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2일 목요일

김정배씨의 뉴욕/김형준씨의 유럽배낭여행


잠들지않는 뉴욕 맨허튼
뉴욕 벤처맨들 "일이 문화"


세계 디지털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실리콘 앨리(Silicon Alley). 문화예술의 중심지 뉴욕의 맨해튼에 둥지를 튼 수 백개의 벤처회사를 통칭하는 말이다. 서부의 ‘실리콘 밸리’가 정보통신 첨단기술의 본산이라면 이곳은 닷컴 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디지털 문화의 산실이다.


실리콘 앨리 사람들은 주로 이메일 등 온라인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그러나 얼굴을 맞대고 몸과 몸이 부딪치는 아날로그식 만남도 중시한다. 실리콘 앨리의 중요한 문화는 다름 아닌 파티다. 다른 업체로부터 주말 저녁 파티 초대를 받으면 만사 제쳐놓고 참석하는 것이 이곳의 ‘비즈니스 상식’이다. 칵테일이나 간단한 음식을 들고 둘러서서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떠는 것이 파티 ‘콘텐츠’의 전부다. 파티를 통해 친분을 넓힐 뿐 아니라 자신의 회사를 알리고 최신 정보를 교환한다. 그래서 앨리의 파티는 ‘노는 비즈니스’로 통한다.


새로운 세기 디지털문화 생산지의 또 다른 특징은 ‘바쁨’이다. 실리콘 앨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생활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댄다. 맨해튼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앨리 기업인 ‘미디어팜’(www.mediafarm.com)의 브라이언(29)처럼 대개 “다른 뉴요커와 다를 바 없이 가끔 영화나 공연을 보고, 전시회를 찾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생각하는 디지털문화란 무엇일까. 이곳에서 일하는 제레미 스탠튼(30)는 “그런 건 없다. 미디어는 새로운 문화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할 뿐이지 미디어 자체가 문화는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브라이언은 “‘디지털 문화’란 용어도 없지만 그렇게 표현한다면 그것은 마치 ‘언어 문화’나 ‘잡지 문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인터넷은 각종 문화가 섞인 용광로이며 각각 번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일 뿐이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팜의 공동창업자인 앨리사 화이트(31)는 ‘실리콘 앨리’ 문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모험심’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이 일으킨 골드러시는 모험에 대한 자신감을 자극했기 때문에 벤처기업에 몰리는 20대의 청년정신이 30대 40대에도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쁜 생활속에서도 앨리 젊은이에겐 자유스러움이 넘쳐 보였다. 직원이 100명이 넘는 큰 회사건 서너명에 불과한 신생 회사건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맡은 일이 다르고 능력에 따른 연봉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프로젝트 마감이 임박할 때를 제외하고 밤샘 근무는 거의 없다.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오후 10시까지 일하는 것도 ‘중노동’으로 여길 정도. 복장도 반바지에 샌들을 신는 것이 보통이고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출근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앨리에는 출신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은 오히려 소수이고 경영학이나 인문학, 예술 관련 전공자들이 많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인재로 구성된 다국적 면모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다양한 소양이 실리콘 앨리를 움직이는 창의력의 근간을 이룬다. 앨리가 내놓은 다양한 서비스가 국제적인 파급력을 갖는 것도 이런 점과 무관치 않다.


여기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직장에 연연하지 않는다. ‘재미 없어졌다’는 이유로 6개월마다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흔하다. 높은 연봉 보다 새로운 일감을 찾아 나서는 경향이 강하다. “아파트 구하기보다 일자리 찾기가 훨씬 쉽다”고 말할 정도. 출신이나 학력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처리해본 경력을 제일로 여기는 풍토가 잦은 이직을 불러온다.


외형적인 성공 이외에 앨리 종사자가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앤더스 램시(33)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인터랙티브 웹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커스틴 솔버그(31)은 “젊고 전도양양한 회사에서 지적이고 활동적인 일에 기여하는 즐거움”을 꼽았다.


하지만 ‘닷컴’에 몰아친 돈벼락은 순수한 ‘꿈’을 퇴색시킨 측면도 없지 않는 것 같았다. 브라이언 누네즈(31)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초창기에는 디지털혁명을 통해 인간의 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이상주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 몇 년새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큰 돈을 버는 것이 최고가 됐다. 이제 삶의 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브라이언은 ‘실리콘 앨리’에서의 ‘성공’에 대한 뼈 있는 정의를 내렸다. “자기 회사를 만들어서 키운 뒤 30세에 수 천만 달러의 재산가가 된다. 그 뒤에 다음과 같은 수순을 밟는다. 첫째, 회사를 팔고 새 사업을 시작한다. 둘째, 주간지인 ‘실리콘 앨리 리포터’에 표지인물로 나간다. 셋째, TV 탤런트나 영화배우와 사귄다.”

공연예술의 최고전당 '뉴욕 카네기홀'

다니엘 바렌보임, 로린 마젤, 피에르 블레주, 제임스 레바인, 볼프강 자발리쉬, 마리스 얀손스, 마이클 틸슨 토머스, 피터 제르킨, 안드라스 쉬프, 마우리치오 폴리니, 제시 노먼, 캐슬린 배틀, 체칠리아 바르톨리….


2000년 7월 뉴욕 카네기홀 안내판에 걸린 ‘2000∼2001년’ 공연 스케줄을 봤더니 현존하는 간판급 지휘자와 연주자 이름이 대부분 올라와 있었다.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입장권 가격이 250달러나 됐지만 내년 3월치까지 거의 매진이라 했다. 메인홀(2804석)을 유료관객으로 꽉채운다 해도 한 회 공연 수입 70만달러(약 8억원).입장료 수익만으로는 세계 최고수준의 개런티를 요구하는 아티스트를 끊임없이 무대에 세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애당초 수지타산 맞추기가 불가능한 공연이 쉼없이 무대에 올려지는 비밀은 뭘까.


카네기홀의 운영을 책임진 카네기홀 코퍼레이션의 제이 골란 감독(개발기획부)은 “튼튼한 재무 구조 덕분”이라고 요약했다.


“연 200여개 공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경비 1700만달러(한화 약 190억원) 중 98%를 자체 조달합니다. 이중 티켓 판매대금은 30%에 불과합니다. 후원자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증권등에 투자해 얻는 수익 30%, 카네기홀 임대수익 30% 등이 재정독립의 기반이죠.”


1999년 카네기홀 재무보고서에는 ‘카네기식 경영’의 실체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경상 경비(3949만달러)와 수입(2450만달러)을 맞춰보면 1499만 달러가 적자. 그러나 입장료와 공연장 등 임대료를 합한 ‘영업 수입’외에 후원금(991만달러), 주식배당금과 평가이익 등 기부금 투자수익(742만달러) 등이 1897만달러에 달해 부족분을 메우고도 398만달러나 남았다. 카네기홀의 투자항목을 보니 주식 등 유가증권은 물론이고 각종 수익증권과 일반 기업 출자까지 구성이 다채로웠다.


“이익금은 재투자를 통해 지속적으로 적립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카네기홀 순자산이 1억7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카네기홀이 처음부터 유럽의 내로라하는 공연장들이 앞다퉈 벤치마킹하려는 ‘알부자’였던 것은 아니다. 1891년 설립 이후 적자를 면치 못했던 카네기홀은 1955년 건축개발업자에게 팔려 헐릴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러나 뉴욕의 유서 깊은 명소가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는 반대여론이 들끓자 뉴욕 주정부는 1960년 카네기홀을 500만 달러에 사들여 비영리조직인 ‘카네기홀 코퍼레이션’에 운영을 맡겼다.


여기서 주의깊게 봐야할 대목은 주정부가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돈을 대준 것이 아니라 자립이 가능한 구조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카네기홀 건물은 팔리지 않게 보존해 줬으니, 그 나머지 충당비용은 카네기홀 코퍼레이션이 경영을 통해 창출하도록 ‘간접지원’ 방식을 택한 것. 실제로 카네기홀이 99년 뉴욕 주정부와 시정부에서 직접 지원받은 돈은 전체 소요경비 1700만 달러 중 110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카네기홀 코퍼레이션의 초대 대표로 추대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1년치 티켓을 예매하게 하는 캠페인을 시작으로 자립 경영의 기틀을 만들어 나갔다. 특히 기부금 모금에 발벗고 나서 현재 1만5000여 구좌에 이르는 기업과 개인을 후원자로 끌어들였다. AT&T를 비롯해 200개가 넘는 쟁쟁한 기업이 있지만 연간 기부액 1999달러 이하인 개미 기부군단(‘카네기의 친구들’)도 1만3000명이나 된다. 기부금을 현금만이 아니라 기업의 주식, 부동산으로 기탁받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골란감독은 마치 상품을 파는 기업이 단골을 확보하듯, 후원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카네기홀 코퍼레이션의 주요 업무라고 강조했다.


“돈을 낸 만큼 후원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연 관람의 우선권을 주고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것을 비롯해 갈라 콘서트, 유명 아티스트와의 만찬 등을 수시로 마련하죠. 원할 경우 기탁자의 이름을 새긴 고정 좌석도 마련해 드립니다.”


공연 안내책자 뒤편에 연간 2000달러 이상 기부한 개인과 회사의 명단을 일일이 밝히는 것도 비슷한 취지다. 내로라하는 재력가들이 카네기홀 후원자가 되는 것을 상류층의 명예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하지만 후원금을 모으고 운용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지난 5월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매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뉴욕의 마사 그레이엄 현대무용센터의 활동 중단은 그 어려움의 단적인 사례. 오랜 적자에 시달리던 현대무용센터는 1998년 뉴욕 이스트 63번가 건물을 팔고 외곽으로 이사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재정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모든 공연일정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이곳 기부자들이 현대무용센터의 론 프로터스 예술감독의 ‘실정’에 등을 돌리는 바람에 고작 50만 달러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경영부실의 책임이 있는 CEO를 개미군단 주주들이 밀어내듯 기부자들이 경영권을 행사한 셈이다.


기부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투자’와 ‘수익’개념이 핵심인 뉴욕. 무대 위에서 고결한 아리아가 울려퍼질 수 있게 하는 것은 무대 뒤의 치열한 문화경영이다.

자본주의 시그널…거리덮은 현란한 광고판

맨해튼은 그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이나 다름없다. 대서양 너머 구대륙을 향해, 아니 우주공간을 향해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자본주의와 인공문화의 상징인 대형 사인보드. 하지만 이 사인보드는 계속 환한 빛을 발하는 네온사인이 아니라 빛과 어둠이 교차하면서 끊임없이 명멸하는 전광판이다. 그리고 드러냄과 감춤의 미학은 그 전광판의 양전지와 음전지다.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 있는 타임스스퀘어. 격자형 도로로 이뤄진 맨해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의 배꼽 쯤에 위치한 이곳은 그 빛의 한복판이다. 밀물처럼 밀려오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관광객들의 시선은 타임스스퀘어에서 소용돌이치며 수직으로 상승한다. 밀집된 공간을 가득 채운 어머어마한 규모와 현란한 색채의 광고들에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볼 수 밖에 없다. 마치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기적이 도심 한복판에서 실현되는 듯 현혹적이다.


팬티만 입은채 엎드려서 함박웃음을 보내는 자키 속옷 광고모델의 거대한 사진, 각종 TV프로그램 광고를 내보내는 ABC방송사의 대형 모니터, 원통형 빌딩 자체를 스크린으로 증시현황과 더불어 각종 인터넷 콘텐츠 광고를 뿜어내는 나스닥의 전광판. 현란한 색채와 빛으로 자본주의의 광휘를 한껏 뿌려내는 공간이다. 미국의 코카콜라와 일본의 산토리 위스키, 한국의 삼성그룹 광고판 등이 겹겹이 쌓아올려진 다국적 광고탑은 마치 신의 분노로 언어가 달라져 뿔뿔이 흩어졌던 인류가 다시 쌓아올리기 시작한 바벨탑을 보는 듯 아득한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광고내용을 뜯어보자. 상품광고보다는 콘텐츠광고가 압도적이다. ‘라이언 킹’과 ‘아이다’같은 뮤지컬은 물론 토니 블랙스톤과 크리스티나 아귈레라 등의 음반, 워너 브라더스의 영화와 각종 TV프로그램으로 가득찼다. 상품광고는 도요타 승용차와 코카콜라 정도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뮤지컬, 영화, TV프로그램, 소설책에 최근엔 닷컴 등 각종 인터넷콘텐츠 광고 일색이다. 다른 광고라도 금융 통신 의료 교육 등 각종 서비스 안내 광고일 뿐 제품광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맨해튼은 이미 콘텐츠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광장이 아닌 밀실로 들어선 탓일까. 이곳의 광고들은 표현이 좀더 우회적이다.


뉴욕의 거리풍경으로 지하철 한칸을 가득 매운 흑백사진들은 첫눈에 무슨 광고인지 알 수가 없다. 썰렁한 거리풍경의 차이나타운에 선 한 중년여성, 주택가를 걸어가는 교복차림의 여학생, 주인의 손에 끌려가는 두 마리 강아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 한 구석에 있는 쓰레기통에서 보일 듯 말 듯 컬러로 씌여있는 ‘Recycling’이라는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 재활용을 권장하는 뉴욕시의 공공광고에서조차 메세지는 표면 뒤에 숨어있다. ‘About.com은 무엇에 관해서든지(about anything)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심지어 About.com에 대해서까지도’라는 인터넷 업체의 광고에서도 역시 이런 드러냄과 감춤의 숨바꼭질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브로드웨이 같은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뉴요커들의 생활공간으로 들어서면 더욱 확연해진다. 뉴요커들이 즐겨찾는 레스토랑과 유명 바는 간판조차 찾기 힘들다. 소호구역 머서가에 위치한 머서 호텔 레스토랑 앞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간판은 볼 수가 없고 겨우 유리창에 ‘(The Mercer) Kitchin’이라고 써있을 뿐이다. 그나마 머서라는 이름조차 구차스럽다는 듯이 괄호안에 들어가 있다. 소호의 유명 옷가게나 안경점들도 간판은 아예 없이 유리창에 보일 듯 말 듯 상호를 새겨놓은 가게들이 많다. 첼시에 있는 ‘LOT61’도 뉴요커들에게 인기높은 바지만 허름한 부두가 창고들 사이에 희미한 불빛을 내는 조그만 간판 하나로 겨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을 뿐이다.


‘LOT61’의 바텐더 브라이언(28)의 설명.


“맨해튼에는 두 개의 구역이 존재한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는 공간과 뉴요커들이 가는 곳은 별개의 장소다. 후자는 자신의 존재를 되도록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진정한 뉴요커가 되려면 노훼어(Know Where)가 중요하다.”


이런 이중성이 조화를 이뤄 나타난 것이 플래그컬처(깃발문화)가 아닐까. 맨해튼에는 간판은 없어도 깃발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건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도심속의 대학인 뉴욕대(NYU)의 수많은 건물들도 보라색 바탕에 흰색 횃불이 들어간 깃발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유지한다. 서울의 청담동쯤 되는 소호에서도 대로상에는 DKNY나 캘빈 클라인의 대형벽화도 보이지만 골목안에 위치한 아나 수이, 비비안 웨스트 등 유명 디자이너의 옷가게들은 대형 간판보단 오히려 각자의 독특한 색깔과 문양을 내세운 깃발을 선호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둑어둑해진 맨해튼의 밤거리를 걷다보면 문득 깨닫는다. 맨해튼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은 그곳이 번쩍번쩍한 네온사인의 거리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어둠속에서 깜빡이는 불빛처럼 반쯤은 모습을 감춘채 그렇게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을.
'도시전체가 거대한 세트'

뉴욕, 특히 맨해튼은 천일야화의 도시다. 수 많은 민족과 종교, 직업의 사람들이 끊임없이 마주치고 부대끼는 이곳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화와 전설이 도시 곳곳을 굴러다닌다. 어쩌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에 귀기울이기 위해 맨해튼은 ‘잠들지 않는 도시’가 됐는지도 모른다.


거리 모퉁이만 돌아서면 경찰과 갱, 예술가와 모델, 월스트리트의 ‘돈벌레 일벌레들’과 할렘의 부랑아, 외교관과 테러리스트, 유태인과 아랍인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조금 넘는 땅(81㎢)에 수백만의 운동인자들이 분열과 융합을 거듭하면서 에너지를 분출하는 곳. 이야기 사냥꾼들에게 이보다 더 훌륭한 사냥터가 또 있을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맨해튼은 영화와 TV드라마에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 장소다. 이런 경향은 최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98년 뉴욕에서 제작된 장편 상업영화는 221편으로 최대를 기록했고 10억달러에 가까운 돈이 뉴욕시에 뿌려졌다. 99년에는 209편에 8억3940만달러로 약간 주춤하긴 했지만 이 수치 역시 영화제작 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94년 이후 6년을 통틀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TV프로그램 쪽을 보면 ‘맨해튼의 힘’은 더욱 세다. 올해 뉴욕에서 제작되는 TV프로그램 수는 110여편으로 양적으로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프라임타임 시간대 방영되는 프로그램은 두배 이상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뉴욕을 무대로 하는 프라임타임 프로그램은 NBC의 ‘로 앤 오더(Law and Order)’, HBO의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와 ‘오즈(Oz)’ 등 6편이었으나 올해는 베트 미들러 주연의 CBS 코미디 ‘베트 쇼(Bette Show)’와 가브리엘 번 주연의 ABC 시트콤 ‘매디건 멘(Madigan Men)’ 등이 더해져 13편으로 증가했다.


영화와 TV프로그램을 합치면 98년과 99년 각각 25억달러가 넘는 수입을 뉴욕에 안겨준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의 ‘엔터테인먼트 르네상스’가 불어닥치기 전인 93년의 14억달러에 비하면 두배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한 셈이다.


실제 제작이 뉴욕에서 이뤄지지 않더라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까지 포함하면 스토리 뱅크로서 맨해튼의 위력은 더욱 실감난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NBC의 시트콤 ‘프렌즈(Friends)’는 LA에서 제작되지만 뉴욕 여피들의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다. 파킨슨 병에 걸린 마이클 J 폭스 주연의 시트콤으로 유명한 ‘스핀 시티(Spin City)’ 역시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작되지만 내용은 뉴요커들의 이야기다. 올여름 개봉한 ‘엑스맨(X―Men)’ 도 대부분 컴퓨터그래픽으로 이뤄지긴 했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초능력자들의 마지막 결투장소로 등장하는 등 역시 뉴욕이 주무대다.


이처럼 많은 영화와 TV프로그램들이 이 좁은 섬에서 출발하는 데는 ‘스토리뱅크’라는 위상 외에 또다른 이유도 숨어있다.


폭스뉴스의 국제담당 편집자인 브라이언 노블록은 “맨해튼을 포함한 뉴욕시 지역 전체 시청가구는 120만가구로 단일지역으로는 미국 최대의 시청자 시장”이라고 말한다.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최대수요자인 뉴요커들의 관심사를 붙들어두는 것이 시청률 제고에 매우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뉴요커들은 자신들을 ‘뉴요커’가 아닌 ‘아메리칸(미국인)’이라고 부르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전체 미국과 자신들을 차별화해서 바라보는 자의식이 뚜렷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뉴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적은 뉴요커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라도 뉴욕을 주무대로 등장시킨다는 것.


영화 ‘고질라’에서 남태평양 핵실험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고질라를 파나마운하를 가로질러 수천㎞ 북쪽 대서양변의 맨해튼까지 끌고온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맨해튼에 사는 영화감독과 배우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도 한 원인이다. 우디 앨런과 마틴 스콜시즈, 폴 머저스키, 스파이크 리 등의 영화감독들은 물론 팀 로빈슨과 수전 새런든 부부,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배우들도 점차 인터네셔널한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맨해튼에 거처를 마련하고 있다.


줄리아 로버츠의 영화제작사인 슈레이스사의 플리니 포터사장은 그들이 맨해튼에 사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집밖에 나가 한시간 거리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볼 수 있고 길거리를 걷다보면 무명예술가들의 온갖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밤마다 열리는 파티에서는 지긋지긋한 연예계 인사들이 아니라 월스트리트 증권중개인과 그리니치빌리지의 예술가, 소호의 패션디자이너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그들 중 누구도 사인해달라고 귀찮게 구는 사람은 없다.”

뉴욕의 文化지도가 바뀐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돈, 새로운 문화(New People, New Money, New Culture).



많은 뉴요커들은 최근 몇 년 새 뉴욕 문화의 변화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한다. 인터넷 문화의 보편화와 미국 경제의 호황이 탄생시킨 주머니 두둑한 ‘신 인류’가 뉴욕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의 ‘뉴 피플’은 일요일 낮 늦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 체인점 ‘스타 벅스’를 찾은 젊은이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납할 비디오 테이프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간단하게 구별된다. 간밤에 ‘코즈모닷컴’(cosmo.com) 같은 인터넷 배달 서비스로 빌려본 테이프를 반납하는 것이다.


인터넷 비디오 대여 서비스가 ‘뉴 피플’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이곳 기성세대에게는 뜨악한 일임에 틀림없다. 인터넷으로 주문하지만 실제로 배달해주는 곳은 동네 비디오 대여점이기 때문이다. 뉴욕대에서 뉴미디어를 강의하는 데니 로진은 “직접 가서 금방 빌려오면 되는데 굳이 컴퓨터로 주문하고 30분씩 기다리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공개된 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더 신뢰할 만하다(authentic)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런 ‘뉴 피플’의 새로운 행태는 미국 닷컴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인프라가 됐다. ‘새로운 돈’이 나스닥으로 몰리면서 실리콘 앨리와 월 스트리트에는 하루 아침에 큰 돈을 쥐게 된 젊은이들이 줄지어 생겨났다.


최근 미술을 필두로 예술시장의 판도를 급속하게 바꿔놓는 것도 이들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표현을 빌면 “뉴욕과 런던 경매장을 오가면서 등단한지 몇 해 되지도 않은 신인들의 멀티미디어 작품을 ‘묻지마’ 구매하는 신원 불명의 젊은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현대예술의 흐름 뿐만 아니라 뉴욕의 문화지형도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동원할 수 있는 돈의 크기에 따라 근거지가 결정되는 거주의 재배치가 몇 년새 이뤄졌다. 대표적인 지역이 소호(SOHO)로 이제는 ‘가난한 예술가의 거리’가 아니다. 2,3년전부터 20,30대 백만장자들이 정형화된 아파트 대신 탁 트인 공간을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는 이곳 스튜디오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을 뒤따라온 고급 브랜드의 패션 점포가 자리 잡으면서 소호는 순식간에 ‘다운타운 쇼핑몰’로 변모했다. 이에 따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올라 50평짜리 스튜디오 월세가 보통 6000∼7000달러에 이른다. 지난해까지 소호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던 양 킴은 “빌 게이츠 같은 갑부나 제프 쿤스 같은 부유한 예술가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동네가 된 소호 거리에는 쇼핑백과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만 넘쳐난다”고 말했다.


이곳을 세계적인 예술의 산실로 만들었던 많은 갤러리와 예술가들은 더이상 신흥 부촌에 머물 수 없었다. 3년전 뉴욕의 대표적인 갤러리인 폴라 쿠퍼 화랑을 필두로 3분의 2 가까운 화랑이 값싼 창고 건물이 많은 챌시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하지만 나스닥 호황은 인적이 드물어 황량하기 그지 없는 챌시의 집값을 1년 사이에 3,4배나 올려놨다. 다시 짐을 싸지 않을 수 없는 많은 화랑은 맨해튼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 공장지대로 쫓겨갔다. 브루클린에 형성된 신 예술촌 ‘덤보’(DUMBO)가 최근 신예 아티스트의 산실로 주목받는 데에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다.


‘뉴 머니’는 문화만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뉴요커의 정신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Midlife Crisis)란 신조어가 최근 뉴요커의 화두로 자리잡은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30대 중반까지 백만장자가 되지 못하면 영영 불가능하다는 말에는 이들이 가진 위기감이 투영되어 있다.


뉴욕대 사진학과 교수이면서 문화비평가인 프레드 리친은 “‘뉴 피플’이 주도하는 ‘뉴 컬처’가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문화는 갈림길에 서 있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다원주의의 길과 사회적 네트워크에 필수적인 대인접촉이 사라진 개인주의의 길이다”.


그는 구체적인 전망을 유보하면서도 “‘뉴 머니’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는 한탕주의를 만연시키고 문화의 생산보다 소비에 치우치게 만들어 신인류의 문화적 역량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뉴욕시 정부가 올해의 슬로건으로 ‘세계의 문화 수도’를 내건 것은 어쩌면 이런 위기감의 표현이 아니겠느냐.”


잠들지 않는 도시 맨해튼

맨해튼은 ‘잠들지 않는 도시’다.



미국의 대도시들은 보통 오후 8시가 넘으면 도심은 블랙홀처럼 텅 빈 공간으로 바뀐다. 그 시간 도심의 빌딩들이 환한 불을 켜놓고 있다고 해도 차를 타고 다니면 모를까 도심을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는 황량한 공간이다.


하지만 뉴욕의 맨해튼은 밤 8시부터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우선 맨해튼 사람들의 저녁식사 약속은 밤 8시가 넘어야 한다. 그 전에 저녁약속을 잡는 것은 촌스런 일이 된지 오래다. 요즘에는 아예 10시쯤 저녁약속을 하는 것이 첨단패션을 따르는(chic) 일이 됐다.


고급 의상실과 화랑가가 밀집한 소호의 고급 레스토랑 ‘머서 키친’에 손님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밤 10시경. 8시반까지도 테이블이 절반 이상 비더니 9시반이 넘으니까 지하 1층 레스토랑의 테이블은 물론 1층의 바까지 사람들로 꽉 찬다.


이렇게 늦은 식사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리는 만무하다.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육체미 가꾸기(Body Building)’라는 말 대신 신체 부위별로 들어갈 곳과 나올 곳을 조각하듯 가꾼다고 해서 ‘인체조각(Body Sculpture)’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신체적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뉴요커들에게는 더욱. 하지만 언제나 과학보다는 유행의 힘이 더 강한 법.


워너브라더스의 해외출판물 스카우터인 마리아 켐벨은 “오후 늦은 시간 맨해튼의 사무실은 어딜 가나 피자나 도너츠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정작 이들의 저녁식사 식탁에 오르는 스테이크는 미국 다른 곳의 절반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고 귀뜸해 줬다.


또 밤은 마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폴’에 등장하는 삐삐가 마술봉을 휘두른 것처럼 맨해튼을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향한 통로로 바꿔놓는 시간이다. 어둑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사무실의 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맨해튼 마천루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백개의 눈을 지닌 거인 아르곤이 깨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거인들이 깨어나는 시간이 되면 맨해튼의 독신남녀들은 저마다 폴이 돼서 마왕의 손에서 구할 니나를 찾아 도심의 미로를 헤맨다.


소호와 이스트빌리지 첼시에 수없이 많이 생겨난 ‘바(Bar)’들은 분위기있는 음악에 술 한잔 걸치면서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일과 성공을 좇아 맨해튼에 상륙한 수많은 싱글들의 집결지다.


첼시 지역의 허드슨강변 옆에 있는 ‘LOT61’. 겉에서 보면 허름한 창고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은은한 조명에 검은색 톤 인테리어에 맞춰 의상을 통일한 바텐더들이 컴퓨터로 주문을 받는다. 캐주얼 정장차림의 남자들과 착 달라붙는 검정색 원피스나 바지정장 차림의 여자들은 대부분 마티니를 마신다.


럼과 백포도주를 섞은 마티니는 가히 맨해튼의 술의 여왕이라고 할만하다. ‘LOT61’의 메뉴를 보면 마티니 목록이 빼곡이 적혀있는 페이지가 네 페이지, 종류는 90여 가지나 된다. 나머지 두 페이지 중 하나에는 맥주, 다른 하나는 위스키와 기타 술이 적혀 있다.


대부분 짝을 지어오거나 남녀가 각각 친구들을 데려와서 만나는 경우가 많지만 밤 11시가 넘으면 즉석 만남도 심심치 않게 이뤄진다. 이 때 중요한 것이 첫마디 인사말을 뜻하는 픽업라인(Pick―up Line).


뉴욕대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아론 리펠스(21)는 “싱글들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픽업라인은 사인과 같다”며 “뉴욕에서 싱글로 살아남으려면 멋진 픽업라인부터 만들라”고 충고했다.


만일 미술적 감수성을 지닌 남자로 상대에게 비치기를 원한다면 ‘Nice Figure, Italian?’도 괜찮다. 이 말은 ‘몸매가 멋있는데 이탈리아 출신이십니까?’라는 뜻과 함께 ‘멋진 조각품이네요. 이탈리아제입니까?’라는 중의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직선적인 터프가이로 비치기를 원하다면 “당신의 피에 한국계가 섞여있느냐”고 묻고 당연히 “노”라고 답할 때 “그러면 한번 섞어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로 웃음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뉴욕에선 이 한두줄짜리 픽업라인을 위한 전문적 잡지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픽업라인의 생명은 독창성. 어디서 한번 들어본 것 같은 내용이면 효과가 금방 떨어진다. 이쯤되면 일본의 하이쿠 못지않다는 말도 농담만은 아니다.


맨해튼의 미로에는 아무리 멋진 픽업라인으로도 열 수 없는 요지경의 세계도 숨어있다. 소호 그랜드호텔 2층에 있는 ‘그랜드 라운지’도 고급스럽기로 유명한 바.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월스트리트에서 방금 걸어나온 듯 말끔한 정장차림의 남자들과 마티니를 흘끔거리는 여자들로 발디딜 곳이 없다.


하지만 진짜는 이 라운지의 끝에 있는 출입문 뒤에 감춰져 있다.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덩치들’의 주머니에 40달러 가량을 찔러주며 “캐비어 맛 좀 보러왔다”는 주문을 외어야만 열리는 그 문은 1층 발코니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 그곳에는 캐비어를 안주삼아 고급포도주를 맛보는 또다른 비밀의 장소가 숨어있다.


다시 그곳을 나와 소호와 이스트빌리지의 밤거리를 걷는다. 오전 2시가 넘는 시간에 비까지 퍼붓지만 밤거리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리고 여전히 불을 밝힌 바들은 음악소리와 흰 연기를 거리로 뿜어낸다. 발 밑으로는 그 시간까지 지하철이 달린다. 지하감옥에 갖힌 용처럼 울부짖으며.


19세기말 서정시인 부르디용의 ‘밤은 천개의 눈을 가졌다’는 싯구마냥 맨해튼도 천개의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뉴욕 맨해튼의 동키 쇼
"구경은 싫다…관객도 같이 놀자"


무대도 없고 객석도 없다. 연극도, 뮤지컬도 아니다. 전위적인 퍼포먼스인가하면 질펀한 놀이다. 오감을 자극하는 즐거운 파격. 관객은 열광하고 비평가는 찬사를 보낸다. ‘동키 쇼’(The Donkey Show)와 ‘데 라 과르다’(De La Guarda). 뉴욕 오프브로드웨이를 들썩이며 공연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오프브로드웨이는 향후 ‘본 무대’인 브로드웨이의 판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셰익스피어와 디스코의 만남

‘동키 쇼’가 열리는 ‘클럽 엘 플라멩고’에 들어서면 당혹스럽다. 공연장인 줄 알았더니 디스코텍이다. 널찍한 플로어, 몇 개의 테이블, 현란한 조명, 디제이 박스, 맥주와 칵테일을 파는 바까지. 앰프에서는 귀에 익은 디스코 노래가 귀청을 때린다. 댄스 플로어에서는 육감적인 남성 댄서들이 현란한 춤을 선보인다. 관객도 분위기에 취해 어울린다.

정신 없는 디스코판 30여분. 본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밤의 꿈’을 디스코풍으로 리메이크한 ‘한 여름밤의 디스코’다. 중세의 숲을 찾은 연인들의 뒤죽박죽 사랑 이야기를 70년대 디스코텍에 놀러온 커플 사이의 해프닝으로 둔갑시켰다. 관객은 관람자이면서 엑스트라인 셈이다.

인물 설정도 기발하다. 원작의 오베론 왕은 거만한 디스코텍 사장으로, 요정의 여왕인 티타니아는 관능미 넘치는 댄서로 바꿨다.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는 외계인 복장에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플로어를 누빈다. 압권은 상대의 파트너에 눈 멀게 만드는 사랑의 묘약을 코카인(마약)으로 바꾼 것. 셰익스피어의 시적인 대사는 도나 섬머나 아바 등이 부른 70년대 디스코 노래가 대신한다. 50대 중년부터 10대 고등학생까지 어울려 댄스파티를 벌인다. 공연이 끝나도 한 여름 밤의 디스코 축제는 새벽까지 계속된다.

■공중에서 펼쳐진 비상의 꿈

아르헨티나 작품 ‘데 라 과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검은 장막이 둘러처진 어두컴컴한 공간이 전부다. 갑자기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머리 위의 하얀 막이 밝게 빛난다. 괴성을 지르며 하늘을 나는 배우의 그림자가 비친다. 형광색 작은 공과 풍선을 떨어뜨려 아름다운 스크린을 연출하기도 한다. ‘후두두둑…’ 형광액을 뿌리는 소리가 들리고 조명이 꺼지면 별이 빛나는 밤하늘로 바뀐다.

배우들이 괴성과 함께 천정 스크린을 찢으며 나타났다 공중으로 사라진다. 놀란 관객들의 비명. 이내 막이 모두 찢어지면서 3층 높이의 극장 천정이 드러난다. 정장 차림에 밧줄을 매단 배우 10여명이 2,3층 벽면에서 튀어나와 날아다닌다. 공연이라기 보다는 곡예에 가깝고, 정확히는 퍼포먼스다. 공연 부제가 ‘나는 법 배우기(Learn to Fly)’. 대사 없이 라틴 음악과 곡예만으로 상징적인 장면을 잇달아 연출한다. 높은 오피스 빌딩속에서 경쟁,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창문 밖으로 날아다니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공연 도중 옷이 젖는 것도, 한시간 넘게 서서 고개를 쳐들고 있어야 하는 것도 관객은 개의치 않는다. 마지막에 배우들은 관객을 한명씩 끌어안고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관객과 함께하는 축제의 시간이 이어진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두 공연은 브로드웨이 대작 못지 않은 인기와 찬사를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위시해 타임 빌보드 피플 등 주요 매체가 앞다투어 대서특필했다. 연극도 뮤지컬도 전통공연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두인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만으로 얻은 반짝 인기는 아니다. 요즘 한 달을 넘기기 힘들다는 오프브로드웨이 공연시장에서 ‘동키 쇼’는 1년, ‘데 라 과르다’는 2년 가까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오랜 준비와 맹연습이 뒷받침된 탄탄하고 정교한 연출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데 라 과르다’의 경우 공중쇼 배우들의 기량은 서커스 단원을 뺨치는 수준이다. 또 ‘동키 쇼’ 주인공의 연기는 공연이 끝나야 1인2역이었음을 알 정도로 감쪽같다.

두 공연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관객 참여’(Audience Participation)다. 수동적인 구경에서 벗어나 배우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공연예술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이런 것일까. 남사당 놀이나 봉산탈춤 같은 공동체 연희의 정신이 뉴욕에서 꽃을 피운 것일까.

'동키쇼' 프로듀서 조르단 로스

‘동키 쇼’ 프로듀서인 조르단 로스는 24세의 미남이었다. 그 나이면 ‘핫 초컬릿’이 부른 ‘유 섹시 싱(You Sexy Thing)’ 같은 디스코 넘버를 접한 세대가 아니다. 오프브로드웨이 데뷔작으로서는 뜻밖의 선택이다.

“저 같은 젊은이에게 디스코와 70년대는 묘한 매력과 환상을 줍니다. 셰익스피어 고전을 디스코 버전으로 바꾼 것도 모든 세대가 공감할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습니다.”

그 ‘감’은 적중했다. 지난해 8월 개막한 뒤 6개월간 전회 매진됐다. 지금은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단골(?) 고객이 많아졌고, 주말에는 새벽 3,4시까지 관객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조르단은 ‘동키 쇼’의 가장 큰 매력을 “관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앉아서 보는 공연으로는 관객을 만족시키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관객을 공연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죠. 직접 참여만큼 큰 즐거움은 없으니까요.”

이같은 발상의 전환은 매일 200개의 공연이 열리는 뉴욕 쇼 비즈니스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란 말도 덧붙혔다. “뉴욕에서는 남들과 다른 경험을 주지 않으면 관객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조르단의 어머니는 ‘데 라 과르다’의 기획 제작자인 대릴 로스다. 조르단은 프린스턴대 철학과 출신으로 대학 시절 연극활동을 했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공연을 파티처럼, 파티를 공연처럼 하는 것도 이런 취향 때문인가 봅니다.”

그는 가을에 브로드웨이 공연에 맞먹는 대형 프로젝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컬트영화의 대명사인 ‘록키 호러 픽쳐쇼’를 소재로 삼았다고 귀띔했다. 그가 말하는 ‘관객과 함께 웃고 즐기는 전대미문의 하드코어 록 쇼’가 무엇일지 기대를 갖게 한다.
브로드웨이 최대 호황 만끽

지금 브로드웨이는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지난해 공연 수입이 사상 최대였다. 1년치 예약이 끝난 ‘라이언 킹’를 비롯해 ‘시카고’ ‘아이다’ ‘미녀와 야수’ 등 롱런하는 뮤지컬이 10개가 넘는다. 그것도 ‘메이드 인 런던’이 아닌 ‘메이드 인 뉴욕’이다.

1980년대 이후 브로드웨이를 점령한 것은 영국산 뮤지컬이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전위에는 ‘캣츠’ ‘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 ‘팬텀 오브 오페라’ 등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빅4’가 섰다. 100년 가까이 정상을 지켜온 미국 뮤지컬의 영화가 저무는 듯했다.

침체에 빠졌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96년 혜성처럼 나타난 조너선 라슨의 ‘렌트’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뒤를 ‘라이프’가 받쳐줬고 대작 ‘타이타닉’이 선전하면서 중흥기를 맞게 된다.

98년 ‘라이언 킹’의 ‘대박’은 미국을 뮤지컬 최강국으로 다시 우뚝 세운 결정타가 됐다. 명 연출자 줄리 데이머는 동명 만화영화를 혁신적인 사운드와 비주얼의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엘튼 존의 발라드곡(‘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등)을 아프리카 리듬으로 과감히 편곡했고, 머리만 큰 우스꽝스런 동물 가면 대신 정교하게 제작된 의상을 도입했다. ‘라이언 킹’의 성공으로 고무된 디즈니는 브로드웨이에 본격적으로 진출, 타임스스퀘어 중심가 극장을 장기 임대해 ‘아이다’ ‘미녀와 야수’를 올려 모두 성공했다.

요즘 브로드웨이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나 시도할 법한 새로운 형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토니상을 수상한 ‘콘택트’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새로 작곡된 노래가 한 곡도 없이 토니상을 받은 첫 사례이기 때문. 기존 노래에 춤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파격이 공인을 받은 것이다. 뮤지컬이라고 부르기엔 알쏭달쏭해 ‘댄스 플레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미국의 제1의 관광도시... 뉴욕 .
-cyan 21-


이는 단지 미국인들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명성은 아니다. 혹자는 뉴욕을 인류가 만들어놓은 가장 거대한 도시라고 했다. 지구촌 인종전시장이라고 불리우듯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인종 만큼 다양한 문화를 그들 나름대로 잘 가꾸어 놓아 전체로 보았을 때‘뉴욕문화’라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부조화속의 조화를 이루며 뉴욕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워킹걸>의 첫 장면 -칼리 사이몬의 “Let the River Run”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클로즈업 되었다 멀어지고 하늘을 찌를듯이 빼곡히 서있는 호화로운 초고층 건물들 사이를 비추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말그대로 힘차게 출근하는 뉴요커들- 의 활기찬 모습이 떠오른다. ‘자본주의의 수도’ 뉴욕의 생기넘치는 아침이다.
이 마천루 숲을 구성하는 빌딩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영화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곳. 영화 <러브 어페어>에서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의 만남을 그토록 기다리게 만들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소로 등장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지금 한창 진행중인 연인들이라면 한번쯤 이곳에서 사랑고백을 하고 싶고 또 받아보고 싶게 하는 그런 곳으로, 자칫 삭막할 것만 같은 빌딩숲속에서 잠깐 동안이라도 낭만적인 상상들로 미소짓게 한다.

상업.무역의 중심지의 모습에서 이어 이번엔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피어나는 또 하나의 뉴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년전부터 매니아외에 젊은층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급작스럽게 대중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재즈’. 뉴욕하면 ‘재즈’를 빼 놓을 수 없다. 사람의 심장박동수와 엇비슷한 재즈의 리듬을 타고 흑인가수 빌리 할러데이의 감칠맛나는 목소리와 맨하탄 트랜스퍼의 환상적인 화음. 관객과 혼연일체가 되는 즉흥연주를 들으면 정신없이 일에 몰두한 뉴요커들의 하루 피로는 말끔히 가신다. 30여곳의 재즈클럽을 주무대로 현대재즈의 중심지를 이루는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뉴욕인들 뿐만 아니라 유럽. 남미. 동양. 흑인등 세계 각국의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된다. 그밖에 화려한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세계 각지 지망생들의 희망과 좌절이공존하는 브로드웨이에는 줄줄이 늘어서 있는 40여개의 극장과 셀 수 없을 정도의 오페라하우스나 뮤지컬 홀들이 문화생활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 빌딩숲사이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공원과 세계미술의 메카 소호에 있는 각종 박물관, 갤러리들은 뉴욕문화의 다양함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1. 하우스튼가 남쪽의 원더랜드


소호는 지루하다. 더 이상 ‘쿨’하지 않다.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지라 불리는 소호는 이제 패셔너블한 뉴요커들과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뒤덮인 ‘물’좋은 거리일 뿐이다. 들뜬 관광지가 내뿜는 기운은 감각의 마비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핫’하다. 산뜻한 옷 가게나 가구점 쇼윈도우와 형형색색의 식당과 술집들은 19세기 말의 투박함이 녹아있는 울퉁불퉁한 코블(cobble)길, 묵중하고 투박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들이 내뿜는 지난 시대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활기로 가득찬 예술과 패션의 거리로 바꾸어버렸다. 그 거리 위를 관광 가이드와 카메라,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오고 흩어진다. 뉴욕의 명물, ‘뉴욕 애플 투어(New York Apple Tour)' 2층 버스는 카메라에 썬그라스를 걸친 관광객들을 가득 싣고서 시커먼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소호의 거리 위를 달리고 있었다.

트라이베카(TriBeca)에 살다보니 일주일에 몇 번이고 소호를 걸어서 지나가게 된다. 소호에 비해선 아직 개발되지 않은 탓에 진짜 로프트(창고)들이 드문드문 눈에 띠는 코블로 된 거리를 지나서 돗데기 시장같은 커널(Canal)가를 지나면 소호의 남쪽에 도달하게 된다. 보통은 웨스트 브로드웨이(West Broadway)를 따라서 걸어 올라가지만, 기분과 목적에 따라서 어떤 날은 브로드웨이로 또 어떤 날은 우스터(Wooster)가나 그린(Greene)가를 따라서 걷기도 한다.

소호로 들어가는 남쪽 커널가는 서쪽 뉴저지로 넘어가는 홀랜드 터널(Holland Tennel)과 동쪽 브루클린으로 들어가는 맨하탄 브릿지가 양 끝에 붙어있어 오고가는 차량들로 뒤엉켜 언제나 극심한 정체현상를 이루고 있다. 커널가를 따라 연접한 보도에는 차량 수보다 몇 십배나 많은 사람들이 가짜 프라다나 뤼비똥 가방, 구찌나 발리 구두, 샤넬이나 캘빈클라인 향수, 까띠에르나 롤렉스 시계, 쏘니나 아이와 미니 콤포넌트 따위를 사려고 야단법석을 이루고 있다.

커널가 안쪽 난립한 중국 식료품가게나 생선가게, 중국 빵집과 식당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커널가 지하철 역 주변은 공사를 하느라고 가뜩이나 좁은 길을 두배나 좁게 만들어 사람들 사이를 잽싸게 빠져 걷지않으면 언제 이거리를 벗어날지 모를 만큼 북세통이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커널가와 인접한 소호 남쪽의 두어 블락은 갤러리보다는 악세사리 가게가 눈에 먼저 들어오고, 이 건물 저 건물에 간간히 중국어로 쓰인 간판이 보인다. 특히 브로드웨이와 커널가 위쪽은, 엘로우 래트 배스타드(Yellow Rat Bastard)나 펄스(Pulse), 액티브 웨어하우스(Active Warehouse)같은 힙합 옷가게들 천국이다. 70-80년대 이후 싹튼 이스트 빌리지의 뉴 웨이브 예술이 소호로 흡수되듯 하위문화가 주류문화로 흡수 통합되는 현장을 이 길목에서 목격한다. 더 이상 힙합이나 펑크가 소수 철없는 아이들의 반항적인 패션이 아닌 것이다. 브루클린 뮤지엄에서는 힙합 네이션(Hip Hop Nation)이라는 주제로 뉴욕 담벼락이나 지하철 차량 등에 스프레이나 에어졸로 떡칠을 한 낙서나 32가 한빛은행 앞 보도에서 흑인 10대들이 관광객 푼 돈이나 노리고 써커스하듯 추던 브레이크 댄스, 클럽 디제이나 랩가수들이 입던 옷이나 신발, 악세사리를 예술품으로 전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랜드(Grand)가를 지나면 거리의 풍물과 사람들의 피부색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의 수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래도 물론 거리는 붐빈다. 이제부터 서서히 갤러리도 보이고 고급 카페와 디자이너 가구점, 옷가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게들과 갤러리들을 오가노라면 가게들이 갤러리 같고, 갤러리가 이들 가게같이 느껴진다. 특히 헬무트 랭이나 내셔날 코스튬같은 의류매장은 갤러리보다 더욱 갤러리같이 상품을 디스플레이를 하고있고, ‘잘 나가는’ 갤러리는 반대로 상점처럼 장식하고 예술품들을 전시 판매한다. 하이 아트(high art)와 로 아트(low art)의 경계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순수 예술과 상업 예술의 구분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기는 유명한 예술가들이 케이 마트(K-mart)에서 전시회를 하고, 뮤지엄은 텔레비젼 브라운관으로 꽉 차있는가 하면, 영화 타이태닉 주제가가 일류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는 세상이니 그런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랜드가를 지나다 제대로 간판조차 찾기 힘든 소호의 ‘뜨는’ 갤러리, 제프리 다이치 프로젝츠(Jeffery Deitch Projects)의 갤러리 벽면엔 그림이나 설치작품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싸구려 페인트로 낙서를 해놓은 것이 보이는데 그것이 전시품이란다. 이 낙서를 어떻게 팔아먹을까? 도대체 얼마나 할까? 우리 조상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듯이 이곳 갤러리 주인을 위시한 '예술 상인'들은 길거리 간판이나 낙서, 상품 포장지 등도 갤러리에 가져다 놓고 말도 안되는 비싼 가격에 팔아먹는다지. 몇몇 저가 의류업체들도 소호의 이런 ‘예술 상인’들의 상술을 이어 받아 브랜드 간의 높낮이를 파괴 시키고 있다. 어떻게 감히 올드 내이비(Old Navy)나 제이 크루(J. Crew) 따위가 한국에서 제일로 좋다는 백화점 ‘겔러리아’의 ‘명품관(?)’에만 전시되는 프라다나 돌체엔 가바나, 루이뷔통 같은 ‘명품’들 하고 같은 지역에 공존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기는 몇 블록 밑 커널가에 가면 식별하기 힘들만큼 잘 만들어진 ‘짜가’들도 공공연히 팔리고 있는 판이니. 이제 가격이 제품의 질을 보장해 줄런지 모르지만 스타일은 보장해주지 않는가 보다. 이처럼 이 동네에서는 예술에서 고급과 저급이란 경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상품의 브랜드에 있어서도 고급과 저급의 구분이 사라지고, 엄숙한 뮤지엄(쿠겐하임)에서 오토바이를 전시하는가 하면, 일류 갤러리에서 낙서나 흙더미가 감쪽같이 예술작품으로 둔갑한다.

50년대 말에만 해도 ‘지옥의 100 에이커(hell's 100 acres)’라 불렸던 소호가 30년 만에 뉴욕 관광의 필수적인 코스가 되었을 뿐 아니라 미드 타운의 뮤지엄, 링컨센터, 카네기홀 같은 공연장과 더불어 뉴욕을 세계 예술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그 유명한 갤러리 타운을 이루고 있다. 버려진 공장지대가 ‘뽕나무 밭이 바다로 되듯’ 변해버린 셈이다(桑田碧海). 1968년에 레오 가스텔리 화랑 디렉터로 일하던 이반 칼프가 웨스트 브로드웨이에 오케이 해리스 갤러리를 연 이래 폴라 쿠퍼(Paula Cooper), 홀리 솔로몬(Holly Solomon), 리차드 페이근(Richard Feign)등 관록 있는 갤러리들이 미드타운에서 소호로 이전하여 문을 열었다. 그리하여 1978년에 77개의 갤러리가, 그리고 그 이후로 상당 수의 갤러리가 첼시로 옮겨갔지만, 99년 현재에도 아직도 225개의 갤러리가 소호에서 영업중이다.

단순히 갤러리가 많이 몰려있다고, 또 많은 예술가들이 살고 있다고 해서, 미국 전역과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이렇게들 몰려드는 것일까? 1996년 기준으로 겨우 6천 5백 여 명의 사람들이 살고있지만, 주민들 중 76%가 예술가이거나 예술과 관련된 일로 먹고 산다고 해서, 시내 중심가의 러시아워처럼 주말이면 사람들이 이리들 몰려 다니는 것일까? 튀는 것에 목숨을 거는 별난 미국사람들 중에서도 더 튄다는 개성 강한 예술가 족속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얌전하게 걸어서 끝에서 끝까지 10분도 안 걸리는 이 지역에 몰려들 살았을까? 20세기초 세계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한 귀퉁이 몽마르트가 20세기 중반에 하우스턴 (Houston)(1) 스트리트 남쪽과 커널(Canal) 스트리트 북쪽 사이에 있는 예일곱 블록안으로 훌쩍 옮겨져온 힘은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지역을 걸어다닐 때마다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곤 했다.

Written by 김정배, 뉴욕 16-O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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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형준이라고 합니다.

우연치 않게 유럽에 10여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유럽 중심부 5개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을 렌트카로 돌아다녔습니다.
아우토반을 씽씽 달려보자....

인원 : 4명(남2, 여2)
차량 : 웨건(1500CC, 디젤)
기간 : 8일간
비용 : 약 55만원 미만(기름값, 톨비등 제반 비용 포함)
- 4명의 유로 패스 비용의 1/4 매우 적은 비용

장점
1) 비용이 매우 적다.
2) 고속도로 휴게실 차안에서 퍼저 자도 된다.
(기차간에서 쭈그리고 잘 필요가 없다)
3) 4명이 모두 운전하면, 야간에도 이동이 가능하다.
4) 아우토반을 시속 200km이상을 쏠 수 있다.
5) 유럽의 모든 도시를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
6) 이동이 신속하다.(주차비 낼때는 버리고 싶다)
7) 음식물을 트렁크에 저장해서 다닐 수 있다.
8) 빤스가 되었던 속고쟁이가 되었건 뒤 창가에 놔두면
다 마른다. 어디서 빠냐고, 화장실, 호텔..등...
9)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닐 이유가 없다.
10) 가방 보관료가 들지 않는다(그돈이면 주차비가 싸다)
11) 고속도로 안내와 시내 안내 표지판이 매우 훌륭

주의점 :
1) 국제 운전 면허증과
2) 국내 운전 면허증(경력확인용)
3) 국내에서 렌트 계약할 것
(sky pass, 아시아나 카드 사용하면 할인)
4) 스위스는 1년치 고속도로비용 내야함(4만원 정도)
5)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는 수시로 톨비냄
(싫지만, 내야함, 독일 아우토반은 공짜)
6) 지도(유럽 서점에 가면 15000원)와
7) 나침반(도시에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자주 잃음)
- 옆사람이 네비게이터 해도 소용 없을 때가 많다.
8) 스위스는 디젤기름값이 휘발유보다 비싸므로
주변나라에서 넣고 들어가서 나와서 다시 넣는다.
9) 베니스(베네치아)는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베니스 시 입구에 공용 주차장에 주차비 5만원
베니스 외곽에 호텔에서 자고 공짜 주차 시킨다.
버스 타고 간다. 매우 저렴..
10) 느낀대로 말하면 유럽의 운전자들(특히 이탈리아)
우리보다 더 무식하게 운전한다.
따라서 준법, 방어운전만 하면 아무런 사고 나지 않음.

개인적으로 물어볼 사람은 메일 주시와요..^^!




내용
나서 처음으로 해외에 가 보았다.

상당히 고생스런 여정이었지만,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보람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행중에 이런 일들은 참고로 할 수 있겠다 싶은 것이 몇가지 있었다.

1. 런던 지하철의 경우.
- 런던에 도착, 지하철표를 사면서 매표소에서 ticket을 달라고 했더니
요금이 다소 비쌌다. 이상해서 확인을 해 봤더니 one day ticket이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하루동안 사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one day ticket을 끊는 것이
경제적이나, 당시 우리는 숙소 찾아갈 필요만 있는 경우여서 one day ticket을
반납하고 보다 싼 one way ticket으로 교환하였다.
- one day ticket를 사서 다니게 되면 버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2. 맥도날드의 경우
- 유럽의 경우는 공중 화장실이 거의 유료이다.
처음에는 돈을 내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맥도날드의 화장실을 주로 이용하였다.
- 다니다 보면 음식을 뭘 먹을까가 고심되는데 무난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맥도날드 food였고, 간단하게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때도 맥도날드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이었다.

3. 준비물의 경우

- 숙소마다 뜨거운 물 이용은 무난한 편이어서 햇반과 컵라면은 다소 넉넉히 준비해
가는 것이 좋겠다.
- 고추장(튜브2개면 충분), 구운김도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
- 김치의 경우는 부패가 쉬워서 소량만이 바람직한데, 꼭 필요하다면 농협에서
팩으로 나오는 것이 괜찮아 보이고, 기내식에서 제공되는 것을 챙겨둘 수도 있다.
- 휴지는 호텔이나 맥도날드등에서 구할 수 있어 준비해 갈 필요가 크게 없었다.
- 방수되는 잠바는 비올 경우나 스위스 설산 경우를 생각해서 준비해야 겠다.
- 필름은 생각보다 많이 소요되었다. 최소한 24판짜리 기준으로 10통은 필요하다.
현지에서는 필름값이 국내의 2배이상으로 비싼 경우가 많다.

4. 숙소의 경우
- 숙소 위치에 대한 정보가 대단히 미흡해서 여행사가 제공한 위치도를 보고 찾다가
헤매는 경우가 적지 않아 피곤한 가운데서 원성이 잦았다. 여행사가 제공하는 정보중
신뢰할 만한 것은 주소와 전화번호인듯 하니 현지에서 숙소를 물어보게 되는 경우에는
주소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
- 여행사가 숙소를 정할 시에 역과 가까운 것을 주안점으로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현지 첫 숙소의 경우는 타당하게 생각되나, 이후 숙소의 경우에는 대형 슈퍼에
가까운 것을 주안점으로 하는 것이 여행자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겠다.
- 배낭 여행을 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상당히 피로를 느끼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숙소의 쾌적함이 심리적으로 중요해졌다. 머물렀던 파리 숙소의 경우는 그것이
너무 미흡하여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5. 독일 열차의 경우
- 뮌헨에서 하이델베르그로 가던 열차가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인근 역에 하차해서 택시로 하이델베르그로 이동한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경우에는
택시기사에게 돈을 지불하지 말고 그 기사를 데리고 역 Information으로 가서
역무원에게서 지불받도록 해야 한다.
돈을 지불하고 운전사를 보내야 하는 경우는 일단 영수증은 꼭 받아야 겠고,
역 Information으로 가서 역무원으로부터 택시로 이동하게 된 사유서를 꼭 지급받아
여행사에 제출하면 여행사에서 처리해준다.

6. 스위스의 경우
- 툰호의 유람선은 마냥 타고 있으면 원래 장소로 가겠지 하고 있으면 7시간 이상이
소비된다. 중간 정도인 Spiez정도에서 내려서 Spiez역까지 주위 경관을 즐기면서
산보를 하고서, 돌아오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4시간 정도의 코스로서 좋겠다.
- 별도로 툰호를 유람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스위스 입국시 종점역으로
곧장 들어가지 말고, Spiez역에서 내려 유람선부두까지 걸어간 후 돌아오는 배를
타고 인터라켄 west역으로 가는 것도 좋겠다.

7. 국제통화의 경우
- 전화카드는 1만원짜리 2장 정도가 무난하다.
- 이태리의 경우는 공중전화에 동전을 투입한 후 전화카드를 이용해야 한다.



30일간의 유럽여행
파리에서 만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조회수


1.바게뜨 & 과일파이
원래 밥보다 빵을 좋아하는 나는 그동안 거쳐온 도시에서는
주로 샌드위치를 많이 보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칠면조고기나
연어슬라이스가 입에 맞지 않아 거의 먹지 않았는데,
파리에서 바게뜨와 과일파이를 맛보고선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 긴 바게뜨와 과일파이를 즐겼다.
스위스에선 초콜렛을, 독일에선 맥주를, 프랑스에선 바게뜨에
대해 국가적으로 법적 보호를(?)하고 있다는데 역시 그 맛은
일품이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바삭바삭한 겉과 부드러운
속, 적당히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란!
과일파이는 거리의 작은 케익하우스나 슈퍼마켓 빵집에서
볼 수 있는데, 생과일이 듬뿍 얹어있어 달콤하고 입에 살살
녹는 빵의 촉감이 끝내준다. ^^
가격도 바게뜨는 1000원 이하고 파이는 2000원 정도라 부담없다.

2.에펠탑
에펠탑을 보지 않고 어찌 파리를 논할 수 있겠냐마는,
솔직히 간접적으로 너무 많이 봐오던 것이라 그런지 기대만큼
황홀하진 않았다. 게다가 한낮에 보면 구릿빛이 역력한
철탑이란 느낌밖에 없어서, 반드시 어두워진 후 조명발을 받는
그 모습을 봐야 비로소 감탄이 나온다. 그 거대한 철탑 앞엔
언제나 관광객들이 붐비고, 키가 큰 흑인들이 엽서,열쇠고리
따위의 기념품을 팔며 한국어를 비롯한 각국의 언어로 사람들을
붙잡아 한 번 쯤 돌아보게 만든다는 것도 기억할 만 하다.

3.metro
여행 내내 느낀 것이지만, 어느 도시에 가도 '지하철'은 참
흥미로웠다. 파리에서 제일 오래 지내서 그런지 지하철에 대한
기억도 여러가진데 애석하게도 일단 지저분하다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역에 들어서면 퀴퀴한 냄새와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 낙서가 일단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또 지하철 역이 굉장히 많아서 역 간 거리가 아주 짧고
열차도 서울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개찰구는 좁지만 열차의 문은 매우 크고, 역마다 역입구와
플랫폼, 역이름 모양(디자인)이 가지각색이라 그것만 잘
관찰해도 아주 재미있다. 열차 안의 예술가들도 정말 다양하다.
기타,색소폰,아코디언,팬플룻,클라리넷,바이올린...
하루종일 지하철만 타도 심심하진 않을 것 같다.

4.세느강
내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선 혼자 우두커니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봐도
다정하게 키스를 하는 연인이 옆에 있어도 외로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고독에 빠져 자살충동을 느끼는 게 더 맞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난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하고 싶다.
세느강에선 누구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 본연의
고독감도 타향에서의 외로움도 한없이 아름답다.

5.몽마르뜨 언덕
물랑루즈를 비롯한 수많은 클럽과 sex shop이 즐비한 그곳에서,
마치 동네 뒷산 약수터에 오르듯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파리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몽마르뜨가 있다. 많은 화가들이
거쳐간 그곳엔 아직도 초상화로 밥벌이를 하는 가난한 화가들이
남아있고,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노천까페가 영업중이다.
소매치기때문에 관광객들의 '요주의 명소'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오래된 것이 주는 매력과
파리를 통째로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6.인종전시장
미국에 가보지 못한 나는 그곳이 인종전시장이란 말을 실감해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흑인이 너무 많아 놀라기도 했고 아시아계통의 사람도 많아
낯설음이 덜 했던 곳. 여행의 묘미는 바로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7.쇼핑
화장품과 향수, 명품 의류와 악세사리가 가득한 파리는
분명 쇼핑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루이비통과 샤넬 매장에 가면 문 밖까지 줄을 서서 가방을
사려는 검은 머리의 한국인과 일본인을 볼 수 있는데,
놓칠 수 없는 기이한 풍경이다.
(한국인 배낭족을 대상으로 루이비통 아르바이트가
성행하는데 정말 국제적인 망신이 아닐 수 없다)

8.미술관과 박물관,서점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셰 미술관은 그 명성답게 정말 웅장하고
볼 것이 많다. 미술과 역사에 문외한이라 해도 한번쯤 들러
감상해볼 만 하다. 세느강가나 소르본 대학 주변, 퐁피두센터
앞의 가게에선 특별한 느낌의 그림 엽서를 많이 볼 수 있다.
현대적인 느낌의 사진을 담은 사진집이나 팝아트 그림, 영화
서적 등, 잠시 서서 조금만 들춰봐도 꽤나 재미있다.

9.세느강 유람선
바토무슈,바토파리지엥 등 여러 종류의 유람선이 있다.
물론 가격대에 따라 그 질이 달라지지만 어느 것을 타도
어두워진 세느강을 느끼기엔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에펠탑 아래에서 출발하여 세느강을 돌아 오는 유람선에서,
'오~샹젤리제~~♬'하는 노래를 들으며 강바람을 맞는 기분은
시원하고도 여유로웠다.


2001-12-1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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