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2일 목요일

세계의 종교여행

지은이:카트린 클레망

여행이라는 주제는 정신적인 모험과 사랑의 모험이 동일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유일신을 섬기는데,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형상화해 서는 안 된단다. 신의 이름을 불러서도 안되고.

첫째, 유대인은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으로서 신과 계약을 맺었다.
둘째, 이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며 산단다. 이 메시아는 종말이 다가
왔을 때 나타날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은 신을 알라라고 하지요.
알라는 위대하며, 마호메트가 알라의 예언자였지요.
이들은 금요일이면 모스크에 모여 자기네들의 성지인 메카 쪽을 향해 기도하지요. 진정한 이슬람교도라면 일생에 한 번은 메카를 순례하여야 해요. 순례를 수행하면 '하즈'가 되지요.
이슬람교도들에겐 성직자가 따로 없고, 대신 마라부투들('코란'의 암송자, 하디스의 전승자, 이슬람 법률학자, 수도승 등과 같이 종교적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스도교도들은?"
"그 사람들은 '유대인의 왕'이라 불리었다는 이유 때문에, 로마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요.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인데, 인간들이 지은 죄를 속죄 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졌대요. 그리스도교도들은 일요일이면 예배를 보는데, 이때 성체
를 먹지요. 예배가 끝날 때 서로 얼싸안는 습관이 있어요. 그리고 성직자들은 수놓은 특별한 의복을 입지요."

예루살렘이 이번 여행에서 첫 행선지다.

"전 세계 모든 도시들 가운데에서 예루살렘이 가장 성스러운 도시지."

"가장 멋있고 가장 감동적이며, 동시에 가장 분열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

기원전 8세기에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산에 유일신을 위한 성전을 세운 이후로, 성전은 수 차례나 파괴되었다가 다시 건립되기를 거듭했지. 그러다가 마침내 로마인들에 의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또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입성한 곳도 예루살렘이고, 제자들은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기념하기 위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댔지. 잘 믿기지 않는 얘기일 수도 있어.

유대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예수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마침내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박혔어. 그리고 부활하신 곳 또한 예루살렘이었지.

그런가 하면 이슬람교 창시자인 예언자 마호메트가, 날게 달린 말을 타고 단번에 하늘로 날아 올라간 곳도 예루살렘의 높은 바위산에서였지. 이 정도면 설명이 되겠니?"

승천한 인물이 두 명이네요.
예수와 마호메트.
그런데 유대인 중에는 없어요?"

"물론 없지. 유대인들에게는 왕, 예언자, 영웅, 순교자, 전투지휘자 등의 건국 조상들이 있지만, 이들 중에서 승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 하느님에게로 가까이 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지.

유대인들은 원칙적으로 하느님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으니까."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요?"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단다.
예루살렘에선 하느님이 여러 나라 언어로 말하지.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코란>의 아랍어, 라틴어,
아르메니아어,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어 등.
때로는 듣기 어려울 때도 있어.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얘기만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예루살렘이 곧 바벨탑이라는 말인가요?"
"바벨탑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창조된 곳이기도 하지. 성스러운 하느님이 계신 곳이라 바람조차도 경배드리러 지나가는 곳이란다.

넌 아마도 내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란 말을 자주 들었을 게다. 하지만 예루살렘 언덕에 서면 느낌이 다르단다.
신에 대한 강한 사랑을 표현하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종교,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돌 주위에 감도는 도도한 입김, 집단기도를 위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군중들의 행렬..."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같은 시각까지는 모든 활동을 중단하지. 안식일이라고 하는데, 아주 엄격하게 지키고들 있단다.

회칙엄수파, 즉 독실한 유대교 신자들은 종교적인 원칙을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란다. 이 사람들은 안식일 동안엔 기도에만 전념하지.

이 기간동안 불을 사용하면 안 되기 때문에 전기도 켜지 않고, 음식도
하지 않으며,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아. 굉장히 철저하게 준수하고 있어. 그렇지만 상당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해."

"그렇지만 무신론과 정교분리와는 구별해야 해.
무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정교분리자는 종교의 율법 대신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법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 사람이지. 따라서 가톨릭 신자이면서 동시에 정교분리자일 수도 있고, 유대인이면서 정교분리자, 신교도이면서 정교분리자일 수도 있는 거지."

유대인들의 하느님이 계심을 믿고 그 계명을 따라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무신론자일 수도 있고, 반면 굉장히 신앙심 깊은 사람들도 있어.

이 사람들이 바로 정교일치론자들이지. 이 사람들의 주장은 단순하기 그지없어. 지구상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세상을 구해 줄 메시아는 절대로 오시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기를 강요하
지. 턱수염난 얼굴에 키파라고 하는 동그랗고 납작한 손뜨개 모자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지."
"키파라뇨? 그게 뭔데요?"

"전통적으로 유대인 남자는 하느님 앞에서 머리카락을 보이지 말아야 해. 대부분이 키파를 착용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챙이 있는 검정색 신사모를 쓰기도 하고, 혹은 가장자리에 모피를 두른 챙 없는 검은 모자를 쓰기도 하지."

"정교일치론자들이 다른 신자들보다 더 엄격하게 지키는 계율은 뭐죠?"
"가장 엄격한 형태의 신앙심을 고수한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스라엘 대국을 열망한다는 점이야."

"첫째 이슬람교도 테러분자들이 팔레스타인 사람 전부를 대표하지 않을뿐더러, 둘째 이 이슬람교도 과격분자들 역시 유대교의 정교일치론자들과 마찬가지로 평화를 원치 않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중에는 이슬람교도들도 있지만 그리스도교도들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히브리인들은 자기네들의 신을 약칭하여 YHWH(야훼. 이 이름은 모세에게 4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계시되었다.)라고 불렀단다."

"간단히 말하자면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당신만을 섬겨야 하며,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하고, 하느님이 내건 계명에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하셨지."

"네부카드네자르(성서에서는 느부갓네살로 나옴) 2세 때 바빌론으로 추방당했고, 로마인들
이 성전을 부숴 버린 후에도 다시 쫓겨났었지."
"그럼 이번에 그 성전을 볼 수 있을까요?"
테오는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애석하게도 그 당시에 전부 파괴되어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단다. 성전이 파괴된 직후, 유대인들은 자기네 땅에서 추방당해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고, 그때부터 오랜 유랑생활이 시작되었지. 우선은 가까운 그리스와 이집트로, 다음에는 마그리브 지방, 그리고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폴란드, 인도, 중국 등지로 퍼져 나갔단다. 이어서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여러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이들 유대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퍼져 나갔어. 동시에 이들에 대한 탄압도 곳곳에서 자행되었고, 특히 1933년부터는..."

그 결정으로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방랑길에 올라야 했다는 점이야. 전쟁과 약탈, 항거시위, 폭탄테러, 피비린내나는 폭동이 수도 없이 많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협상도 계속되었지.

"그게 아니라 정교일치론자들의 생각으로는, 이 땅은 성서에 적혀 있는 대로 유대인들만의 땅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도대체 팔레스타인 그리스도교도들은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났지요?"

"그리스도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역시 그리스도교 지역에 포함되는 거로군요."

"삼중으로 성스러운 도시지요. 유대교도에겐 예루샬라임, 그리스도교도에겐 예루살렘, 이슬람교도에겐 알코즈라고 불리는 성지입니다."
"유대교도의 성지라는 건 알겠어요. 그리스도교도의 입장도 이해가 가요. 하지만 이슬람교도에겐 어째서 성지인가요?"

"십자군 원정대가 이곳에도 왔었지요?"
"물론이지. 예루살렘이 이슬람교도의 지배를 받는 동안, 양쪽에서 그리스도의 성묘를 놓고 여러 차례 싸웠지. 고드프루아 왕의 명령에 따라 1만 5천 명의 원정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해서, 마침내 그리스도교도의 성지로 복구시켰지. 원정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으나, 그와 동시에 당시의 이곳 주민들은 모두 학살당했지. 그때가 1099년 7월 15일. 공포의 밤이었지. 그리스도교 원정대는 이슬람교도 수만 명이나 학살하였고, 유대인들을 기도소에 감금해 버렸어. 적군의 피로 손을 씻었다고도 하지." "아주 깨끗하였겠군요. 그러고도 그리스도교도라고 할 수 있나요?"

"그리고 나서 깨끗한 장백의로 갈아입은 후, 맨발로 예수의 자취를 따라 순례에 나섰지.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도의 지배는, 1187년 이슬람교도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할 때까지 이어졌어. 하지만 살라딘은 그리스도교 원정대와는 달리 성전을 파괴하지도 않았고, 유대인들의 귀환 또한 허락했어... 하지만 이후에도 예수의 성묘를 차지하려는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지."

"그것 참 이상한 일이네요. 논리적으로 보자면, 그 무덤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예수는 부활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될 테니까요."
"아닌게아니라 유대인들과 이슬람교도들도 그렇게 말하지."

"예수는 신이 아니라, 그 전에도 나타났던 몇몇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예언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언자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그들은 주장하지. 그런데 예루살렘엔 예수의 성묘만 있는 게 아니야. 이슬람교도들이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소인 '바위의 돔'과, 유대인들이 찾아와 파괴된 성전의 폐허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통곡의 벽'도 있어."

두 종류의 부활절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있어서 부활절의 의미는 판이하게 달랐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이라고 부르는 이 날은, 파라오 치하에서 노예생활을 하여야 했던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 밤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한편 그리스도교도들에게는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기쁜 날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쓴 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 그리고 구운 숫양고기를 자리에 선 채로 먹는다.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무교병이라고 하지요."

유대인이 아닌 이집트인들에게는 이집트에서 보낸 유월절의 밤은 무시무시했다.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시련을 겪고 있던 이집트에서 떠날 수 있는 허락을 받아내기 위해, 모세는 파라오와 이집트 전체에 온갖 종류의 재앙을 내렸다. 영화 덕분에 테오는 이 일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구름 같은 메뚜기떼의 침입, 피로 물든 강, 죽음을 불러 온 악질, 그리고 가장 무서운 마지막 재앙이 잇달았다. 약속한 날이 되자, 아침 해가 솟을 무렵부터 이집트 사람들이 처음 낳은 장자들이 일제히 죽었다. 파라오의 장자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해방되기 전날 밤을 두고두고 기리는 것이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고 다녔는데,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입장이었다. 얼굴도 육체도 가족도 없는 하느님에게서 아들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보다 더 큰 위험은, 일부 사람들이 예수를
하느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낸 메시아로 간주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언젠가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예고한 예언자들이 있긴 하였지만, 절대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메시아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로마인들에게 마리아와 목수 요셉의 아들인 이 골칫덩이 예수를 처치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에는 로마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었다. 원칙적으로 로마인들은 피지배민들의 종교문제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유대인 성직자들로부터 공공질서를 위협하는 자를 처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경우엔 사정이 달랐다. 그해의 유대인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를 필두로 한 성직자들은, 예수가 공공연히 '유대인의 왕' 이라고 떠들고 다녀서 민심을 혼란케 하노라고 고발했다. 이 고발 내용은 물론 전혀 근거 없는 거짓이었다.

하지만 대제사장 가야바는, 유대인의 왕은 로마 황제인 티베리우스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로마의 유대 총독은 피고자가 전혀 무해한 반체제주의자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잘못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가 형을 선고하기에 앞서 장엄하게 손을 씻은 일화는 유명하다.

무고한 사람을 처형해야 하는 불의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총독이 바로 폰디우스 필라테(성서에서는 본티오 빌라도) 였죠? 아빠가 '나도 필라테처럼 손이나 씻으련다' 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결국 예수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십자가형을 선고받았고, 이에 대항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당하였고, 가시면류관을 쓴 채 조롱을 당했으며, 자신이 처형될 장소인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고통도 당했다.

두 팔을 벌린 채 십자가에 매달리고, 두 발은 아래위로 포개져서 밧줄로 묶인 죄인들은 참혹한 고통속에서 느릿느릿 죽음을 맞아야 하는 운명이었다. 정강이를 부러뜨리기 때문에 몸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렵게 되면, 자연히 숨쉬기가 곤란해져 결국에는 질식사하게 마련이었다.

'유대인의 왕' 에게는 특별히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손목과 발목에 못질을 해서 십자가에 매다는 형벌이 내려졌다.
못박힌 손목과 발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면류관을 쓴 머리에서도 역시 피가 흘렀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므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유대인들은 예수 이후에도 메시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을 여러 명 보았다.

고향을 등진 유대교도들의 공동체에서는, 예전의 예수처럼 자기가 메시아라고 나서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생겨났다. 카톨릭 교회에서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던 16세기 무렵에는, 이로 인해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시대에 따라서는 샤베타이 체비처럼 상당한 호응을 얻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칭한 샤베타이 체비는, 17세기 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게 빛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나, (아드리아노플의 술탄에게 압송되어 고문을 가하겠다는 위협을 받자) 죽음을 두려워 한 나머지 이슬람교도로 개종하고 말았다.

열 네 살짜리 소년이, 자기가 계시를 받았다고 선언했던 일이 있지요.
'모르몬경' 이라고 제목을 단 책이었지요. 이런 일이 있
은 지 10년 후, 조지프 스미스는 자기의 종파를 설립했어요.

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는 모르몬교도들을 규합하여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 (모르몬교)' 라는 새로운 종교를 세웠지요."미국에서만 해도 수백만 명의 모르몬교도들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모르몬교도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솔트 레이크 시티라는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이라고 고모는 덧붙였다.

예수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유월절 의식에 참석하신 일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두 가지는 완전히 상반되는 의미를 지닌다. 유대인들의 식사는 고통스러웠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함인 반면, 그리스도교도들의 식사는 메시아가 생애의 마지막에서 행하신 행동을 기리기 위한 것이므로, 오히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뜻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런 나라에 온 것일까? 더구나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 들은 너나할것없이 모두 유일신을 섬긴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유대인과 이슬람교도 = 유일신. 그리스도교도들은 예수가 바로 메시아라고 믿는 반면,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린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 이집트 탈출 기념.
그리스도교도들의 부활절 = 예수의 부활을 기념
예루살렘은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 모두의 성지.

"우리는 그 같은 어리석은 짓을 거부하는 사람들이지. 오랫동안 예루살램에서는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들이 슬기롭게 공존해 왔단다. 터키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도 유대인들은 이 땅에서 평온하게 살 수 있었지.

또한 19세기 말엽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정착할 때에도, 아랍인들은 이들을 배척하지 않았단다. 이슬람교는 관용의 종교이지."

유대교도들의 신은 엘로힘이라고 하지."
"그리스도교도들은 하느님 아버지, 그리고 우리 이슬람교도들은 알라라고 부르지.

"하느님께서 명하시면, 우리 모두는 복종해야 하는 법이지."
"그래요? 그렇다면 어째서 세 가지 종교로 나뉘었지요?"
"왜냐하면 우리 유대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때문이지."
"우리도 그렇단다."
이슬람교 이맘이 말했다.
"예수가 예언자임엔 틀림없어.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은 절대로 아니야."

"조금 전에 우리 유대인이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 최초의 민족이라고 말했었지."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 하느님은 존재하신다.
하느님은 존재 그 자체라는 말이다."
"존재라니오, 신치고는 참 이상한 이름을 가졌네요."

"왜냐하면 그분은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유일신, 절대적인 신 그 자체이기 때문이지. 그는 시간을 총괄하시는 분이야. 즉 존재 자체란 말이지. 이해할 수 겠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지.
그렇지만 하느님은 모든 시간이신 거야. 영원이시지."

"우리는 영원토록 살 수 없을 뿐이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매달릴 텐가? 부모님? 부모님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테지. 조국? 조국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어.

우리들 자신?
그렇지만 그 자신도 끊임없이 변하지.
누가 우리에 계명을 내리시겠는가?
누가 금지사항을 말해 주겠는가?

우리들 스스로 누군가를 죽이려 들지는 않을 테지?
그렇지? 아마도 우리는 자신이 살인을 하지 않는 이유를
그것이 나쁜 짓이고, 자신은 선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지?

하지만 그건 오산이야.
우리는 영원한 존재가 내려주신 십계명 중 여섯 번째 조항에서 살인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살인을 하지 못하는 거야.
유대교가 사람들에게 남에 대한 도리를 전파한 덕분에 테오가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지. 유대교의 핵심인 십계명의 나머지 아홉 계명도 마찬가지야."

"살인 금지의 계명보다 앞에 오는 조항에는 어떤 것들이 있지요?

"제일은 영원한 존재이신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신도 섬기지 말라. 제이는 우상이나 그림 앞에서 절하지 말라. 우리가 하느님을 형상화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조항 때문이지. 모든 성화나 성상은 영원한 존재이신 하느님을 그릇되게 표현할 테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의 초상화는 많이 봤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는 신이 아니란다."

영원한 존재의 이름조차도 부를 수 없는데... 제삼의 계명이 바로 그거야. 헛되이 영원한 존재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일곱번째 날은 공백의 날이야. 마침내 멈출 수가 있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해.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가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 늘 뭔가를 계속한다면 그게 삶일까? 일곱 번째 날은 휴식이 아니라 침묵의 축제라고 말할 수 있어.

"도대체 왜 하느님과 싸우는 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지. 인간의 형제들은 자주 상속 싸움을 벌이지. 또 순종하기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 요컨대 하느님이 제시하신 십계명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말이지. 열 개의 계명을 빠짐없이 늘 지켜야 하니, 앞이 캄캄한 노릇이지.

"또한 성서에도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현명하시며, 슬픔을 느끼시기도 하고 실망감에 빠지시기도 한다. 그리고 연민의 정을 느끼시기도 하고 전능하시지만, 때론 심하게 질투도 하신다고 적혀 있어, 화가 나시면 무섭지만 한없이 인자하시기도 하지.

인간의 눈으로는 어떻게 달리 하느님을 뵐 수가 없기 때문이야. 인간들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언어로 말해야 옳지 않겠어?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든지 못 들은 체 하든지는 완전히 인간의 자유인거지."

"자유라고요? 십계명은 어떻게 하구요?"

"그리스어의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의 메시아에 해당되는 말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지. 유대교에서는 성유를 머리에 부음으로써 축성된 대제사장을 의미하는데, 이 대제사장만이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물을 바칠 수 있는 자격을 가졌어. 그러나 예수는 동시대 유대인들이 볼 때 정식으로 축성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지. 도유 의식을 받지 않았으니까. 바로 이런 까닭에 예수는 그해의 대제사장, 즉 가야바의 반감을 산 거야."


예수는 왕 이상의 존재였지.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니까. 그
리스도교의 요점은 바로 여기에 있어. 성전에 제물을 바치는 대신 예수는 자기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셨지.

그리곤 초라한 죄 많은 여인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그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 뽑았으니,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또 어디에 있을까? 최초로 하느님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셨어. 하느님의 아들은 죽었다가 곧 부활하셨지. 급작스런 변화이기는 하지만 성서에 따른 논리적인 귀결이지. 유대인들은 줄곧 메시아를 기다려 왔으니까."

"그렇다면 메시아가 지상에 나타나자마자 유대교는 자취를 감췄겠네요."

"예수는 유대교와의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아. 예수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십계명을 부인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 반대였지. 십계명을 확대시켰어. 예수는 '구약성서'의 레위기에서 한 구절을 따서 마지막 계명을 보충했지. 도둑질 하지 말라,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남에게 해를 입히지 말라, 기억나니? 예수는 여기에다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말을 덧붙였어.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지. 이말은, 즉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함을 의미하지.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주의, 즉 자애는 모든 인간에게 예외없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야. 자기 자신과 타인은 완전하게 동등한 존재이지. 이렇게 예수는 하느님의 십계명을 온 세상에 전파했던 거야."

"그래. 한 문장에서 동사는 행위를 나타내지. 유대인에게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나 성서의 동사는 창조에 관여하므로 늘 행동을 뜻한단다. 하지만 예수 탄생 이전엔 인간들은 오직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했어.

성서에 보면 하느님은 명령하고, 화를 내시다가 위로를 베푸시기도 하지만 절대로 볼수는 없었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질 못했어. 인간은 언제나 반발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동사를 통한 말씀이 육체로 형상화되었지.

사람들은 이제 그 육체를 만지고 더불어 토론을 할 수도 있으며, 함께 길을 거닐 수도 있고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며, 시선을 응시할 수도 있고 피흘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수도 있었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거야.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 일인가! 또 신의 탄생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 깃거리인가!"

마리아는 나자렛(나사렛)에 살았는데, 아마도 그곳은 실제
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이었지. 마리아는 목수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어.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유대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무명의 여인을 선택하셨지.

지당하신 선택이지. 왜냐하면 예수의 말씀은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기 때문이야."

"마리아는 죄지은 모든 이들의 구원사가 되었지. 마리아는 아들 앞에서 늘 인간의 편을 들었어. 언제나 연민의 정에 넘쳤지. 마리아는 단 한 순간도 하느님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호의를 베푸셨지.

다시 말해서 마리아에게 인간을 옹호하고, 인간에게 경고를 보내며, 인간을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을 하사하셨지. 그리고 마리아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죽었어. 잠이 든 상태에서 하늘로 승천했지. 마리아의 수면을 '성모의 죽음'이라 하고,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가리켜 '몽소승천' 이라고 하지. 상승을 뜻하는 말이야."

"그렇다면 마리아가 정말로 죽은 게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예수의 어머니의 시체가 부패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뒤부르 신부가 이렇게 반문하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절대 불가능하지. 14세기에는 마리아를 이브가 지은 원죄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었어. 마리아의 부모님 역시 육체적 결합 없이 마리아를 수태했다는 주장이지. 하느님께서 당신이 선택하신 동정녀의 탄생을 미리 준비하셨다는 이야기지."

"예수의 아버지는 하느님이시지. 우리는 성부, 성자, 성신, 이 삼위일체로서의 하느님을 섬기는 거란다."

"마리아에게 수태의 소식을 알린 천사의 목소리. 성부께서는 결정하시고, 성자는 세상을 구원하시며, 성신은 그 결정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 이것이 바로 성삼위일체야. 하나는 유대인의 신이고, 또 하나는 그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 마지막 세 번째는 우리들 가운데 나타나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인물, 이렇게 세 인물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한 분의 하느님."

"그렇다면 신부님, 결과적으로 예수는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지요? 예수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잖아요?"

"물론 그렇지. 예수는 구원의 희망, 이웃과 더불어 나누어 갖는 기쁨, 자기 희생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남겨 주셨지. 우리는 예배 때마다 특히 예수의 희생을 기린단다. 왜냐하면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열두 제자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며 '모두들 이 빵을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고 말했고, 또 포도주를 나누면서는 '이는 나의 피' 라고 말했기 때문이지.

말씀이 육체로 형상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육체가 빵과 포도주로 상징되었던 거야."

"예수는 돌아가셨지만, 빵과 포도주를 통해 예수의 육체를 느낄 수 있지. 예수가 이처럼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희생하신 것은 그야말로 지고의 희생이지. 우리는 빵과 생명의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이 희생을 기억하지. 돌아가시기 전 예수는 '모두들 먹으라' 고 말씀하셨어.

'모두들' 이라구. 알겠나? 예수의 거룩한 육체를 입에 넣고 혀로 음미하며 삼키는 행위는,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야. 우리가 성체라고 부르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은, 인간의 살이 아니라 하느님의 육체가 변형된 것이지. 그러므로 이는 식인종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범보편적인 신성한 나눔 의식인 거야."

"그리스도교 신앙은 유대교 신앙보다 훨씬 복잡하군요."

"가까이 만드는 거지. 이를테면 하느님과 인간, 또 인간과 인간끼리를 좀더 가깝게 만드는 거란다."

"하느님이 인간과 가까워지니,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재현할 수가 있는 거란다. 신의 탄생, 일생 동안의 발자취, 고난과 부활의 역사를 회화로도 표현할 수 있고, 또한 그의 육체를 조각으로 나타낼 수 있는가 하면, 영화에서 배우들이 그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거지.

한 마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성스러우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어. 예수의 희생은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용서하시며, 이스라엘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과거의 시련을 지워 버리고, 마침내 소망과 사랑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기 위함이지. 예수의 희생은 인간으로 하여금 잃어버린 낙원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준 거야."


이슬람교

우리 이슬람교도들이 사실상 가장 나중에 나타났지요. 하느님의 최초의 계시는 유대 민족들에게서 절대적인 순종을
받아내는 데 실패했지요. 엘리제르도 강조했듯이,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줄곧 저항하고 있었거든요.

예수를 통한 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요. 예수의 희생으로도 충분치 못했어요.
아직도 이 세상에는 유일하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안 그래요, 앙투안?

그렇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최후의 계시를 내리기 위해 예언자 마호메트를 선택하셨지요. 마호메트 이후로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마호메트에게 당신의 율법 전부를 드러냈으니까요."

"우선, 전능하신 신은 아무것도 잊지 않으신단다. 지나온 일의 요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시지. 신께서 마호메트에게 '코란'을 제시하시면서, 우선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예언자들의 계보를 상기시키셨지.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이야. 우리 이슬람교도들의 예언자이기도 하지. 십계명은 우리도 지키는 계율이란다. 우리도 절대로 하느님이나 예언자의 모습을 재현하지 않아. 오로지 전능하신 신께서는 분명하게 계
율만을 말씀하실 따름이지.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대신 이슬람교에서는 '알라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마호메트는 알라의 예언자' 라고 말하지. 이 말은 마호메트와 더불어 계시가 끝난다는 의미지. 마호메트는 신의 예언자 중 최후의 예언자일 거야."

"구원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우리의 예언자는 자신을 가리켜 신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지. 어떻게 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겠어?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이슬람교도들도 신은 영원한 조물주라고 생각한단다.

신이 조물주라면, 신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생겨난 존
재여서는 안 되지 않겠어?"
"다른 누구인가에 의해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신을 낳아 준 존재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바로 그렇단다. 아무도 신을 낳아 주지 않았으며, 신 또한 아무도 낳지 않은 거야. 왜냐하면 신이란 시간과 생사를 초월하는 분이시기 때문이지. 만일 신이 자식을 낳고 아버지가 된다면,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거지. 이렇게 되면 모순이 생겨나므로, 예언자 마호메트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 아니라 신에게 선택받은 자라고 칭하였단다. 알라는 당신이 선택한 자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이 땅에 완전무결하고 정의로운 종교를 세우라는 말씀을 전하셨지."

평화란 부드러우면서도 사람을 흥분시키며, 밤처럼 깊고 별처럼 빛나는 완전한 것이지. 완전함, 이 외의 다른 어떤 말로 평화를 형언할 수 있겠어?"

"여러 세기 동안 우리를 갈라 놓은 전쟁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모두 땅 싸움, 권력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에 예루살렘을 건설하였으니, 서쪽 벽부터 방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일하게 남은 유적이라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모여드는 통곡의 벽이었다.

성묘, 예수의 무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종파들이 모여 있는 곳.
"모든 종파는 아니지요."

"개신교는 들어가지 않아."
그 틈을 타서 이슬람교 이맘이 예루살렘은 원래 아랍 도시였으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점령 당하였으며, 따라서 이곳의 진정한 수호자인 이슬람교도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뒤부르 신부는 예수의 무덤과 예수가 자신의 운명을 제자들에게 예고한 감람산(올리브 산),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걸어가셔야 했던 길(비아돌로로사), 이 세 가지를 제안했다.

마르트 고모는 더 줄일 것을 종용했다.
유대교 랍비는 불가능하다는 듯이 두 팔을 하늘로 쳐들어 보였다. 통곡의 벽과 이스라엘
박물관, 나치의 만행으로 희생된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야드 바셈 기
념관, 유대 종교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메아 셰아림지구 중에서 어느곳을 선택해야
한담? 이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위의 돔을 향해 나섰다. 통곡의 벽이 내려다보이는 넓다란 평지위에 우
뚝 솟은 금빛 돔과, 또 다른 은빛 돔이 테오의 시야에 들어왔다.

"저쪽에 보이는 알 아크사 모스크(성원) 도 비슷한 시기인 기원 7세기에 세워졌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바위의 돔으로서, 성전 중에서도 모리아 산자락에 걸쳐 있는 쪽이지. 또한
'세계의 배꼽' 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알라가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천상의 정원에서 고른 반석이라고들 한단다. 이슬람교도 예언자들의 영혼은 반석 아래 파놓은 샘물 속에 남아서 지금까지도 그 기도를 계속하고 있지. 돔과 모스크 사이에 보이는 아치는, 최후의 날이 왔을 때 인간의 영혼을 달아 볼 수 있는 저울을 매달기 위해 있는 거란다."

"최후의 날이라니요?"
테오가 놀라서 물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아무것도 기다리는 것이 없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
이맘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는 말하자면 시간의 종말을 기다린단다. 하지만 지금은 시작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왜냐하면 바로 이 장소가 유대인과 그리스도교도들이 아브라함이라고 부르는 예언자 이브라함이 제물을 바쳤던 곳이기 때문이야. 그가 구원을 얻은 곳이란 말이지.

종교에선 진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이지요. 저로 말하자면 하느님은 믿지 않아요. 아무 신도 믿지 않아요. 그렇지만 종교를 통해 인류가 진보한다는 점은 저도 인정해요.

"수천 년 동안 야만적으로 살아온 유대인들이, 비로소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셨다는 걸 믿기 시작한 거란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란, 다시 말해 인간은 누구나 약간은 신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되겠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언약을 받은 최초의 인간이란다. 언약을 받은 이후로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아도나이 엘로힘, 즉 약속의 주님이라고 불렀지. 그 이전에는 인간과 짐승이 제물로서 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언약을 받은 이후로는 달라졌지. 인간과 짐승의 분리과정은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단다."
"원죄에 관해서도 성서에 기록되어 있지요."

"하느님은 인간을 천국에 두시지 않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서 이 최후의 원죄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려 한 거죠. 그의 선택을 받은 유일한 민족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 역시 굉장한 진보가 아닐 수 없지요."

"우리는 마호메트의 얼굴을 절대로 재현하지 않는단다."
이맘은 분명하게 말했다.
"이따금씩 대중적인 성상화를 보게 될 때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얼굴 부분만큼은 흰 베일을 씌워 놓았지. 법열상태 때에는 전능하신 신과 너무 가깝게 밀착되기 때문에 그 모습을 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마호메트의 견신은 신의 계시에 따른 것이었어. 이처럼 인간의 삶의 조건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험이 이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마호메트가 태어난 메카와, 그가 죽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교도들이 세 번째로 꼽는 성지가 되었던 거야. 그뿐만 아니라 685년 바위 위에 돔을 세운 것도 아브드 알 말리크라는 칼리프(이슬람 공동체의 통치자) 였지."
"그렇긴 하지만, 그에 앞서서 같은 장소에 최초로 성전을 세운 사람은 솔로몬 왕이었단
다."

"십자군 원정대는 바로 이곳에 거대한 십자가를 세웠지."
뒤부르 신부도 거들었다.
"이렇게 해서 세 종교는,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바치려던 곳에서 다시 만난단다. 게다가 우리는 같은 책, 즉 성경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지. 성경은 그리스어로 책을 의미하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이 세가지 종교를 가리켜 책의 종교라고 부르는 거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책이지."

예루살렘은 유일신을 섬기는 사람들, 예언자 마호메트를 섬기는 사람들, 하느님의 아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네들의 신앙이 우월하다고 다투는 복잡한 도시였다.

우선 세 명의 성직자는 흔히들 '통곡의 벽' 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목적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테오는 설명할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혔다. 거의 2천 년 동안이나 유대인들은 조상의 얼이 담긴 널찍한 돌더미를 찾아와 비탄에 잠겨왔으며, 20세기라는 오랜 세월동안 이들은 잃어버린 성전을 그리워하며 탄식해왔다. 멀리서 나이와 세월을 초월한 심연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나지막한 기도 소리들이 들려 왔다.

"새벽이면 이 돌 위에 이슬이 뒤덮이는데, 이 이슬은 자기네들의 거룩한 땅에서 추방당해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눈물이란다. 하느님께서 전 세계에 열 가지 고통을 내리셨다면, 그 중 아홉 가지는 예루살렘에 내려졌지. 자, 이걸 머리에 쓰렴. 쓰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통곡의 벽, 유대인들은 서쪽 벽이라고 부르는 문제의 벽은, 예루살렘에 건설된 세 번째 성전 중에서 유일하게 현존하는 부분이다. 첫 번째 성전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건설하였으며, 두 번째 성전은 첫 번째 성전이 파괴된 후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가 재건을 허락한 성전이다. 마지막 세 번째 성전은, 첫 번째 성전의 웅장함을 재현하고자 한 유대왕에 의해 재건축되었다. 이 유대 왕 헤롯(헤로데)은 로마 제국이 임명한 왕으로서, 부
모 중 한쪽만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헤롯 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세 번째 성전은 첫 번째 성전과 달랐다. 물론 웅장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금빛 찬란하긴 했지만, 성전에서 가장 중심되는 곳인 데비르(지성소)는 텅빈 채로 하느님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헤롯 왕이 재건축한 성전에서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기록한 언약의 궤(계약궤, 증거궤, 법궤라고도 한다)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유대교도 = 첫 번째 계시 - 메시아를 기다림.
그리스도교도 = 두 번째 계시 - 메시아는 이미 세상에 오셨음.
이슬람교도 = 마지막 계시.

유대인들이 하느님과 맺은 약속 = 1.노아의 방주 2.아브라함과 맺은 할례의 언약 3.모세의 언약궤
4.그리스도인 = 새약속.

눈앞에 성묘교회가 나타났다. 널찍한 석재 돔이 얹힌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통곡의 벽처럼 웅장하지도, 바위의 돔의 금장식만큼 우아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바로 이 장소에서 예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던 것이다.

네 머리 위를 좀 보렴. 타조알에 매달린 전등
이 줄지어 늘어선 게 보이지? 넉 줄은 그리스 정교회, 넉 줄은 라틴 교회, 또 석 줄은 아르메니아 교회용이란다."

라틴 교회라고들 일컫는 교회가 역사상 최초의 그리스도교 교회라고 할 수 있지. 열 두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된 베드로가 세운 교회란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교회라도도 하지. 사도란 '하느님의 사절' 이란 뜻이야. 또한 베드로가 로마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으므로, 우리는 이 교회를 라틴, 사도, 로마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가장 중요한 교회이지."

오늘날 성소의 열쇠는 이슬람교도 들이 가지고 있다"그리스도교 종파들간의 분쟁을 막기 위해 이슬람 성전을 건축한 칼리프 우마르가, 7세기에 이들에게 열쇠를 맡겼지. 그후로 줄곧 이슬람교도가 새벽 3시에 문을 열고 저녁 5시에 문을 닫는단다."

"어쨌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테라스에서 우리 근사하게 저녁을 보내자. 실컷 멋
을 부려도 좋아.아마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거
야."

선물은 연주가들의 연주란다.
연주가들의 애절한 멜로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아주 신비스러울 정도로 평온한 음악이었다. 서정적인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완벽한 행복의 순간이었다.
"사랑의 연가란다."

"솔로몬 왕이 쓴 아가서야말로 남자와 여자의 약혼과 사랑의 경이로움을 표현한 압권이
지."
"조금만이라도 들려 주세요."
테오가 졸랐다.

"내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살빛이 검게 그을렸다 해서
신경 쓸 것 없다오.
햇빛이 이렇듯 갈색으로 태운 것뿐이라오.
숲 속의 아름드리 나무들 틈에 서 있는
한 그루 사과나무처럼,
나의 님은 세상의 아들들 중에서
단 하나뿐이라네.
내가 사랑하는 님은
건장한 영양을 닮았고,
날렵한 사슴과도 비슷하다오.
젊은 처녀가 자기의 약혼자를
기다리며 읊는 시란다."

"남자는 뭐라고 응답하죠?"
"아름다워라, 내 사랑.
당신의 손길은 부드럽기 그지없네.
나의 누이, 나의 약혼녀여.
당신의 손길은 포도주보다도 감미롭고,
당신의 향기는 세상의 모든
향내보다 그윽하다오.
당신의 입술에선 꿀이 흐르고,
나의 약혼녀여, 당신의 혀 밑에는
젖이 가득 넘친다오.
당신의 옷자락에는
레바논의 향기가 묻어 있다오..."

"당신은 내 비밀의 정원이라오."
"나의 누이, 나의 약혼녀여.
당신은 비밀의 샘이며,
봉안된 옹달샘이라오.
당신에게로 이르는 길은 석류나무의
오묘한 과실, 헤너와 감송향,
감송과 크로커스, 계수나무,
계피나무, 향나무로 가득한 천국이라오..."

"디아스포라는 '분산'을 뜻하는 그리스어란다. 이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오기보다 자기가 있던 곳에서 계속해서 살기를 선택한 거지.
물론 그 사람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고."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돌아올 겁니다."

고통의 90퍼센트는 예루살렘이 짊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고통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허가된 행복의 90퍼센트도 예루살렘이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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