 다리도 아프고 해서 인사를 하고 쉬면서 채집한 것을 보여주고 이름을 물어보았다. 우리가 찾는 울릉미역취를 가져다 보여주시며 울릉도의 여러 밭에서 그것을 다량으로 키우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두매부추는 있는지 물어보니 나리분지 어딘가에 아주 많다고 했다. 곤달비도 성인봉 올라가는 길섶에 흔하다고 했다. 집주인인 듯한 어른이 안주인이 산에서 캐다 마당에 심어놓은 것들을 자랑하셨다. 자랑하는 목소리가 가장 높아지는 대목은 단연 만병초를 얘기할 때였다. 진달래와 식물인 만병초(萬病草)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 온갖 병을 다 치료하는 한약재로 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도나도 만병초를 파갔다. 뭍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이 지역 사람들도 모두 하나씩은 자기 집에다 심어놓았다. 사실 울릉도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만병초같이 육지 사람들이 탐내는 것은 집에 다 확보하고 있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길을 올랐다. 비가 오지 않아 땅이 푸석푸석하였다. 간간이 사진을 찍으며 햇빛을 받고 올라가니 제법 목이 말랐다. 집이 한 채 보였고, 한 농부 아저씨가 스프링쿨러로 밭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천궁밭이라고 했다. 약방에 감초인 천궁, 그것은 일종의 감미료로 한약에 쓰인다고 한다. 시원한 물을 들이키고 채집한 식물에게도 물을 줬다. 인사를 하고는 아주머니께서 일러주신 곳으로 내려왔다. 저녁을 먹는데 울릉미역취와 곰취잎이 상추 대신 나왔다. 이것들을 채집하러 갔는데 채집은 못하고 고기를 싸먹은 것이다. 밥을 그득히 먹고는 배가 닿는 곳에 탐방조사를 하려고 가보았다.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분께 혹시 이 지역의 식물에 대해 잘 아는 분을 알고 있는지 여쭈어봤다. 나리분지 입구 마을에 사시는 분을 한명 추천해주시고 그 분의 성ㅎ마과 집까지 일러주셨다. 우리가 ㅎ나번에 사람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배를 타고 섬의 일부를 돌아보니 다음날 섬목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나왔다. 버스를 타고 저동에 가서 배를 기다렸다. 배가 도착하자 이왕이면 멋진 구경하자며 2층으로 올라갔다. 배가 출발해 그 아름다운 섬의 일부를 돌았다. 기담괴석이 절벽을 이루고 그 바위 위로 가지 굽은 향나무들이 나지막하게 자라고 있었다. 여기저기 폭포의 흔적도 보이고 물새들이 한가로이 바다 위를 노닐고 있었다. 그곳 주민들은 별 볼 일 없다는 듯 가만히 앉아, 환성을 지르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외징니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아쉽게도 30분 정도의 짧은 뱃길이었다. 배에서 내리니 시간에 맞춰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해안길을 달리는데 차창 아래로 보이는 연안 바다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초록의 투명한 물 속에 깨끗한 돌과 해초들이 비쳤다. 언제까지 울릉도가 그 깨끗한 천혜의 자연을 간직할 수 있을까. 환희는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천부에서 내려 어제 어른이 일러주신 분의 집을 찾으러 올라가는데 소나무 숲이 울창했다. 어딜 가나 온통 소나무라더니 그 말 그대로였다. 적어도 쉰 살은 넘어보였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일제시대 때부터 있던 숲이라고 했다. 육지와 떨어져 잇다 보니 침탈의 손길과 전쟁의 포탄이 미처 닿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집을 쉽게 찾아 그 할라버ㅈ나테 궁금한 것을 실컷 물어보고 성인봉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온통 울릉미역취 재배밭이었다. 나리분지를 지나 성인봉으로 길이 매우 푸석푸석하였다. 길가 숲에는 뭍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잎이 넓은 왕호장근이 많이도 자라 있었다. 초본성인데 마치 관목처럼 1년에 몇 미터씩 자라 옛날에는 울릉도 주민의 주요 땔감이었다고 한다. 천부에서 나리분지까지는 약 4km의 거리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무척이나 목이 마르는 길이었다. 고개 마루로 올라서니 아래에 분지가 나타났다. 집이 몇 채 보였다. 그 중에서 마른 풀과 나무껍질로 지붕을 이은 너와집도 보였다. 사람들이 경작하는 옥수수밭이며 약초밭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가파른 섬의 한쪽에 이렇게 너르고 여유로운 평지가 있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보는 시각은 참 다양하다. 내가 보는 나리분지는 더할 수 없는 고마움으로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데,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람, 사업가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보는 나리분지는 겨울의 풍부한 눈밭 위로 펼쳐진 스키장이나 말이다. 지형 조건 때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에서 눈 피해를 막기 위해 가장 구하기 쉬운 나무를 이용해 특수하게 고안된 것이 너와집이다. 그 너와집 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멀리 분자와 너ㅇ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위에 있는 투막집도 둘러보았다. 주인도 없는 가겟집 마당에서 수돗물로 목을 축이고 버려진 율;병을 잘 헹궈 물을 담고 성인봉으로 향했다. 숲에 나 있는 것들을 유심히 살피며 가야 했다. 혹시 ㄱ노달비나 두메부추, 곰취가 있나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다보니 여기저기 마을 청년들이 숲을 보호하자는 리본과 함께 철사줄로 팻말을 달아놓은 게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나무가 생장하면서 철사줄이 나무를 파고들어가 오랏줄처럼 되어 있었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그 철사줄을 제거했다. 다행히 오래된 것이라 쉽게 떨어져나갔다. 최근 외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찬력이 있는 용수철을 이용해 팻말을 달아놓는다고 한다. 제법 많은 소득을 얻으며 오르는데 갈래길이 나타났다. 둘씩 나누어 가다가 길이 아니면 되돌아오기로 했다. 성인봉으로 오르는 외길 아래 샘이 있는 곳까지 왔는데 다른 팀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2시경이라 배도 고픈데 먹을 것ㅇ르 든 사람들은 소식이 없었다. 맑은 물로 배를 채우고 하릴없이 물 주위에 맴도는 희귀한 색의 나비를 찍어댔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한참, 마침내 반가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손에 채집물을 잔뜩 들고. 가파른 경사를 가진 원시림 이제 울릉도의 원시림이 시작되었다. 산의 좁은 길을 제외하고는 온통 나무였다. 보기 드물게 높이 자란 섬고로쇠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계곡 주위를 포위하여 서 있는 섬고로쇠나무, 서어나무, 물푸레나무, 그 아래로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화보에서나 볼 수 있는 쥬라기 시대를 연상시켰다. 하늘은 울창한 수관에 가려지고 땅은 융단처럼 깔린 양치식물에 가려졌다. 그늘지고 습하고 흙냄새, 말 그대로 원시숲이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엷은 빛줄기가 보였다. 산길의 대부분은 통나무를 흙에 박아 계단을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계단을 설치하는 이유는 비단 사람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산의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산이 사람들에 의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만든 것이다. 흙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을 막고 있는 일종의 산사태방지 구조물인셈이다. 그런데 계단으로 박아놓은 나무 기둥에 새순들이 돋아 있었다. 다 말라비틀어진 가지 같은데 여기저기 흙에 묻힌 기둥에서 살아 있는 줄기가 나 있는 것이었다. 땅에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나고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닌 듯했다. 실제로 나무 중에는 뿌리나 줄기의 조직을 땅에 꽂으면 새로운 개체로 자라는 것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버드나무나 사시나무 종류이다. 만약 그 길을 몇 년간 폐쇄한다면 길을 따라 새로 어린 숲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다. 숲은 계속 같은 모야응로 이어졌는데 길이 제법 험했다. 우리가 찾는 것이 있을 법하면 숲속으로 들어가 일제히 수색을 했다. 중간쯤 올라갔을까. 길 좌측으로 일단의 대나무가 누렇게 말라죽어 있었다. 대나무는 일생에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다던데 과연 줄기 몇 개에서 꽃을 볼수 있었다. 여름 가뭄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잠시 쉬었다 한발 한발 성인봉을 향해 내딛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오르니 드디어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옆으로 성인봉으로 오르는 아주 작은 길이 보였따. 성인봉이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좁은 정상에서 너도밤나무, 마가목, 섬오리나무 등의 키 작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8월이건만 벌써 마가목 잎이 붉었다. 아마 여름의 한발 탓이 컸으리라. 마가목은 팥배나무와 같은 종류이지만 작고 앙증맞은 잎사귀가 아카시아 잎처럼 하나의 줄기에 5-6쌍이 일렬로 마주 달려 있다. 마가목은 단풍색 도한 아름답다. 단풍색이 나타나는 데는 기온의 변화가 필수적인데 고산에서는 더욱 극적이기 때문에 유난히 아름답고 선명한 단풍색을 만드는 것 같다. 주황색 열매가 붉은색의 단풍과 아주 잘 어울렸다. 마가목 열매는 새들이 먹을 때 나무로서 더욱 행복할 것이다. 새가 열매를 먹으면 과육은 새들의 양식이 되고, 종자는 배설물과 함께 다시 자연으로 돌아와 종족번식의 기회를 준다. 성인봉에 올라갔지만 불행히도 운무(雲霧)가 일어 아래를 볼 수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아 하는 수 없이 그냥 내려왔다. 너도밤나무 군락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에 이르는 원시림은 단풍나무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성인봉에서 도동에 이르는 쪽은 사정이 다르다.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너도밤나무 숲이다. 너도밤나무는 마치 느티나무 잎과 비슷한 널찍널찍한 잎을 달고 있다. 그 나무는 유럽의 주요한 조림수 종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울릉동에서 가장 잘 자란다. 사실 우리 나라의 극성수종으로서 이론적으로 가장 합당한 나무가 너도밤나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너도밤나무가 존재하는 곳은 유일하게 울릉도뿐이고, 육지에 있는 것은 울릉도의 것만 못하다. 너도밤나무는 일본에 있다. 지금 울릉도와 일본의 거리르 생각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과거에 울릉도와 일본이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도동으로 넘어오는 숲은 온통 너도밤나무 숲이었다. 독일의 너도밤나무 숲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녔는지 흙은 다 쓸려나가고 쭉쭉 뻗은 뿌리가 땅 위로 혈관처럼 퍼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번쩍번쩍 하더니 후두둑 비가 왔다. 비에 젖어도 해갈의 희망으로 반가움이 앞섰다. 비가 시원스레 내려주면 좋으련만 젖을 만하면 그치곤 했다. 그런 소나기는 비구름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형적인 영향으로 높은 산에서 흔히 겪는 현상이다. 비와 숨바꼭질을 하다 보니 전날 올라갔던 KBS수신탑이 저쪽으로 보였다. 거의 다 내려온 것 같았다. 결국 두메부추는 찾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와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근처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지도에는 그 일대가 후박나무 군락으로 되어 있었다. 후박나무는 울릉도와 남족지방에서 자라는 상목교목이다. 사동의 후박나무는 우리 나라 천연기념물인 흑비둘기와 공생고나계다. 7월 하순부터 8월 하순까지 열리는 후박나무의 열매는 흑비둘기의 귀중한 먹이가 되가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흑비둘기의 귀중한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흑비둘기가 나타나는 곳은 울릉도와 남해의 어느 섬이라는데 흑비둘기를 관찰 할 수 있는 후박나무의 열매가 달리는 기간 동안뿐이었다. 어렵게 후박나무 숲에 도착했지만 그만 어두워져버렸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내려오는 수밖에. 마지막까지 여행의 에피소드가 울릉도를 떠나기 전날 밤에는 바람이 심상치 않았는데 다음날 아침은 맑고 산뜻했다. 전날 들어온 배를 타고 묵호로 향했다. 올 때와 달리 배가 출렁이고 속이 좋지 않아 고생하다가 잠결에 뭍에 내렸다. 서울행 버스표를 구입하고 나니 버스 탈 시간까지 약 20여분이 남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일행은 근처 식당 주인도 함께 뛰어오고 있었다. 겨우 간격이 좁혀졌다. 급한 나머지 점심 값 치르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또다시 한바탕 웃고 나서 차안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고 강원도의 소나무 숲을 지났다. 솔잎혹파리의 피해로 한창 푸를 때인데 온통 붉은 빛이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과 헤어지고 우리끼리 수원행 차에 올라 울릉도에서 사온 오징어를 씹으며 왔다. 그런데 정작 헤프닝은 수원에서 일어났다. 연구계획 자체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여행 한 번 실컷 한 셈이었다. 정말 여행만은 끝난 순간이었다. 결국 연구는 원래대로 하기로 다시 결정되었지만 이 서건은 한동안 동료 학생들의 화제 거리가 되었다. 신비의 원시림 동해 푸른 물을 힘차게 뚫고 올라와 기암괴석으로 된 섬 울릉도는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진귀한 식물들과 원시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부터 약 2백만 년 전 신생대 제 3기와 4기 사이, 한반도에는 끓어오르는 힘을 참지 못한 마그마가 지면을 뚫고 올라와 민족의 명산 백두산을 만들고, 저멀리 남해의 제주도와 동해의 울릉도를 만들었다. 뜨거웠던 용암이 식으면서 기암괴석이 생겨나고, 멀리 바람과 바닷물에 실려온 씨앗들이 현무암, 조면암, 응회암 등 삭막한 바위에 녹색옷을 입혔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바닷물에 둘러ㅆ인 울릉도는 나름대로 조건에 맞는 독특한 생태구조를 형성했다. 스시마 해류에서 갈라진 동한난류가 울릉도의 겨울을 데우고, 바다의 습한 바람은 풍부한 비를 뿌려 사시사철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식물의 낙원을 만들었다. 따라서 이 꽃은 같은 위도에서는 볼 수 없는 난대성 식물들로 채워져 제주도와 남해의 식생대와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울릉도가 고향인 식물만도 섬잣나무, 솔송나무, 너도밤나무, 섬피나무를 비롯해 섬노루귀, 섬바디, 섬현호색, 큰두루미꽃, 왕호장근 등 68종에 이른다. 한편 천연기념물 189호인 희귀 고산식물 만병초 군락이 성인봉 원시림 안에 있다. 현재 만병초 군락은 사람들의 수탈에서 보호할 손길이 절실하다. 교통이 특히 불편해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섬의 서쪽에는 난대의 원시림으로 구성되어 환경부가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으로 꼽고 있다. 태하령을 이루는 원실미은 어린 솔송나무와 가끔 우뚝 서 있는 큰 솔송나무 그리고 섬잣나무로 장관을 이룬다. 녹색의 열매가 앙중맞게 달려 잇는 두메오리나무가 이들 침엽수의 배열을 개고, 골짜기의 물기를 따라서는 너도밤나무가 시원스레 자라고 있다. 그 아래로는 두툼한 잎, 짙은 색,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는 난대식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식나무가 자라고 있고, 동백나무와 보리장나무가 어우러져 있다. 줄사철이 이름 그대로 아름드리 삼잣나무에 줄을 두른 듯 자라고 잇으며 사시사철 푸른 송악덩굴이 떼지어 뻗어 있다. 나리동에서 성인봉에 이르는 원시림은 태하령과는 구성이 다르다. 섬잣나무나 솔솔나무 대신에 섬고로쇠나무, 너도밤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섬피나무, 마가목, 두메오리나무가 더불어 하늘을 가리고 그 아래로는 바로 바닥으로 이어진다. 군데군데 아름드리 나무가 잘려진 채로 썩고 있다. 바닥은 잎의 앞, 뒷면이 비슷한 일색고사리와 공작고사리의 순 군락이 뒤덮고 있어 출현 이전의 원시숲을 연상시킨다. 양치식물 바닥을 벗어난 고산지대에는 갖가지 진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원시림 여기저기서 섬조릿대가 데지어 살고 있으며, 그 여세를 피해 섬노루귀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숲 전체에 각종 취 종류가 자라고 있으며 다른 한쪽으로는 둥글레가 한 무리를 이룬다. 그 사이사이로 선초롱꽃이 수줍게 피어 있는가 하면 섬바디가 뽐내듯 화려한 흰 꽃우산을 받쳐들고 있다. 안개 속에 잠긴 성인봉에 이르는 원시림은 그야말로 ㅅ니비 그 자체다. 거대한 천연기념물 울릉도는 섬 자체가 거대한 천연기념물이다. 섬에서 자라는 모든 것이 다 희귀하고 가치롭지만 그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데, 이 작은 섬에만 무려 여섯 군데나 있다. 통구미의 향나무 자생지, 대풍감의 향나무 자생지, 대하동의 솔송나무, 섬잣나무 그리고 너도밤나무 군라그 도동의 섬개야광나무, 섬댕강나무 군락, 나리동의 울릉국화, 섬백리향 군락, 마지막으로 성인봉의 군락은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 지정된 천연기념물은 오래된 노거수나 전설을 가진 개체목이 아니라 식물집단이라는 점에서 더욱 식물사회학적 의미가 크다. 하나의 식물자원박람회를 연상시킨다. 울릉도 전체 면적이 72.8km²밖에 안도니 일단 울릉도를 방문하면 이 천해의 자원을 다 돌아볼수 있다. <암벽 위의 저 향나무> 울릉도에는 향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배를 타고 도동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오징어를 말리기 위해 죽 꿰어 늘어놓은 모습과 오징어 탑이 있는 작은 공원을 양쪽으로 둘러싸고 있는 절벽 바위 틈의 꼬부라진 향나무다. 비록 비틀어지고 휘었지만, 이 ㅎ야나무들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수렁 2천년에 달한다고 한다. 옛날엔 울릉도 일대에서 향나무가 흔하게 있었는데, 향이 좋아 밥그릇도 되고, 주걱도 되고, 베개가 되고, 각종 조각품이 되었다. 이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바위 꼭대기에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곳곳에 널린 향나무 조각품 가게에는 오만 가지 상품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을릉도 자생 항냐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미국내에서 수입한 향나무로 만든 것들이다. 어쨌거나 그 향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상당히 부합되는 모양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울릉도 통구미와 대풍ㄱ마의 향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태하리의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는 전에 군청이 자리했던 곳이라 그런지 향나무 집단이 이루어져 있다. 배를 타고 깎아지른 듯한 섬 주위를 돌 때 그 벼랑에 이끼같이 붙어 자라고 잇는 나무들은 대개가 향나무들이다. 사람들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갔지만 거센 바닷바람이 또다른 적이다. 꼬부라지고 휘어지고 기어서 자라는 수밖에 어쩔 조리가 없다. <섬잣과 솔송과 너도밤의 3중창> 섬잣나무와 솔송나무, 너도밤나무는 우리 날 육지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 나무가 서면 테하리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 울릉도에만 분포하는 세 가지 수종이 한 군데에 집단을 이루고 있으니 이곳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3종의 식물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들 군락 가운데는 섬쥐똥나무, 털고로쇠, 옴나무, 섬피나무, 만병초가 함께 자라고 있다. 이 일대는 일제시대 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솔송나무는 가슴 높이의 둘레가 1m 이상이나 되었으며, 섬잣나무 역시 50cm, 섬피나무 30cm 이상 되는 거목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거대한 나무들은 벌채되고 말았다. 잘 보존하면 그때의 거대한 집단을 부활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 특산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 도동항에서 오른쪽에 서 있는 암벽은 섬개야광나무, 섬댕강나무의 군락이다. 이 두 수종은 울룽도 특산으로 아주 진귀한 식물이다. 절벽 군데군데 향나무가 안쓰럽게 그 얕은 땅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틈틈이 역시 울릉도 특산인 섬기린초의 작은 군락들이 있다. 절벽의 능선부를 따라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섬개야광나무는 그 수가 매우 적다. 섬개야광나무는 개야광나무 속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5∼6월에 촘촘한 잎 사이사이에서 흰 꽃이 핀다. 섬댕강나무 역시 낙엽관목으로 5월 경에 연노랑색 꽃이 나팔처럼 긴 대롱을 달고 뻣뻣한 잎 사이를 비집고 핀다. 개야광나무류는 세계적인 관상수종인데 섬개야광나무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한국 특산종이다. 암벽 틈에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처절한 현실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 암벽이 사람의 손길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니 식물자원 정책의 현주소를 알 만하다. 이 섬개야광나무를 증식시켜 영원히 보존하고, 나아가 이를 관상수로 대량 개발해서 세계 시장에 내놓는다면 우리 식물 자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암벽에 자라고 있는 향나무나 섬개야광나무 등을 관찰하려면 직접가기는 힘들고 망원경을 준비해야 한다.<달빛에 춤추는 울릉국화와 섬백리향의 향기> 나리분지는 울릉도의 유일한 분지로 애초에 화산이 폭발할 때 큰 분화구가 생기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분화구를 둘러싸고 있던 산의 경사면에서 흙이 흘러내려 분화그를 막으면서 약 25ha의 평지가 생겼다. 천부의 고갯길을 올라서면 제일 먼저 나리분지임을 알리는 것은 온갖 한약 냄새다. 이곳 나리동에 사는 사람들은 나리분지에 천궁을 비롯한 온갖 약초를 재배한다. 겨울에는 엄청난 눈이 내려 투막집이나 너와집을 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너른 분지를 약간 벗어나면 그 향이 백 리나 간다는 섬백리향 군락과 울릉국화의 하얀 꽃밭을 만난다. 울릉국화는 키 50㎝ 정도의 다년생 국화과 식물로 지름이 8㎝쯤 되는 하얀 꽃이 가지 끝에 하나씩 달린다. 장미와 마찬가지로 야생의 국화는 홑꽃이다. 국화꽃 특유의 초록색 잎은 두텁고 광택이 나며 하얀 꽃잎도 강인해 보인다. 섬백리향은 꿀풀과 식물에 소하는 낙엽반관목인 백리향의 변종으로 백리향에 비해 잎과 꽃이 큰 것이 특징이다. 기면서 자라는 줄기가 땅으로 뻗으며 6월경에 붉은 보라색의 꽃이 잎의 겨드랑이에 2∼4개씩 달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꽃의 향기가 매우 강한데 낮보다 밤에 특히 강하다고 한다. 이들 군락은 울릉도에만 나타나고 있어 가치가 더욱 크다. 이들 군락과 투막집을 지나면 이제 성인봉에 이르는 길로 들어가게 되고 울창한 원시림을 맞을 준비를 강하다고 한다. 이들 군락은 울릉도에만 나타나고 있어 가치가 더욱 크다. 이들 군락과 투막집을 지나면 이제 성인봉에 이르는 길로 들어가게 되고 울창한 원시림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식물은 조금 알지만 바다나 동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바라본 울릉도의 바다는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그러니 바다를 알고, 동물을 아는 사람이 울릉도에 대해 말한다면 엄청난 가치와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울릉도는 사실 거리상의 문제나 경비 등으로 선뜻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도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하루 4천명이나 되어 자연 훼손이 오히려 걱정이라고 한다. 그 많은 방문자 중에서 울릉도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며 그것을 추구하여 감사하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치는 아는 사람에 의해서만 지켜지고 빛날 수 있다. 부디 둘도 없는 이 천혜의 자연을 접하고 둘러보면서 누대에 걸쳐 해가 되는 일체의 행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미완의 길 이번 여정은 중부 이북으로 치우쳐 있다. 해남과 경상도는 거의 다 빠진 셈이다. 이들이 빠진 이유는 이들 지역은 내가 살고 있는 중부권에서 상당히 멀다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해남의 그 넉넉한 땅은 이곳 중부와는 사뭇 다른 경관과 구성요소를 지닌다. 한 번 둘러보고 왔지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나무와 동배나무가 고작이었다. 해남 땅의 어느 작은 국민학교 교정에 있는 나무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 손에는 이들 식물을 식별할 수 있는 난대식물도감 하나 없다. 굴러굴러 흘러흘러 남해로 떨어지는 그 정경을 아직 제대로 읊을 능력이 내게는 또한 없다. 그러나 내가 해남 땅을 밟았을 때의 그 포근함은 잊을 수 없다. 꼭 그 땅을 다시 찾아가 그곳의 멋을 진정으로 경험하고 말리라. 경상도 땅은 우리 나라 산림의 역사에서 볼 때 가장 불모지였다. 포항 영일만의 거대한 녹화사업이 영화상영전의 대한 뉴스나 화보영화에 나오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그곳은 우리 나라 최대의 녹화 공사장이었다. 산림청장이 헬기를 타고 전국의 산림을 사찰했다고 한다. 중부를 지나 해남으로 가는 하늘 아래는 온통 푸르다. 기분이 절로 나고 밥맛이 절로 난다. 남해의 어딘가에서 그윽히 점심을 먹고 경상도로 향한다. 지리산을 넘어 경상도에 이르면 맛있게 먹었던 점심이 위로 솟구친다. 호남지방과 달리 영남지방은 하늘 아래가 아직도 벌겋다. 몇 년 전에 산림청장이 특별강연에서 직접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그나마 녹화되었던 산림이 남부지역을 휩쓴 솔잎혹파리란 놈 때문에 다시 추락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2년 전에 모대학의 연습림이 있는 안동 지방으로 실습을 갔을 때는 산들이 푸른 소나무로 아주 젊고 싱싱했다. 모진 시련을 이겨내고 수세를 회복하여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산림자원으로 인해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영남땅, 이제 기반을 잡아가고 있는 젊은 산을 밟아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산을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 지난 여름 완도의 갈문리 숲을 조사하고, 땅ㄱ 토밀탑에도 올라가 보고, 해남 땅을 돌아 지리산을 조사했다. 노고단에서 이틀을보내고 천왕봉까지 1박으로 40여 킬로미터를 걸었다. 천왕봉을 돌아 중산리 계곡 9km를 직각으로 서서 내려왔다. 1,908m가 9km의 길이로 내리꽂히니 그 경사가 오죽했으랴. 다시는 중산리 코스로는 안 가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였다. 발바닥이 온통 물집이었으며 발톱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 멍든 발톱이 울릉도 성인봉을 넘자 급기야 빠져버렸다. 지금은 쭈글쭈글한 새 발톱이 나 있다. 중산리를 내려오면서 나는 산으로 놀러가자고 하는 사람은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다. 조사야 어쩔수 없이 산에서 하는 것이지만 노는 것까지 이 지긋지긋한 산에서 하자는 것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연구실 사람들에게 산에 가자고 닥달이다. 아직도 내 엄지 발톱의 삼분의 일은 시퍼런데도 산이 그리운 것이다. 나는 산을 떠나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면, 갈 곳이 산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선하다. 착하다는 의미(善)가 아니라 신선 (仙)이라고 생각한다. 먹을 것을 책임진 ㅊ니구가 늦어 못 오더라도 걱정할 필요없다. 산에서 사람들은 모두가 일행이다. 중산리를 벗어나 차가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반딧불의 그 반짝이는 불빛도 아름다웠고,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아름다웠고, 저 아래로 보이는 그리도 지겹던 상가의 간판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앞에 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다웠다. 저 위 계곡가에는 차들이 세워져 있고 그 차를 ㅍ녀하게 타고 온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온갖 고생을 하며 산을 오르고 내려와 지친 다리를 힘들게 끌고 가고 있는 남편과 후배 김휘 군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디에나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인생은 아름답다. 편한 일, 하기 좋은 일, 돈 많이 버는 일, 생색나는 일, 하고 많은 좋은 일들 중에서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내고 그러면서도 묵묵한 그들은 고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순례자 같았다. 산을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 산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국가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는 작전 참모들, 그러면서 전혀 표나지 않는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어 우리의 산은 더욱 푸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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